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농심 회장이 아들보다 아꼈다는 또 다른 회장님의 정체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27일 향년 92세 나이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국내 최초 스낵 '새우깡'과 국내 최고 매출 라면 '신라면'을 만든 역사적 기업의 창업주이니만큼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인물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인물이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승에서 화해 못한 롯데 형제

왼쪽부터 신격호 회장, 신춘호 회장

故 신춘호 회장의 장례식장에 몰려든 기자들 사이에는 롯데그룹 인사들의 참석 여부가 가장 먼저 화두에 올랐습니다. 지난해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당시 신춘호 회장은 끝내 빈소에 나타나지 않았는데요. 결국 신격호, 신춘호 형제는 이승에서 화해하지 못하고 결별한 셈이 되었습니다.

일찍이 롯데그룹에서 독립한 덕분에 경영권 분쟁조차 없었던 신격호, 신춘호 형제의 갈등은 이미 1960년대에 시작되었습니다. 신격호 회장의 부름으로 롯데에 입사해서 제과사업을 시작한 신춘호 회장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던 라면에 주목했으나 신격호 회장이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크게 반대하면서 독립했습니다.

'롯데공업'을 차려 라면 사업에 뛰어든 것인데, 이때부터 형제간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신격호 회장은 동생에게 "롯데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마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1978년 사명은 '농심'으로 변경하고 형과는 완전히 의절했습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선친의 제사도 따로 지낼 만큼 사이가 벌어졌습니다.

브랜드 전문가 '라면왕'

자신의 사업을 반대한 형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업 성공이 아니었을까요? 신춘호 회장은 경영자인 동시에 연구자로 직접 나서며 직원들에게도 늘 '장인정신'을 요구했습니다. 고급 스낵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팀이 기계 옆에 가마니를 깔고 쪽잠을 자며 트럭 80대 분량의 밀가루로 실험을 반복한 일화는 꽤 유명하지요.

뿐만아니라 신춘호 회장은 남다른 네이밍 감각으로도 유명한데요.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는 브랜드 전문가로서 신 회장의 탁월한 '촉'이 발휘된 결과물입니다.

또 자신의 성씨인 '매울 신'을 활용한 '신라면'은 출시 당시 대부분 제품이 회사명을 바탕으로 한 것에 반해 너무 파격적이라서 직원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에 반발이 심했는데, 신춘호 회장은 "발음이 편하고 제품 속성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라며 임원들을 적극 설득한 끝에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아들보다 아꼈다는 막내사위

또 하나 신춘호 회장의 특별한 네이밍 실력이 발휘된 제품은 바로 '새우깡'입니다. 최근 '양파깡', '감자깡' 등 깡시리즈가 재조명 받으면서 현재까지도 일명 소비자에게 '먹히는' 네이밍으로 꼽히고 있는데요. 신 회장이 '새우깡'이라는 이름을 만든 것은 막내딸 신윤경 씨의 도움이 컸습니다. 당시 어린 신윤경이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아리깡 아리깡 아라리요"라고 어설프게 발음한 데서 착안해 제품명으로 활용했기 때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부른 노래 덕분에 제품까지 대박을 터뜨렸으니 더욱 애정이 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래서인지 신춘호 회장은 귀한 막내딸의 짝으로 평소 친분이 있던 서성환 태평양 창업주의 아들을 점찍었습니다. 신 회장과 서 회장은 같은 지역에 살며 경제 단체 요직을 번갈아 맡아온 친구이자 동료였는데요. 서로 가장 아끼는 딸과 아들을 배필로 맺어주었고 1990년 결혼에 골인하면서 신 회장과 서 회장은 친구에서 사돈 사이가 되었습니다.

재계의 혼맥을 위한 정략결혼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흔한 불화설 한 번 없이 평화로웠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모레퍼시픽을 이끌고 있는 서경배 회장은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춘호 회장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남다른 '장인어른 사랑'을 과시해 왔는데요.

40세에 일찍이 부친을 잃은 아픔을 대신해서 부친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장인어른인 신춘호 회장에게서 부자지간 못지않은 애정을 나눠온 것입니다. 장인을 아버지처럼 여긴다는 서경배 회장은 지난 2015년에는 농심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라면이 연상되는 조형물을 깜짝 선물로 내놓으면서 장인어른에게 큰 감동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가는 길 따뜻했던 라면왕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했고 현재까지 사흘째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 서 회장의 첫째 딸인 서민정 뷰티 영업전략 과장과 홍정환 부부 역시 27일 조문했으며 전날 입관식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반면 신격호 회장의 아들이자 신춘회 회장의 조카인 롯데그룹 신동빈, 신동주 형제는 현재 일본에 체류하고 있어 빈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조화로 애도의 뜻을 전했는데, 신동빈 회장의 조화가 고인 영정사진 바로 옆에 위치하여 농심과 롯데그룹의 오랜 갈등이 풀리고 화해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신격호 창업주의 첫째 딸인 신영자 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지난 27일 조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러한 추측에 더 힘을 실었지요.

한편 신춘호 회장의 빈소에는 정재계 유력인사뿐만 아니라 생전에 교분은 없었지만 그의 가는 길을 배웅하고자 찾아온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데일리의 보도에 따르면 스스로를 '농심 라면 공장에서 근무한 여공'이라고 소개한 한 중년 여성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빗길을 뚫고 빈소를 찾기도 했다는데요.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자신을 돌봐준 서울대병원 의료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10억 기부를 약속하고 떠났다는 신춘호 회장의 성정이 농심 직원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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