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외도와 시집살이로 뇌경색 온 주부가 매출 230억 대박 사업가가 된 비결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 대해서 굉장히 다른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합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자녀 양육이라는 가정의 대의를 위해 개인적 커리어를 포기했다는 안타까운 시선과 "취집 갔네"라며 더 이상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부러운 시선이지요.

특히 재력 있는 남편이나 시댁을 만난 여성이 전업주부로 지내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남편과 시어머니에 시누이까지 의사인 집안으로 시집간 주부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아들을 군에 보내고 나서야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섰다는 주인공은 바로 요리연구가 이혜정입니다. 타고난 요리사로 보이는 이혜정은 사실 대학시절 전공이 요리는 아니었는데요. 다만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어머니 덕분에 여대의 가정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서기를 좋아하고 두 남동생을 끌고 다니며 골목대장 하기를 즐겼던 이혜정은 "여자는 참고 사는 게 행복이다"라는 지론을 가진 어머니와 늘 갈등이었습니다. 이혜정의 어머니는 딸에게 손수 만든 주름치마에 꽃을 단 뜨개 옷을 입히고는 아침마다 "목소리를 낮춰라. 보폭을 줄여라"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치마보다는 바지가 편했던 이혜정은 어머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알았다고, 알았다고"라고 대답했지요.

그때마다 이혜정을 안아주며 "네가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엄마가 저러는 거야. 네가 만약 동생들처럼 남자였으면 엄마도 이런 네 모습을 즐거워하셨을 텐데"라고 위로해 준 건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이혜정의 아버지는 대기업 평사원으로 시작해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 이종대 회장으로, 이혜정은 부유한 집안의 장녀로 부모님의 기대 속에 자란 셈입니다.

다만 '인내'와 '성실'만을 강조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것이 늘 숨 막혔다는 이혜정은 20대 초반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23살이던 1978년 이혜정은 친구의 주치의였던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고 이듬해 결혼하면서 부모 곁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지요.

숨 막히는 친정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던 이혜정의 결혼생활을 오히려 더한 감옥살이의 시작이었습니다. 결혼 당시 레지던트인 남편은 물론 시어머니와 시누이까지 모두 의사였던 시댁에서는 직업이 없는 이혜정을 마치 다른 세상 사람인 양 무시했는데요. 결혼 전부터 시어머니는 과한 욕심으로 혼수 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12자짜리 자개농을 사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의 강요로 작은 아파트 한 채 값이 나가는 12자 농을 산 이혜정은 너무 큰 농을 둘 공간이 없어 시부모님 대신 안방을 써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겪었습니다.

결혼 후 시집살이는 더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이혜정의 시어머니는 첫아이를 낳은 며느리 이혜정을 8인실에 입원시키며 "산후우울증이 올 수 있으니 여러 사람 있는 데가 좋다"라는 황당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러고는 시누이가 출산하자 1인 특실에 입원시키며 "넌 성격이 좋지만 쟨 예민해"라고 변명했지요. 게다가 시누이가 레지던트를 할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시누의 아기를 보라고 시켰는데요. 당시 이혜정은 자신의 자녀 둘을 데리고 시누이 집으로 가서 총 3명의 아이의 육아를 맡아야 했습니다.

하루는 시누이의 아이가 자꾸 우니까 애를 업고 나갔다오라고 해서 이혜정은 정작 본인의 자녀들은 시누이 집에 둔 채 조카를 업고 아파트 단지를 돌기도 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겨우 애를 달래고 들어오니 시누이는 밥 먹고 소파에 누웠고 시어머니는 딸에게 과일을 깎아 주고 있었지요. 돌아온 이혜정은 아기를 업은 채 설거지를 했고, 엎드려서 식탁 밑을 닦으면서 느낀 치욕감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남편만 그 마음을 알아줬더라면 시집살이는 견디고도 남았겠지요. 남편 고민환은 그런 이혜정의 마음을 위로하기는커녕 더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결혼 15년 차가 되던 해에 남편은 이혜정에게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머리는 뒀다가 어디다 쓰는 거냐?"라고 폭언했고 당시 39살이던 이혜정은 서러운 마음에 '내가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나'하는 마음으로 가장 잘 하는 일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사실 이혜정은 결혼 전부터 요리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는데요. 부모님 몰래 스위스의 한 대학교 요리과에 원서를 넣어 유학을 떠났다가 붙잡혀 오기도 했고, 이후 어머니의 바람대로 여대의 가정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유명 호텔에 요리를 배우겠다고 무작정 찾아가 달걀 700개를 까는 열성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아이와 남편을 위해 접어둔 꿈을 다시 꺼내든 이혜정은 남편에게 "요리 선생님이 되겠다"라고 선포한 후 요리교실을 열었습니다. 재료비 11만 원을 가지고 시작한 조촐한 요리교실은 점차 입소문을 탔고 대구MBC의 TV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요. 반면 인기가 늘어날수록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움과 부담이 생긴 이혜정은 큰 아들을 군대 보내면서 남편에게 유학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본인이 관리하던 이혜정의 수입 중 3천만 원을 꺼내주며 "당신이 애쓴 것만큼의 효과도 가져와"라는 말로 응원하며 유학을 허락했지요. 덕분에 이혜정은 43살의 다소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 토리노 ICIF 요리학교에 들어갔고, 정량화하지 않는 한국식 요리 방식을 특별하게 여긴 담당 교수에게 "어머니가 해주는 집 밥처럼 요리한다"라는 의미로 '빅마마'라는 애칭까지 얻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귀국한 이혜정은 2004년 요리 전문 채널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요리프로를 진행하면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탁월한 요리 솜씨와 더불어 맛깔나는 입담은 주부를 비롯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게다가 각종 예능 토크쇼에 출연해 방송인으로서의 매력까지 보여준 덕분에 이혜정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꿈을 펼치기 시작한 이혜정은 가족과 가정을 돌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고, 그러는 동안 남편은 외도로 다시 한번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당시 이혜정은 잠도 들지 못하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며 지냈고 난생처음 술까지 배워 결국 뇌경색까지 앓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미안해. 내가 잘할 테니 기다려봐"라는 남편의 말에 한 번 더 속아보기로 한 이혜정은 결혼생활을 이어갔는데요. 이후 가정과 일의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한 이혜정은 사업에서 더욱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2010년 '빅마마 비프스테이크'로 홈쇼핑 사업에 진출한 이혜정은 2011년 현대홈쇼핑 식품 판매 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고 당시 매출이 230억 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홈쇼핑 대박에 힘입어 이혜정은 2013년 '키친 스토리'에 이어 2016년 '밥 친구'까지 설립하고 각종 간편식품을 개발해 판매 중인데요. 현대홈쇼핑에 이어 NS홈쇼핑과 계약하면서 홈쇼핑 대박 행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거기에 애견사료 브랜드 '왈와리' 운영을 맡고 각종 강연에 방송까지, 이혜정이 의학박사인 남편의 수입을 뛰어넘은 건 이미 오래전 일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혜정은 30년간 남편이 관리해오던 경제권을 5년 전부터 자신이 관리하게 된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데요. 결혼 후 두 자녀는 물론 시누이의 아이까지 육아를 도맡으면서도 "할 줄 아는 게 뭐냐"라는 폭언을 듣던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이지요.

한편 지난 2018년 고인이 된 이종대 회장은 딸 이혜정의 결혼식에 손을 잡고 들어가며 "우리 참지 말고 견뎌보자. 참는 건 억울하지만 견디는 건 보람"이라며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딸에게 응원을 전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혜정은 그때 아버지가 해준 말씀을 떠올리며 힘든 시기를 버텼다고 전했지요.

이종대 회장의 말씀대로 이제 이혜정에게는 견뎌온 지난 세월에 대한 "보람"을 즐길 일만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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