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 300~400만 원 수준인 보통 직장인들의 경우 보험금, 통신비, 교통비, 식비 등 고정 비용과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면 최대한 졸라매도 월 100~200만 원을 저축하거나 대출금 갚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매달 150만 원, 1년에 3600만 원씩 부담한다면 80억 대출을 모두 갚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반면 수십억 원의 빚을 갚고 그보다 많은 자산을 모으기까지 1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박현빈 5억+a
가수 박현빈은 데뷔 초부터 부모님의 빚을 갚기 위해 '빚 리스트'가 적힌 수첩을 들고 다니며 돈을 벌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현빈의 어머니 정성을 씨는 "수십억 대의 엄청난 빚을 지며 절망적인 삶을 살았다. 도전하는 사업마다 연거푸 실패를 맛봤고 결국 나와 남편은 중소기업체들이 질만한 어마어마한 빚을 졌다"라며 "빚은 우리의 삶이었다. 희망이 안 보였다. 빚 다 갚고 죽자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라고 밝혔습니다.
절망한 부모님께 빚이 된 건 아들 박현빈의 성공이었는데요. 박현빈은 2006년 '빠라빠빠'로 데뷔한 이후 같은 해 정규앨범을 발매하자마자 타이틀곡 '곤드레만드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5억 넘는 빚이 남은 상황이라서 박현빈은 돈을 벌어들이는 족족 수첩에 적은 빚 목록을 없애는데 사용했습니다. 때문에 한 달에 150~200회가량 무대를 소화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박현빈의 주머니에는 만 원짜리 한 장이 없었지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자면서 1년 반 동안 활동한 끝에 박현빈은 후속곡 '오빠만 믿어'로 활동을 시작할 무렵 마지막으로 남은 4천만 원의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이봉원 10억
개그맨 이봉원은 사업 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가라오케, 카페, 식당 등 요식업은 물론 유아용 교육 비디오와 엔터테인먼트, 연기학원 등 그 분야도 넓었는데요. 도전이 많았던 만큼 실패를 통해 떠안은 빚도 컸습니다. 당시에 대해 이봉원은 "사업 실패로 빚이 불어나 한 달 이자만 500만 원이었다"라며 어마어마한 빚의 액수를 가늠케했습니다.
실제로 10억 이상의 빚이 있었다는 이봉원은 10년간 방송과 행사 등을 통해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이에 대해 이봉원은 "아내 박미선에게 10원 한 장 빌리지 않았다"면서 "나는 아내 돈을 갖다 쓴 게 아니다. 다만, 그동안 집에 돈을 가져다 주진 못했을 뿐"이라고 직접 채무를 갚았음을 해명했습니다. 방송활동이 활발했던 박미선에 비해 TV 출연이 드물었던 이봉원을 두고 박미선이 번 돈으로 빚을 갚았으리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에 대해 억울한 심경을 밝힌 것인데, 대중들의 예상과 달리 이봉원은 TV 출연 외에도 행사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만으로 10억 원의 빚을 모두 갚은 것.
김구라 17억
방송인 김구라는 2014년 전 부인이 만든 17억 원을 빚을 알게 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까지 앓았습니다. 해당 채무는 앞서 2010년 전 부인이 소위 돈놀이를 하는 친언니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생긴 빚인데요. 신용불량자가 된 김구라의 전 부인이 사채를 끌어다 쓰면서 이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6억 내외의 원금에 이자만 10억 이상 붙게 되면서 총 17억 원의 채무가 발생한 것.
무엇보다 전 부인이 빚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김구라는 제3자를 통해 채무상황을 전해 들었고 이 과정에서 부부 사이 신뢰가 깨지면서 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습니다. 다만 김구라는 "소송을 당하면 아이 엄마가 구속될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아들 동현 군을 낳고 키워준 고마움을 이유로 들어 17억 원의 빚을 떠안기로 했는데요. 하루빨리 빚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김구라는 제의 들어오는 모든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실제로 3년간 출연한 프로그램이 48개에 달했습니다. '파일럿의 요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TV만 틀면 나오던 김구라는 2017년 한 예능 프로를 통해 "빚을 다 갚았다"라고 말하면서 채무 청산을 인증했습니다.
김형석 20억
작곡가 김형석은 결혼 전 20억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김형석의 아내 서진호 씨는 "남편 돈 보고 결혼한 거 아니다"라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김형석은 2006년 지인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배우 서진호와 연애를 시작했고 2010년 결혼을 결정할 당시 20억 원을 빚을 지고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김형석은 결혼을 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프러포즈할 수 없었고 대신 20억 원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놀랍게도 서진호가 "열심히 일해서 갚아나가면 되지"라며 "대신 돈 관리는 내가 하겠다"라고 김형석의 마이너스 통장을 넘겨받았습니다. 이후 서진호는 친정의 도움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했고 김형석에게 들어오는 저작권료를 알뜰하게 굴려서 단 2년 만에 20억 원의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저작권이 등록된 곡만 해도 1200곡이 넘는 김형석은 단기간에 6억을 받기도 했고 연간 10억 원을 꾸준히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요. 다만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큰 수익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허경환 27억 3000만 원
개그맨 허경환은 사업에 성공한 몇 안 되는 연예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닭가슴살 사업으로 대기업과 경쟁할 수준이라고 알려진 허경환 역시 30억 가까운 빚을 진 적이 있는데요. 앞서 함께 회사를 운영하던 동업자가 회삿돈 27억 3000만 원을 빼돌리고 사라지면서 그 빚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된 것. 방송과 사업을 병행하느라 동업자에게 인감도장과 법인통장 등을 모두 맡겼던 허경환은 빚을 독촉하는 전화가 걸려오면서부터 동업자의 횡령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당시에 대해 허경환은 "내가 라디오 DJ를 하고 있었는데 청취자 전화를 끊고 바로 빚쟁이 전화를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채무 문자가 매일 왔다. 숨을 못 쉬겠더라"라고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했는데요. 빌린 자금을 달라고 찾아온 공장장에게 자신의 개인통장 든 전액 3천만 원을 모두 입금하는 등 변제에 대한 확신을 준 끝에 허경환은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홈쇼핑을 통해 사업에 안정을 찾은 허경환은 매출 급등으로 승승장구 중.
윤정수 30억
개그맨 윤정수는 빚보증으로 인해 30억 원의 부채를 떠안은 경우입니다. 당시 윤정수는 20억 원 상당의 집을 경매 당하고도 10억 원의 빚이 남아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처음에는 "도장을 찍었으니 내가 책임지자"라는 마음으로 8억 원의 빚 가운데 열심히 일해서 2억 원 정도를 갚았습니다.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서 쉬는 동안 법정이자가 늘어나면서 빚이 다시 8억 원이 되자 윤정수는 '내가 쓴 게 아닌데'라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10억 가까운 빚을 해결하지 못한 윤정수는 개그맨 최초로 파산신청을 하는 불명예를 얻었는데요. 파산신청 후에도 보증 빚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빌린 지인들의 채무는 따로 갚아나갔습니다. 이를 위해 윤정수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면서 밤무대 행사까지 뛰었습니다. 하루에 나이트클럽을 6개씩 돌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2016년 예능 프로 '최고의 사랑'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2017년 초에 빚을 모두 청산했습니다. 2019년에는 신용등급도 회복되면서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도 사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지요.
이동준 50억
태권도 선수 출신의 배우 이동준은 "태권도의 위상을 영화와 문화로 붐을 일으켜보겠다"라는 포부를 안고 영화 제작에 나섰다가 50억 원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2004년 개봉한 해당 영화는 제작비 52억 원을 투자하고 할리우드 스타 스티븐 시걸까지 섭외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로 화제를 모았으나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동준은 투자금 52억 원 가운데 2억 원만 회수할 수 있었지요.
사실 이동준은 처음부터 해당 영화에 큰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 아니었는데요. 투자자가 돈을 주기 전에 제작에 들어가는 실질적인 비용을 먼저 대려던 것이 그 액수가 늘어나면서 집을 파고 가게를 팔며 수십억을 들이게 된 것. 자산을 팔아서 투자하고도 현금 빚이 9억 원이나 남았다는 이동준은 "내가 벌인 일이니까 모든 걸 지려고 했다"면서 "망했어도 내가 벌어서 갚는다는 마음"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이동준은 3년 동안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밤무대 행사를 뛰면서 빚을 모두 청산했습니다.
이상민 69억
방송인 이상민은 90년대를 대표하는 혼성그룹 룰라의 멤버이자 가요계 대표 프로듀서였습니다. 하지만 직접 운영하던 음반 기획사가 부도나고 이후 도전한 외식 사업까지 실패하면서 수십억의 빚을 지게 되었는데요. 2005년 이상민은 69억 8000만 원에 달하는 빚더미와 함께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에 이상민은 파산신청을 선택하는 대신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고 실제로 수입이 생기는 대로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2012년 출연한 예능 프로 '음악의 신'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상민은 연예계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이상민이 70억 가까운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호감으로 작용했고 덕분에 주가가 오른 이상민은 다수 예능 프로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빠른 속도로 빚을 갚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2019년 모든 은행에서 압류해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이상민은 13년 만에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서 "신용은 한순간에 무너졌는데 회복은 13년 걸렸다"라고 말했는데요. 일반 직장인이라면 69억 원의 빚을 갚는 일은 불가능이었겠지요.
신동엽 80억
개그맨 신동엽은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흥행하는 반면 사업에서는 손대는 곳마다 망하는 일명 '마이너스의 손'입니다. 실제로 2004년 설립한 DY 엔터테인먼트는 무려 유재석, 김용만, 노홍철 등을 영입하고도 동업자의 배신으로 인해 망한 케이스. 이로 인해 신동엽은 횡령 혐의로 피소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어 2008년 도전한 다이어트 신발 아이젝스 역시 가맹점주들로부터 가맹점 가입비 관련 소송을 당하면서 빚만 떠안게 되었는데요.
두 개의 사업을 통해 신동엽이 떠안은 빚은 80억 원 상당. 이후 2010년부터 신동엽은 10개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활동에 집중했고 2011년에는 KBS에서만 7억 원 가까운 출연료를 받은 사실이 전해지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덕분에 2014년에는 자신이 진행하던 예능 프로를 통해 "빚을 모두 탕감했다"라는 사실을 밝혔지요. 이후 신동엽은 벌어들이는 수입을 부동산에 투자한 덕분에 2015년 홍대에 128억 원 상당의 빌딩과 청담동에 75억 원 상당 빌딩을 가진 건물주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