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3대 남편을 아십니까? 잘나가는 아내를 둔 장윤정 남편 도경완과 이효리 남편 이상순 그리고 김은희 작가의 남편 장항준 감독을 두고 나온 우스개소리인데요.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보다 잘나가는 아내에 대해 전혀 자격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의 자존감을 지니고 있다는 것.
특히 장항준 감독의 아내 부심은 남다른 수준입니다. 아내와의 수입 차이 때문에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존심은 수입 차이가 조금만 날 때의 얘기다"라고 쿨한 대답을 하는 장 감독의 남다른 자존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보다는 스타작가 김은희의 남편이라는 타이틀로 더 유명한 장항준 감독은 소위 강남 8학군 출신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타고난 재치로 친구들 사이에 '소문난 이야기꾼'이었지만 학업에 열중하는 모범생 스타일은 아니었는데요. 오히려 고액과외를 시키는 어머니께 "불법 과외 시키지 마라. 내가 신고할 거다"라는 엉뚱한 반항을 일삼는 귀여운 날라리였습니다.
다만 책 읽기를 즐기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좋아해서 학교에는 '놀러 다니는' 기분으로 등교했습니다. 친구들을 모아놓고 절반은 영화나 책에서 본 화제로 시작해서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미된 즐거운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이지요. 초등학교 6년 동안 숙제를 해간 것은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지만 늘 개근상을 탈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재미로 등교했기 때문이라는데요.
기사 딸린 자가용을 타고 다닐 정도로 부잣집 도련님 생활을 하던 중 장 감독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면서 자신의 적성과 미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활용해서 재수 끝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는데, 장 감독 스스로 말하길 이 시기가 자신의 인생 최초로 공부에 빠져들었던 때라고.
대학시절 매일 도서관에 살다시피하면서 '미친 듯이 공부했다'라는 장 감독은 인문사회과학이 너무 좋아서 하루에 두 권씩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당시에 섭렵한 인문학 서적이 현재까지도 작가, 감독으로서의 밑천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이지요.
인문학에 빠져들었던 대학시절을 거쳐 졸업 직후 SBS 막내작가로 일을 시작한 장 감독은 단 6개월 만에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메인 코너로 채택되면서 FD가 되었습니다. 사정상 메인작가가 부재하게 된 상황에서 장 감독이 기존에 써 놓은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좋은친구들'이란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흥행대박을 친 것인데, 이때 보조작가로 만난 인연이 바로 현재의 아내, 김은희 작가입니다.
당시 회사 출근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장 감독 때문에 인사발령을 받고 한참 후에야 사수와 첫 대면을 하게 된 김은희 작가는 '뭐 이런 사람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면 장 감독은 커트머리를 한 김 작가를 보자마자 '예쁘다'라고 생각했는데요.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라는 장 감독은 함께 일을 하면서 김은희 작가에 대한 마음이 커졌고 김 작가 역시 선배로서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이성적인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 감독이 먼저 고백해서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습니다. 당시 장 감독은 "빨리 가장을 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던 반면 김 작가는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오빠랑 하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장 감독이 프러포즈까지 한 것.
하지만 대차게 프러포즈를 할 당시 장 감독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적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앞서 1996년 영화 '박봉곤 가출사건'의 각본으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 후보에까지 오르면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영화감독으로서 입봉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8년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그조차 장 감독의 부모님이 마련해 준 것이었는데, 결혼 후 장 감독의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를 불러놓고 3년 넘게 영화감독이 되겠다며 백수처럼 지내는 아들에게 "아버지랑 같이 철공소를 하자"라고 권했습니다.
이에 장 감독이 차마 "조금 더 기다려달라"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때, 옆에 있던 김은희 작가가 "남편은 영화감독이 꼭 될 거예요. 딱 1년만 시간을 주세요"라며 시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두 사람은 쌀이 떨어질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장 감독은 "은희야 쌀이 떨어졌네"했고 김 작가는 "아, 그렇구나. 그럼 친구들한테 쌀 들고 오라고 하자"그러고 웃었습니다. 최근에는 한 예능에 출연해 신혼 때 맞고를 치면서 적은 장부도 공개했는데요. 장 감독이 아내 몰래 화투장에 표식을 긁어 넣었다가 본인조차 표식에 익숙지 않아서 햇볕에 비추어보는 바람에 위조 정황이 들켰다는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낙천적인 두 사람의 신혼생활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
아내의 믿음 덕분에 원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장 감독은 그로부터 2년여 후에 영화 '라이터를 켜라'로 입봉에 성공했습니다. 한편 김은희 작가는 그때까지도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요. 장 감독의 타자 실력이 워낙 느린 편이어서 영화사에 전달해야 하는 시나리오의 타자를 치면서 "대본 쓰는 일이 참 재미있겠다"라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장 감독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 일을 소개해 주는 등 아내의 새로운 꿈을 위해 외조를 시작했습니다. 문예창작관련 전공이 아닌 김은희 작가에게 장 감독은 대본 집필법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었지요. 이에 대해 김은희 작가는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집필할 당시 남편의 잔소리 때문에 죽을 뻔했다"면서도 덕분에 차기작 '싸인'에서 그나마 대본 다운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 이후 김은희 작가는 남편의 수입을 추월했습니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나는 아내 김은희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렇게 잘 될 줄은 본인도, 나도 몰랐다"면서 "우리 아파트에 그런 사람이 있어도 자랑스럽지 않냐.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집에 있어. 그 복을 내가 다 누린다. 정말 최고다"라고 자랑했습니다.
아내의 수입이 자신보다 2배가 넘은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밝힌 장 감독은 "아내의 수입은 물밀 듯이 들어온다. 6.25 때 중공군이 쳐들어오는 것 같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는데요. 성공 후 첫 목돈이 들어왔을 때부터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심했다"면서 경제 개념에 무관심한 아내를 대신해서 모든 수입관리를 본인이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신혼 때부터 살림을 맡아하고 가계부 쓰는 것도 즐긴다는 장 감독은 최근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주식투자를 통해 500% 이상 수익률을 낸 사실도 고백했습니다. "이상하게 내가 갖고 있던 게 막 올랐다"면서 "지금까지 인생이 항상 액면보다 잘 됐다"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는데요.
이에 들은 진행자 김구라는 "사주에 편재가 있나 보다. 큰 노력을 안 하는데 재복이 있는 경우를 편재라고 한다. 그것도 복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사실 장 감독은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편. 현재는 작가로서 업무에 집중하는 아내를 위해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해고 있는데, 학부모 총회나 녹색어머니회 활동까지 참석하며 주양육자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중입니다.
또 교양프로 '꼬꼬무'를 통해 방송인으로서 활동에도 열심히인데, '대충한다'라는 이미지와 달리 회당 35장이나 되는 대본을 공부하고 촬영에 임합니다. 이에 대해 장 감독은 "열심히 하고 싶지 않지만 열심히 하는 건 제작진들이 진짜 고생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내가 예능 작가할 때 일주일 내내 열심히 취재하고 준비해오면 연예인 누가 와서 엄청 짜증 내고 말이 되냐고 했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서 '저 XX는 돈도 많이 벌면서'라고 생각했다. 이것만 조금 해달라는 건데 속상했다"라고 방송에 최선을 다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영화계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현재 검토 중인 시나리오만 5개라는 장항준 감독은 "다 좋은 회사, 좋은 프로듀서라서 감사하다. 항상 영화는 하고 싶은데 여건이 안 맞다"라고 덧붙여 영화감독으로서 복귀에도 기대를 심었습니다.
양육과 집안살림을 도맡는 주부이자 제작진의 노고를 이해하는 방송인 그리고 업계의 인정과 기대를 받고 있는 영화감독이기도 한 장항준 감독의 일상은 살펴볼수록 여유가 넘치거나 놀기만 하는 생활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공은 아내에게로 돌리고 자신의 바쁜 일상은 복으로 여기는 낙천적인 태도가 자신과 가정 모두를 행복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