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장항준, 뮤지션 이상순, 아나운서 도경완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세 사람의 아내인 김은희 작가와 가수 이효리, 장윤정을 떠올리면 충분한 힌트가 될 텐데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처복 많은 남자'로 꼽힌다는 점입니다. 또 한 가지 이들의 공통점은 자존감이 무척 높고 아내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는 것. 소위 잘나가는 아내에게 자격지심을 갖기보다는 내 일처럼 자랑스러워하고 고마워하는 태도 덕분에 워너비 남편으로 불리는 것이지요.
아내 명의의 카드를 쓰면서 천만 원의 용돈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힌 남편이 또 있습니다. 바쁜 아내 대신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현재 직장은 "용돈벌이로 다닌다"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요. 그런 남편이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아내의 정체는 바로 웹소설 작가 박수정 씨입니다.
남편 덕분에 이어간 집필활동
최근 카카오TV '빨대퀸'에는 '웹소설 작가'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을 소개하면서 업계 정상 자리에 오른 박수정 작가의 조언을 공유했습니다. 로맨스 웹소설의 대가로 꼽히는 박수정 작가는 데뷔 15년 차로 '위험한 신입사원', '신부가 필요해', '신사의 은밀한 취향', '악마와 유리구두', '위험한 신혼부부' 등 대표작을 포함해 총 27개 작품을 내놓은 베테랑 작가입니다.
다만 과거 동덕여대학보 등 다수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면 박수정 작가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행운이 아닙니다. 한국 외대 일어과를 졸업한 박 작가는 졸업 후 취업전선에 뛰어든 동기들과 달리 '글 쓰는 일을 꼭 하고 싶다'라는 마음만을 가지고 작가로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는데요.
28살 나이에 졸업해서 하루라도 빨리 취업 준비에 나서야 했지만 취직을 포기한 채 '로맨스 소설'을 쓰는데 열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학원강사나 과외강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는데, 그 조차도 글 쓰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파트타임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박 작가는 2011년 캠퍼스 커플인 현재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박 작가의 남편은 "돈은 내가 벌 테니 글 쓰는데 집중하라"라며 아내의 집필활동을 적극 도왔습니다. 덕분에 박 작가는 결혼 후 집필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심지어 '반짝반짝'을 연재할 당시에는 출산을 앞두고 입원하는 날 아침까지 글을 썼고 제왕절개 후 단 3일 만에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웹소설을 등재하는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았고 온라인상에 게재되는 작품을 '돈 내고 본다'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못한 탓에 웹소설 작가는 생계수단이 되기 어려웠습니다. 박수정 작가 역시 데뷔 후 6년 넘게 거의 수익 없이 활동했는데요. 그저 '로맨스 소설 쓰는 게 좋아서' 글쓰기를 이어온 박 작가는 2014년 경 네이버가 웹소설 유료 연재 시스템을 정착시킨 이후부터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웹소설 작가가 억대 연봉이라고?
2018년 기준 네이버 웹소설 정식 연재 작가 중 한해 1억 원 이상을 버는 작가는 박수정 작가를 포함해 총 26명이었습니다. 웹소설 플랫폼으로 가장 대표적인 '문피아'의 경우 2020년 기준 연 5억 원 이상 버는 작가가 20여 명,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작가도 10여 명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타 플랫폼에도 소설을 제공하거나 N차 창작물의 원작이 될 경우 수입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요.
박수정 작가가 '빨대퀸'을 통해 공개한 수입 내역에도 하나의 작품을 다수 플랫폼을 통해 공개해서 얻은 수입과 해당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얻은 판권 수입까지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1년간 수익이 13억에 달한다는 점은 놀라운데요.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제일 많았던 해의 수입이다. 선인세 받고 판권료 받고 끌어모은 결과"라면서 "평소에는 반도 안 된다"라고 솔직한 연봉 수준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박수정 작가의 경우가 웹소설 작가 가운데 극소수 상위층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플랫폼 노동 종사자 인권 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웹소설 작가들은 하루 평균 9.8시간 일하고, 월 180만 원가량 버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극소수 상위는 억대를 벌지만 하위 일부는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것이 현실.
한편 집필 활동을 원하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웹소설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 중 하나는 데뷔가 쉽다는 점입니다. 등단 과정 없이 누구나 문피아, 조아라, 리디북스, 네이버시리즈, 카카오페이지 등 플랫폼에 자신의 작품을 게재하고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듯 낮은 데뷔 장벽은 접근성이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공급되는 작품이 많아지면서 경쟁률을 높인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20만 명이 넘는다는 웹소설 작가들이 끊임없이 작품을 내놓으면서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쟁이 치열해진 것. 이런 상황에서 각 플랫폼의 랭킹에 오르지 못하면 작품이 노출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때문에 각 플랫폼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이 또 하나의 등단 시스템을 만들었고, 배너광고 등으로 홍보하기 위해 광고비까지 사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수익의 절반도 못 받는 작가
현재 웹소설 업계 최대 플랫폼은 카카오페이지입니다. 문피아, 조아라 등을 통해 인지도를 얻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카카오페이지 입성을 노릴 정도인데요. 네이버시리즈가 다져놓은 웹소설 플랫폼 선두자리가 카카오페이지로 넘어간 것은 2014년 카카오페이지에서 '기다리면무료' 서비스를 진행하면서부터입니다.
'기다리면무료'서비스는 사용자가 12시간이나 24시간에 한 번씩 1회차의 무료 콘텐츠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방식인데, 해당 서비스가 흥행하면서 다 플랫폼에도 이와 유사한 프로모션 서비스가 생겨났습니다. 덕분에 다수 구독자들을 웹소설 업계로 끌어들이는 효과는 있었지만 무료로 제공하는 회차분의 수익은 해당 작가에게 정산되지 않기에 작가 입장에서는 눈물겨운 방식인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프로모션 참여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거절하면 다음 프로모션 제의가 안 오거나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또 유료 회차 수익의 경우에도 작가가 받는 정산금액은 상당히 적은 비율인데요. 우선 플랫폼 수수료는 카카오페이지가 45%로 가장 높고, 네이버웹툰 웹소설의 경우에도 30%로 책정됩니다. 그리고 남은 금액으로 작가와 출판사 혹은 에이전시가 나누어 가져가는데, 출판사 소속이면 6:4비율, 에이전시 소속이면 7:3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 웹소설 작가는 콘텐츠의 기획부터 구성과 제작까지 전 과정을 혼자서 주도하는 1인 창작자인데요. 말하자면 혼자 만들어낸 창작물로 거둔 수익에서 절반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점은 언뜻 보아도 불공정해 보입니다. 플랫폼과 에이전시 등 유통사 수수료가 과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에 대해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 측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와 직접 계약이 아니라 중간 CP사를 통해 계약하기 때문에 직접 수익은 CP사에서 배분하며 이외 계약상의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라고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박수정 작가는 과거 동덕여대학보와의 인터뷰에서"솔직히 이걸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면서 "조금만 더 참으면 곧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네이버가 웹소설 서비스를 진행할 거니까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 게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돈은 내가 벌 테니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고 지원해 준 남편과 돈벌이나 인기와 상관없이 그저 '글 쓰는 일' 만이 내 일이라고 여긴 박 작가의 소신이 현재의 자리를 있게 한 셈이지요.
억대 연봉이라는 화려한 겉포장에 속아 웹소설 작가에 도전하기보다는 '글쓰기' 자체에 소명의식을 가져야만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업계의 관행처럼 뿌리내린 불공정한 정산 방식 역시 하루빨리 개선되어 능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더 늘어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