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줄 테니 공항에서 노숙하라고? 코로나 사태에도 꺼지지 않는 일본의 골판지 사랑

13일 기준 일본에는 신규 코로나 확진자가 294명 나오면서 누적 확진자가 8403명으로 늘었습니다. 그중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탑승객은 712명이지요. 이런 가운데 '제2의 프린세스호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데요. 바로 일본 도쿄에 있는 나리타 국제공항의 상황 때문입니다.

공항이 생긴 1978년 이후 처음으로 활주로 2개 중 1개가 일시 폐쇄된 상황인 나리타 공항에는 때아닌 골판지 더미가 등장했습니다.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 이 골판지들의 용도는 놀랍게도 침대인데요. 나리타공항이 입국자들을 위한 임시 격리 시설로 '골판지 침대'를 제공한 것입니다.

지난 10일경 일본 현지의 온라인상에는 SNS를 중심으로 나리타공항의 상황을 전하는 사진과 목격담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해당 게시물의 글쓴이들은 나리타공항에서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 목적으로 '골판지 침대'를 제공한다고 전했는데요. 공개된 사진 속에는 수하물을 찾는 컨베이어 벨트 공간 옆에 2m도 채 되지 않는 간격으로 촘촘하게 배열된 골판지 침대가 보입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오늘은 여기서 잔다.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나올 수 없다"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직접 털어놓았고, 또 다른 SNS 이용자는 "친구가 홍콩에서 돌아왔는데 코로나 검사가 나올 때까지 이틀간 골판지를 받고 공항에서 숙식을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건 선진국 일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또 공항에 격리된 한 SNS 이용자는 "다들 감염자가 있으면 큰일 나겠다며 벌벌 떨고 있다. 이 정부는 감염되지 않는 사람들도 감염시킬 셈인가"라며 공항에 대기 중인 사람들의 불안한 상황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대기 중에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감염돼 버린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상황과 같다"라며 앞서 발생한 집단감염 사례와 닮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요.  결과가 나오기까지 보통 하루 넘게 걸리는 상황에서 고위험군이라고 볼 수 있는 해외 입국자들이 모여있는 것이 감염 확률을 높인다는 비판은 충분히 새겨들을만해 보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골판지 침대는 사실 일본에서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했던 아이템입니다. 체육관 바닥 등에서 자야 하는 피난생활 중 '이코노미 증후군'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겪는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고안되었지요.

다만 아무리 좋은 물건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의 골판지 사랑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요. 지난해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 선수촌에 골판지 침대를 공급한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정상급 선수들이 골판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세계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까요?

일본의 남다른 골판지 사랑은 코로나 사태에도 이어져 돗토리현에서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대책으로 골판지 칸막이를 설치하여 사용하는 관공서와 회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쓰레기봉투를 펴서 책상과 책상 사이를 막는 방법과 함께 '돗토리형 오피스 시스템'으로 불리며 화제가 되었지요.

다만 야심 차게 내놓을 일본 정부의 구호물품들에 대해 현지 언론과 대중들의 반응은 다소 싸늘합니다. 골판지 침대 이전에는 가구당 2장씩 배포한 마스크 역시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요. 방역 마스크가 아닌 천 마스크를 주면서 세탁하여 사용하라고 권하는 데다 식구 수와 상관없이 가구당 2장만 주겠다는 정부 방침은 황당할 정도인데요.

때문에 SNS 상에는 "배송비가 더 드는 졸속행정",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쓰라는 건가"라는 비판의 글과 함께 각종 패러디물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4인 가족에게 2장씩 배부하는 천 마스크에 이어 노숙에 가까운 공항 격리를 위한 골판지 침대까지, 코로나 사태로 지친 사람들에게 응원은커녕 절망을 안겨주는 탁상행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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