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3800원 예산으로 랍스터 급식 제공한 영양사, 연봉은 얼마?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리면 매점이나 분식집에서의 기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먹은 맛있는 음식은 행복한 감정으로 남아있기 마련이지요. 반면 매일 먹던 급식실 메뉴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경우는 드문데요. 수요일마다 특식으로 나오는 스파게티나 짜장면 역시 반복되는 탓에 지겨웠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2013년부터 2020년 사이, 세경고 혹은 파주중에 재학한 졸업생이라면 상황은 다릅니다. 해당 학생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메뉴와 함께 급식실에서의 즐거운 추억이 평생 남아있을 텐데요. 지난 7년간 학생들에게 행복한 맛을 선물한 주인공은 전 세경고 영양사 김민지 씨입니다.

유튜브채널_청운대학교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김민지 씨는 주변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게 보람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을 집에 불러 계란찜과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해주고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게 행복하던 여학생이었지요.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품영양학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충남 청운대학교 식품영약학과를 졸업한 후 2013년 10월부터 경기 파주시 세경고와 파주중의 영양사로 입사했습니다.

여성경제신문

김민지 씨는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 매번 같은 메뉴가 반복되어 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급식보다는 학교 근처 햄버거집이나 분식집에서 먹는 것이 좋았던 아쉬움을 가지고 내가 제공한 음식을 먹는 학생들에게만큼은 먼 훗날 급식실이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길 바랐습니다. 다만 영양사로서 일하는 것이 처음인 김민지 씨에게 세경고와 파주중 학생 1,100여 명의 공동급식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대해 김민지 씨는 "영양사로 일한 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메뉴를 냈다. 디저트를 꼭 내고 싶은 게 있었다. 밤새워서 그걸 다 해놨더니 실무사님들이 놀라시더라. 돌고래 바나나였는데 학생들이 너무 잘 먹어줬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밤샘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메뉴 선정을 한 초보 영양사일지언정 학생들에게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만큼은 베테랑에 버금가는 직업의식인데요.

조금은 어설프지만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김민지 씨는 조리실무사들은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한 달에 한 번 특식 메뉴를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가 처음 선보인 특식은 치킨마요덮밥. 대학을 갓 졸업한 김 씨에게 대학 재학 중 학식 대신 자주 사 먹던 한솥도시락의 치킨마요 메뉴는 익숙하면서도 맛있는 기억이었기 때문인데, 그 맛은 학생들에게도 통했습니다.

특식이 나오는 날은 학생들이 뛰어오는 소리부터 달랐고, 잔반 역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특식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지자 김 씨는 특식 비중을 늘렸습니다. 다만 중식비 기준 한 끼 3,800원이라는 예산은 여느 학교와 다름없이 같았기에 특식을 늘릴수록 일거리도 늘었습니다.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영영사인 김 씨는 저렴한 납품업체를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고, 조리 실무사들은 최대한 수작업을 많이 해서 단가를 낮춰야 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특식으로 제공했다가 반응이 좋아서 김민지 영양사의 시그니처 중 하나가 된 랍스터의 경우, 김 씨가 직접 수산시장부터 대형마트와 인터넷을 모두 뒤진 끝에 단가가 낮은 2~3곳을 최종 조사해서 입찰을 통해 제공했습니다. 5,500원에 납품받은 랍스터 메뉴는 크게 흥행한 덕분에 다른 영양사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지요.

랍스터 외에도 김 씨가 제공한 급식 메뉴 중에는 식빵에 구멍을 뚫어서 계란 넣고 마늘소스를 발라서 만든 갈릭 빵, 또띠아에 고구마 으깨고 견과류 올려서 만든 고구마 피자, 떡갈비를 오븐에 구은 다음 김치와 야채를 다져서 올리고 그 위에 치즈를 올리고 또 다른 종류의 치즈를 뿌린 다음 소스까지 끼얹어 제공하는 김치치즈스테이크, 나물 안 먹는 친구들을 위해 나물이랑 훈제오리를 다져서 만든 나물훈제오리 또띠아피자, 생선 안먹는 친구들을 위해 바싹하게 튀기고 양념치킨소스를 입힌 생선강정, 제철과일을 갈아서 만든 과일에이드 등 듣기만 해도 조리과정이 복잡한 메뉴들이 가득합니다.

굿모닝대한민국라이브 출연모습

이런 결과물을 내기 위해 김 씨는 영양사로 재직할 당시 야근도 불사했습니다. 아침 7시 반에 식자재가 들어오면 9시까지 1,100인분 이상의 오전 식자재를 검수하고 9시부터 야채를 다듬기 시작해 세척, 조리해서 11시 반부터 오후 1시까지 중식 배식을 합니다. 이후 짧은 점심 식사 후 서류 업무를 처리하고 2시 반이면 오후 식재료가 들어와서 이를 검수한 후 조리합니다. 4시 반부터 6시까지 저녁 배식을 하고 저녁식사 후 청소와 뒷정리는 하면 8시.

김민지 씨의 레시피 메모(아주경제)

그제서야 김 씨는 새로운 메뉴를 고민할 시간이 생깁니다. 평소 길 가다가도 맛있는 게 보이면 메모를 해둔다는 김 씨는 영양사로 일하는 동안 레시피를 메모하는 다이어리만 5권,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레시피가 700개 이상인데요. 메모해둔 아이디어 가운데 실제로 제공할 만한 메뉴를 고민하고 단가가 높은 식재료를 활용할 경우 미리 조리사님과 테스트해보는 것 역시 저녁 배식이 끝나고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지요.

굿모닝대한민국라이브 출연모습

SNS와 언론을 통해 김 씨가 유명해진 이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급식 질이 좋아진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급식은 정말 행복이다. 일을 즐겁게 해서 일하면서 한 번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야근할 때도 즐거워서 했다. 실무사님께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해도 마음에도 우러나는 즐거움에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리실무사 분들과 팀워크를 강조한 김민지 영양사

실제로 학교법인 연풍학원이 설립한 파주중과 세경고는 사립학교로 김민지 씨는 해당 법인에 계약직으로 입사한 영양사입니다. 이는 임용고시를 통해 선발되어 공립학교에 근무하는 영양교사와는 다른데요. 학교에서 학생들의 급식을 책임지는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은 같으나 채용 방식의 차이로 인해 영양교사는 교육공무원인데 반해 영양사는 교육공무직원(비정규직)입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양교사와 영양사의 연봉 수준 역시 차이가 납니다. 인권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년 차 영양교사는 3,131만 원, 영양사는 2,779만 원으로 영양교사 대비 78.7%를 받고, 11년 차에는 영양교사 4,915만 원, 영영사 3,139만 원으로 63,9%를 받으며, 21년 차에는 6,496만 원과 3,499만 원으로 53.8%를 받아서 연차가 높을수록 임금격차에 켜졌습니다.

김 씨의 후임을 선발하는 세경고의 채용공고를 바탕으로 예상하면 김 씨의 연봉 수준 역시 일반적인 영양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벤트를 위해 분장한 모습

그런 의미에서 김 씨가 "학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너무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했다"라고 말한 것이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지네요.

유퀴즈온더블록

한편 김 씨는 지난해 8월 말을 끝으로 첫 직장인 학교를 퇴사하고 현재 GS그룹 본사 구내식당에 총괄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이직 후 근황에 대해 전했는데요. "회사 직원분들은 갈비탕이나 해장국 같은 한식 메뉴를 선호하시더라"면서 "특식 나오는 날 기뻐하는 표정은 학생과 똑같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영양사로서 여전한 열정이 돋보였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진행자인 유재석은 김 씨가 과거 내놓은 급식 메뉴들은 보고 "(대기업에) 스카우트될 만하다. 급식의 차원을 넘는다"라고 감탄하기도 했는데요. 자타공인 최고의 메뉴를 내놓기 위해 한정된 예산 안에서 노력한 바가 인정되었기에 지난 2016년 교육공무원 신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생건강증진분야' 유공자로 선정되어 교육부 장관 표창까지 받은 것이겠지요.

연봉이나 안정성만 놓고 봤을 때, 영양사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할 만한 직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열정을 다해 임한 결과 김민지 씨는 영양사라는 직업의 가치 자체를 높였고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가치 역시 높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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