"파리바게뜨보다 잘 나간다" 미국 내 매장수 1위 차지한 한국 식품의 정체

한류열풍을 타고 국내 외식업계들 역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K열풍만을 믿고 나섰다가는 잠시 이슈몰이만 할 뿐 현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운데요. SPC그룹은 2004년 9월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했으나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420개 매장만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단 88개 매장은 운영하면서 현지화를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요.

한편 대기업도 10년 넘게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 현지화 사업에서 의외로 선전 중인 한국 식품기업이 있습니다. 2015년 이미 미국에서 파리바게뜨의 매장 수를 거뜬히 넘어섰다는 주인공은 한국외식업계 중소기업 델리스인데요. 델리스라는 사명이 생소하다면 지하철역과 휴게소에서 발길을 사로잡던 델리만쥬의 냄새만큼은 기억하시겠지요.

기계공학과 출신 직장인
호두과자 기계 만들다

델리만쥬를 만든 장본인이자 델리스의 창업주인 김형섭 대표는 서른 살 무렵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호두과자 가게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90년대 후반인 당시에는 가스식 호두과자 기계 하나를 들이기 위해 집 한 채 값이 들었는데요. 이에 김 대표는 전기로 만들 수 있는 즉석식품을 고안하고자 개발에 나섰고 집 몇 채 값을 투자하는 모험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직접 기획, 설계, 제작에 참여해서 4년 만에 카스텔라 기계를 완성했습니다. 기존의 땅콩과자나 붕어빵보다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빵을 만들 수 있었고, 이어 수소문한 제과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커스터드 앙금까지 개발했습니다. 공들여 완성한 제품명은 대학에서 한문을 전공한 김 대표 아내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는데요. 맛있다는 뜻의 영어표현 딜리셔스에 만두의 일본식 발음 만주를 합성해서 '델리만쥬'라는 명칭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김 대표는 매대에서 기계, 반죽, 생산 및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이어지는 브랜드 패키지를 만들었고 지하철과 백화점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1999년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진출에도 도전했는데 대만, 홍콩,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로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출한 델리만쥬는 2005년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제조기술 특허를 내면서 글로벌 프랜차이즈 기업으로서 발돋움했습니다.

 

한국에서 사라진 뻥튀기
미국에서 대박

다만 내놓자마자 가게마다 100~200m 줄을 서고 6개월 만에 파트너십으로 매장 수를 20여 개 늘인 동남아 등지와 달리 미국 시장의 벽은 높았습니다. 음식 성분에 대한 안정성 기준이 높은 데다 전문경영인 체제인 기업이 많아 신사업에 대한 투자 결정이 빠르게 내려지지 않는 탓에 진입 자체가 어려웠던 것. 이에 김 대표는 중간 브로커를 쓰지 않고 직접 슈퍼마켓을 돌면서 영업을 뛰었습니다.

또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보다 한국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뻥튀기 제품 '킴스 매직 팝'을 론칭했습니다. 과거 1960~70년대 시장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던 뻥튀기는 옥수수나 밀, 쌀, 감자 등을 온도와 압력으로 부풀려서 만든 한국식 과자인데요.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자주 보기 힘든 뻥튀기를 미국 현지에 내놓는 도전을 한 것입니다. 

김 대표는 건강식품에 관심이 높은 현지 소비자의 니즈를 고려해서 뻥튀기 제품 '킴스 매직 팝'에 대해 무콜레스테롤, 채식주의자용, 무지방무설탕, 저염분, 저탄수화물 음식임을 강조했습니다. 또 시나몬, 체다치즈, 통밀, 오곡, 블루베리, 양파 등 다양한 맛을 구성해서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유대인들이 먹을 수 있는 코셔제품까지 출시해 타깃층을 넓혔습니다.

5년 가까이 시장조사와 연구, 상품개발 등에 투자한 결과 델리스는 미국 전역에 27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 Kroger에 입점했습니다. 2015년 기준 미국 전역에 델리스 매장은 600여 곳에 달하고 델리스 완제품을 납품하는 슈퍼마켓은 1000여 곳을 넘었습니다. Shop Rite와 마켓A&P에서는 베이커리 부서 주간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요.

델리만쥬 없어질 뻔

한국 사업을 직원에게 맡겨두고 미국진출만 전담한 김 대표는 8년 반 만에 한국 본사로 돌아갔습니다. 김 대표가 없는 동안 국내 델리스는 지하철 역사에 가맹점을 확대하고 백화점과 편의점 등에 직영점을 오픈했지만 개발비 투자와 사업의 무리한 확장, 메르스 등의 영향으로 매출이 크게 줄면서 어려움을 맞이했습니다.

2014년 한국본사는 100억, 미국법인은 60억 원의 매출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2015년 8월 델리스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야 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소비자들 사이에는 "더 이상 델리만쥬를 먹을 수 없는 게 아니냐"라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델리스는 1년여만인 2016년 11월 회생절차 종결결정을 받고 법정관리를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미국 다이어터들 SNS에서 난리난 뻥튀기

자금유동성이 안정화되면서 사업진행에 위기를 벗어난 델리스는 국내에서는 델리만쥬의 인기가 여전한 반면 미국에서는 뻥튀기 '매직팝'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뻥튀기가 다이어트용 간식거리로 알려지면서 각광받고 있는 것인데, 한 봉지에 한화로 약 3000원에 팔리는 '킴스매직팝'은 감자칩의 식감에 칼로리는 훨씬 적고 포만감을 충분하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코로나19사태 이후 홈쿡이 대세가 되면서 미국에서 뻥튀기는 아이스크림, 누텔라, 치즈, 과일, 생크림, 살사 등을 곁들인 요리로 한층 발전했는데요. SNS를 통해 뻥튀기 요리 레시피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유행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델리만쥬의 제조기술 특허를 내고 막 미국시장에 발을 들인 2005년 당시 높은 진입장벽에 포기하고 돌아섰더라면, 한국본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어려움을 겪었을 때 미국사업까지 포기했더라면, '킴스매직팜'은 연이어 다가온 웰빙바람과 홈쿡 열풍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겠지요.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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