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37억 받던 야구선수가 햄버거 가게를 차린 이유

요식업에 뛰어든 유명인들의 경우 "맛과 서비스로 승부를 보겠다"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세웁니다. 물론 맛과 서비스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사업이 성공할 수 없겠지만 사업 초반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유명인 인지도 만큼 효과적인 마케팅이 없기 때문이지요.

반면 라멘집을 차리고도 워낙 홍보를 하지 않는 바람에 팬들이 먼저 나서서 해당 식당이 도대체 어디냐고 추궁했다는 특별한 사연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심지어 팬들의 추궁에 그가 한 답변은 "라면은 집에서 끓여 먹는 거야"였다고 하는데요.

본업에서도, 사업에서도 남다른 FLEX 기질을 자랑하는 주인공은 바로 야구선수 김병현입니다. 성균관대에 재학 중이던 1999년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해 우리나라 아마추어 선수로서는 메이저리그 최고 계약금인 225만 달러를 받은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성균관대를 중퇴하고 21살 나이에 미국으로 간 김병현은 2001년 아시아인 야구선수 최초로 월드 시리즈에 참가했고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쥔 전설의 야구선수입니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역대 한국인 빅리거 중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개를 낀 선수이기도 하지요. 누구나 인정하는 김병현의 전성기인 2002년 그는 72경기 8승 3패 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4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거 시절 연봉만 237억 원을 받은 김병현은 야구선수로서의 자신의 전성기를 1999년으로 꼽습니다. 이후 투수로서 자신의 실력이 늘 내리막이었다고 말하는데요. 21살 어린 나이에 혼자 시작한 미국 생활에서 '인간관계'에 큰 벽을 느낀 김병현은 선수로서 고민이 생겨도 털어놓을 곳이 없어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대해 김병현은 "한국에서는 못하더라도 친구 사이면 서로 도와주고 '술 한잔하자'하면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미국은 잘 할 때는 옆에서 잘 해주는데 야구를 못하면 말도 안 붙인다. 나는 마음을 줬는데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돌아서니까"라며 힘들었던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지요.

특히 미국 진출 이후 3년 차였던 2001년부터는 성적과 별개로 공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에 대해 지적하고 도와주는 코치가 필요했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김병현은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때문에 동료들이나 언론을 대할 때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평생 꼬리표가 된 '법규' 논란 역시 이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없다고 느낀 김병현은 2004년 "선수 생활을 그만둘까"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던 중 요식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부진한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2004년에 선수 생활을 그만둘 요량으로 실제로 식당까지 차렸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입니다.

김병현이 처음으로 연 식당은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연 초밥집입니다. 야구선수로서의 명성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야구를 그만둔 이후 제2의 인생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시작한 덕분인지 식당은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 이후 김병현은 팜스 스프링에 초밥집을 하나 더 냈고 야구 역시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면서 투잡러가 되었지요.

2007년 플로리다 말린스 소속 시절에는 미국 언론에서도 김병현의 사업에 관심을 가질 정도였는데요. 그해 7월 샌디에이고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김병현이 동료 선수 3명을 데리고 운영 중인 식당을 찾아가 운영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이 현지 매체에 집중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사업가로서는 승승장구를 이어갔지만 선수 생활에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2008년 3월 소속팀에서 방출되었고 2009년 WBC 출전으로 재기를 노렸으나 여권 분실로 해프닝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제외되었지요. 다만 힘든 시기에 만난 인연은 오랜 시간 미국에서 외로움에 지쳐있던 김병현에게 새로운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인연으로 결혼까지 골인한 김병현의 아내는 단국대 연극영화과 99학번을 졸업하고 각종 뮤직비디오와 뮤지컬에 출연한 배우 한경민인데요.

2006년 한 식품회사 광고에 출연하면서 막 얼굴을 알린 한경민은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던 중 김병현과 만났습니다. 첫 만남에서 한경민은 김병현이 야구선수인지조차 몰랐고 큰 호감을 가지지 못한 채 헤어졌는데요. 이후 한경민에게 반한 김병현이 적극 대시했고 특히 손편지를 통해 '우리는 해피엔딩할 거니까, 절대 이 끈을 놓지 맙시다'라는 문구로 진심을 전달하면서 두 사람은 결국 2010년 3월 결혼까지 골인했습니다.

가정을 꾸린 덕분인지 편하게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는 김병현은 2012년 넥센과 계약하면서 국내 리그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KIA 타이거즈에서 뛰면서 원하던 고향 광주에서 지냈지요. 더불어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다시 한번 발휘하게 되는데요. 고향인 광주에 한식집 외에 보다 트렌디한 음식점이 없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서 일본식 라멘집 프랜차이즈를 연 것입니다.

하지만 광주에 라멘집을 열고도 김병현의 광주에 있는 기아 팬들에게 자신의 식당에 대해 일절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팬들이 먼저 나서서 "라면집이 어디냐"라고 위치를 물을 정도였지요. 이에 김병현은 "라면은 집에서 끓여 먹는 거야"라고 답해 남다른 FLEX를 선보였습니다. 이름값이 아니라 '맛과 서비스'로 직접 승부를 보겠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셈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병현은 이미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받은 연봉만 하더라도 2000만 달러, 한화로 237억 원이 넘습니다. 미국 활동 당시 김병현은 갑작스럽게 번 돈을 쓸 줄 몰라 당황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당시 김병현은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에 수영장과 정원이 딸린 집을 3채나 매입했고 지인들에게 빌려준 돈도 10억 원이 넘는다고 하네요. 게다가 만 45세부터는 메이저리그 연금도 신청할 수 있는데, 그가 수령할 연금액이 연간 20만 달러 이상이라고 하니 "식당을 차린 건 돈 때문이 아니다"라는 김병현의 말에는 충분히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2018년에 해방촌에 문을 연 태국음식점 역시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들른 조그마한 태국 식당이 너무 맛있어서 즉흥적으로 투자를 결정한 것인데, 주방 겸 사장이었던 현 직원을 설득해 새롭게 레스토랑을 개업했고 메뉴 설정과 음식 맛에 대한 김병현의 까다로운 조언을 더한 끝에 전보다 훨씬 많은 손님들이 찾는 인기 식장으로 거듭났지요.

그리고 지난해 6월 김병현은 고향 광주에 또 하나의 핫플레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자신의 모교 이름을 딴 수제버거 집을 오픈한 것인데, 개업일에 다음날 장사할 재료까지 동이 나면서 개업 다음날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5개월 정도 준비해서 재미 삼아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김병현은 이름만 빌려주고 돈을 벌려는 사업은 애초에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합니다.

양수리의 한 식당에서 맛있는 수제버거를 발견한 김병현은 해당 가게가 곧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듣고 수제버거 레시피를 전수받아 천연 식재료를 이용한 건강한 버거에 도전했습니다. 과거 미국 생활 당시 저렴한 인스턴트 햄버거를 많이 먹으면서 건강이 나빠진 경험을 되새기면서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세웠지요. 거기에 직접 인테리어 작업까지 해가며 만든 가게이니 그저 '재미로' 시작했다는 말은 지나친 겸손이 아닌가 싶네요.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맛을 내느라 수익이 많지는 않다는 김병현은 사업으로 인해 돈을 벌 욕심은 없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특별한 꿈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장에서 햄버거를 파는 것"인데요. 메이저리그 활동 당시 햄버거를 먹는 관중들의 모습이 익숙했던 김병현에게는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목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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