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 1호 매니저가 장윤정 덕분에 20억 빚 갚은 사연

최근 직장인 소셜미디어 블라인드에서 직장인 22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투잡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37%가 '그렇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더 이상 평생직장의 개념은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고 이직과 투잡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요.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투잡의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았는데요.

무려 18년 전 "투잡스족"을 소개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투잡스족의 대표로 소개된 주인공은 바로 매니저이면서 작곡가인 윤명선입니다. BTS의 아버지 방시혁이 시상식에서 "제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 음악을 할 수 있게 프로 작곡가로 일할 수 있게 해주신 윤명선 형"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로 익숙한 윤명선은 사실 JYP 설립 초창기 박진영의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윤명선 본인의 말 한 바에 따르면 아버지가 자유분방했던 탓에 어린 시절 할머니와 살았고 워낙 가난해서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요. 환경이 불우했음에도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것은 예술가로서 재능을 물려주셨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1987년 경기대 행정학과 2학년 재학 중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MBC 신인가요제에 참가한 윤명선은 자작곡 '크리스탈'로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해당 자작곡은 음악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던 윤명선이 음악 하는 선배에게 빌린 기타로 이틀 만에 만들어 낸 것인데요. 이후 윤명선은 해군홍보단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제대로 음악과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윤명선은 해군홍보단에서 가수 김건모를 비롯해 추가열, 개그맨 김용만, 심현섭, 지석진 등과 함께 복무했고 각종 악기 전공자들 사이에서 수준 높은 음악을 접하며 진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외딴섬마을을 방문해 공연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 감동받는 음악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지요.

음악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고 전역한 윤명선은 친형에게 6천만 원을 투자 받아 자작곡으로 가득 채운 자신의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앨범 발매 직전 가요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지금은 어떤 음반이 나와도 상대가 안 되겠다'라는 마음에 미련 없이 접었지요. 대신 꿈꾸던 가수 활동을 접은 그가 찾은 새로운 일은 월급 30만 원짜리 로드 매니저. 대학 3학년 시절 윤명선은 그렇게 연예계에 입문했습니다.

가수 이주원을 시작으로 배우 장동건의 로드 매니저를 맡게 된 윤명선은 한 달에 30만 원을 받아 27만 원을 월세로 내면서도 맡은 연예인의 PR을 위해 홍보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방송사를 돌면서 지금은 단종된 한방음료 경옥고를 PD들의 책상 위에 올려둔 것인데요. 사이다가 한 병에 300원 하던 당시 경옥고는 무려 1100원이었고 특별한 홍보전략을 위해 윤명선은 아는 선배에게 목돈을 빌렸습니다.

매일 새벽 6시 30분 방송국으로 출근해 경옥고를 돌리고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하던 매니저 윤경선은 금세 유명해졌습니다. 연예계와 방송국에는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경옥고매니저'이자 '일 잘하는 매니저'가 되었지요. 그리고 1994년 '날 떠나지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박진영이 그 소문을 듣고 윤명선에게 연락해 왔습니다.

JYP 설립 멤버가 된 윤명선은 박진영을 비롯해 이후 JYP 가수들의 매니저로 6년간 일했습니다. JYP 1호 가수 진주는 당시 다른 타이틀곡이 있었으나 매니저 윤명선의 강력한 주장으로 '난 괜찮아'를 타이틀곡으로 변경한 덕분에 대박이 났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대박곡을 보는 눈이 탁월했던 그는 못다 한 음악의 한을 풀기 위해 직접 음반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1999년 윤명선이 제작한 가수 김사랑의 1, 2집 앨범이 연이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윤명선은 20억 빚만 남았습니다. 음악으로 쓴맛을 보고 쉬는 동안 설치미술가 장승효와 계약하면서 아트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가요계로 복귀한 윤명선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작곡 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 심수봉의 '진실 그 사랑'부터 장나라의 '물망초', 보보의 '청혼' 등을 만들며 작곡가로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2003년 드디어 '어머나'를 탄생시켰습니다. 길을 가다가 "어머나"하면서 넘어지는 여성 행인을 보고 영감을 얻은 윤명선은 작사, 작곡을 모두 합쳐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어머나'를 완성했는데요. "연말 작곡상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호언장담한 윤명선의 예상과 달리 가수들은 모두 이 곡을 거절했습니다. 덕분에 주현미, 송대관, 김혜연, 엄정화 등 무려 7명에게 퇴짜를 받은 곡의 최종 주인은 바로 신인가수 장윤정이 되었지요.

윤명선이 호언장담 한대로 '어머나'는 그를 최고의 작곡가 자리에 올려놓았고 신인가수 장윤정을 단번에 트로트계 여신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연말 KBS와 서울가요대상 작곡가상을 휩쓴 윤명선의 수상소감은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데요.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너무나 노력하고 있는, 아니 고생하고 있는 매니저 여러분들께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라며 매니저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소감을 대신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여전히 윤명선은 스스로를 작곡가가 아닌 매니저로 소개했습니다. 본업은 매니저이고 작곡은 매니저로서 최고의 음반을 제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지요. 그러면서 음악에 대한 전문적 지식보다 아티스트와 대중의 중간에 있는 매니저로서 양쪽이 원하는 바를 조화롭게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장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승철의 '서쪽하늘', 이루의 '까만안경', 슈퍼주니어T의 '로꾸꺼'등 히트곡을 작곡하고 가수 마골피를 제작하기도 한 윤명선은 지금까지 트로트와 가요를 넘나들며 작곡가로서 제작자로서 활동 중입니다. 지난 2017년에는 보다 특별한 인연을 맺은 가수의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는데요. 무려 25년 만에 복귀했다는 해당 가수는 바로 윤명선의 아내이자 가수인 정혜선입니다.

로드매니저 시절 경옥고를 돌리며 열심히 활동한 윤명선의 원동력 중 하나는 바로 당시 여자친구였던 정혜선이었습니다. 정혜선의 음악적 천재성을 알아본 윤명선은 빨리 돈을 벌어 앨범을 내주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일했는데요. 실제로 정혜선은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하늘'이라는 곡으로 은상을 수상한 후 음반을 발매한 가수입니다. 당시 가요계에서 정혜선은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했고 완성된 2집 앨범은 제작자인 사진작가 김중만의 사정으로 인해 정식 발매조차 하지 못했지만 수록곡 '꿈속의 꿈'이 네티즌들 사이에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우리 음악 100곡"으로 선정될 정도였습니다.

1998년 결혼에 골인한 동갑내기 윤명선과 정혜선은 음악적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만 육아에 집중하다 보니 정혜선의 음악 활동은 점차 미뤄졌고 그렇게 지낸 공백기가 무려 25년이 되었지요. 그리고 2017년 드디어 발매하지 못했던 2집 앨범을 리메이크 형식으로 재발매했고 2018년에는 3집 앨범까지 내놓았습니다. 제작자는 물론 남편이자 최고의 제작자인 윤명선입니다.

윤명선은 최근 송가인의 '무명배우'와 '엄마아리랑' 그리고 유산슬의 '이별의 버스정류장'의 작곡가로서 각종 예능에 얼굴을 비추면서 시청자들에게 건강한 웃음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음악적 기술보다는 인생의 경험에서 곡이 나온다는 윤명선에게 가요와 트로트, 매니지먼트와 작곡, 제작자와 예능인 등의 경계는 무의미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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