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출신 예능 PD 딸 퇴사 소식에....부모님이 한 말

전공에 따라 취업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학 졸업장이 취업에 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지만 대한민국에서 학벌은 여전히 빼놓을 수 없는 커리어 중 하나인데요. 데뷔 20년 차 배우 김태희는 여전히 서울대 출신 스타로 불리고 10여 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이소은은 고등학교 시절 토플 만점을 받은 이력으로 화제가 되는 것이 현실이지요. 실제로 학벌이 좋을수록 고소득 연봉을 보장받는 직업을 택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인데요. 학창시절 다양한 유혹을 뿌리치고 학업에 매진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요.

한편 우리나라 수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를 졸업하고도 여전히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끼쟁이 전직 PD가 있는데요. 종편 최초의 카이스트 출신 예능 PD로 입사해 인기 예능 '아는형님'을 함께 이끌어갔지만 넘치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감히 퇴사했다는 허서문님을 만나보았습니다.

▷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 연기자, 농구선수, 슈퍼모델, 과학자, 외교관 등 장래희망이 너무나 많았다. 심지어 저 많은 꿈을 장래희망란에 모두 다 적어서 제출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대체로 미디어가 주목하는 인물들을 동경해서 막연히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듯한데, 우지원 선수가 멋져 보여서 농구를 배우고 '나도 농구를 잘해서 국위선양해야지'하는 단순한 메커니즘이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꿈이 아닌가 싶다.

▷ 유년기나 학창시절에도 끼가 많은 아이였나
▶ 어려서부터 끼와 흥이 많았다. 초등학교 2학년쯤 소풍을 가서 밤새 개발한 '나만의 로봇춤'을 선보이기도 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사바나 코너를 본떠서 개그 콩트를 대본부터 다 만들 정도였다. 학교 축제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 적은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당시 극수험생기 뿐이었다.

▷ 카이스트 재학 중 학과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졸업까지 장학금을 받았다고 들었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공부를 잘한 비법이 있다면
▶ 무엇보다 중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위해 시험을 잘 치는 비법이 궁금할 것 같다. 다행히도 이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비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답노트'이다. 다 맞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히 치른 시험지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확실한 자기 맞춤형 데이터인데 시험이 끝나고 내가 푼 시험지와 새 시험지 한 장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우선 오답으로 이어진 사고과정을 복기한 후 오답유형에 따라 분류했다. 그중 개념을 몰라서 틀린문제는 해당 문제에 관련된 개념을 기본부터 모두 정리해 놓고 반복해서 익혔다. 둘째로 심리상태가 불안해서 틀린 문제의 경우에는 당시 심리상태를 적으며 당시의 자신을 위로해 주고 마인드 컨트롤을 위한 다짐도 적어보았다. 분명히 공부한 내용인데  시험환경이 주는 기에 눌려서 허무하게 틀리거나 전혀 모르는 내용이 나와서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다른 문제까지 틀리는 등의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힘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오답노트가 높은 성적의 비법이 될 수 있는 진짜 힘은 바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때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카이스트 재학 시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 내가 가진 기질과 이제껏 내가 잘해왔던 것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난 시기였다. 실제로 내 기질은 발랄한 에너지를 표출하는 것인데 이전까지 해온 것은 끼를 최대한 절제하고 공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런 충돌이 있는지도 모르다가 차츰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도전을 시작해 나갔는데, 공대생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한예종에서 여름학기 연기 수업을 듣기도 하고 보통은 미국이나 유럽 쪽으로 가는 것과 달리 중국 칭화대에 교환학생을 가기도 했다. 그리고 휴학하고 마케팅 회사에서 5개월 동안 인턴까지 경험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모든 경험을 마치고 3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는데도 여전히 감이 안 잡히는 거다. 주변 친구들은 진로를 정하고 벌써 교수님 랩에 들어가서 논문 작업을 하거나 대기업. 컨설팅 회사. 유학 준비 등을 하는데 나는 너무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울하던 차에 마침 '아산서원'이라는 8개월 인문학 과정을 만났고 이 시간을 내 진로 고민의 마지막 유예기간으로 삼게 되었다.

▷ 오랜 고민 끝에 전공과 관련이 적은 예능PD를 선택한 이유는
▶ 아산서원에서 만난 지인 중 기자를 준비하던 친구가 내 진로 고민을 듣고 PD라는 직업을 추천해 주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 PD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였고 그런 천재들이 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겠냐는 반문에 친구는 "야 준비는 누구나 할 수 있어"라며 현답을 주었다.


더불어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재학 중에 과학생회장을 하며 학생회에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한 기억이 좋았던 것도 선택에 이유 중 하나였다. 처음 과학생회장에 출마한 이유는 과학고, 영재고와 같이 고등학교 출신별로 뭉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 외로워서 보다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자 도전한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진로 결정에 도움을 줄 정도의 좋은 경험이 되었다.

▷ 예능 PD라는 직업의 객관적 장단점을 말해달라
▶ 방송국 예능 조연출로서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은 시청자의 10~20분을 오롯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사회가 분업화되면서 개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일이 드문데 PD에게는 완전한 창작의 보람이 있다. 맡은 분량에 대해서는 온전히 자신만의 재미를 추구해볼 수 있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실제로 PD마다 편집 스타일이 무척 달라서 PD들 사이에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면 "저 부분 누가 편집했어?"라고 묻기도 한다.


다만 장점이 그대로 단점으로 연결된다는거 문제다. 내가 맡은 분량을 끝내는 것이 기준이므로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예능 프로의 경우 대부분 일주일 단위로 일을 끝내놔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만 제대로 퇴근을 하는 기분을 느낄 정도이다. 회사에서 쪽잠을 자는 것은 기본이고 남들이 쉴 때 일해야 하니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힘들다. 최근에는 방송국에도 주 52시간 바람이 불면서 여건이 개선되는 중이라고 들었다.

▷ 최근 나영석 PD가 고액의 성과급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PD의 연봉이 어느 정도인지 살짝 공개할 수 있나
▶ 내 경험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종편 방송국 예능 조연출의 연봉 수준은 일반적인 기업과 대등한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지상파가 종편보다 더 세다고 알려져 있고 특이점은 급여에서 시간외수당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야근이 일반적이다 보니 시간외 근무시간을 따로 입력하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주는 방송국이 있기도 한다. 실제로 수당이 없으면 생활에 타격을 받을 정도이다.

▷ 고심 끝에 입사한 회사를 퇴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1년 4개월 동안 PD만을 바라보고 지내왔다. 사실 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숙고하고 또 숙고했는데 결국 퇴사를 선택한 이유는 '외로움'이었다. 방송 한 편을 내보내면 방송시간 내내 피드백을 살펴볼 정도로 성취감이 있었지만 마음 한 켠에 외로움이 크게 자라나고 있었다.


처음 PD를 선택할 때 함께 고민했던 직업이 MC였는데 당시 취준생으로서 내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느낀 PD를 선택했다. PD라는 직업 또한 내 끼를 표출하는데 적합한 직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PD 생활을 해보니 남들 앞에서 감정 표현하는 끼를 분출하고자 했던 내 바람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더불어 PD라는 직업이 워낙 바쁘다 보니 그 답답함을 더 빨리 발견한 듯하다. 다른 사람들의 끼는 더 빛내 주면서 정작 나 자신을 끼를 분출할 시간은 전혀 가지지 못하니까 내면에서 극도로 외롭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도 퇴사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판단에 스스로 믿음을 주기까지 엄청난 자기검열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 카이스트 졸업 후 PD로 입사한 과정이나 퇴사를 결정한 것 모두 부모님께는 큰 충격이었을 듯하다. 반대가 심하지는 않았는지
▶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들은 당신들의 의사가 자식 진로에 반영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무엇이 되라, 무엇을 해라" 지시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분명 내 얼굴에 '나 지금 엄청난 고민 중이야'라고 쓰여있는데도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진로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다. 다만 평소에 부모님을 인생 선배로 여기고 자주 조언을 구했던 덕분에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셨던 듯하다. 오히려 PD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저걸 내가 시켜서 했다고 생각해봐라. 퇴사할 때 얼마나 날 원망했겠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퇴사 후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들었다. 연기자를 꿈꾸나
연기는 아마 평생 동경의 대상일 거고 기회가 된다면 일반인 무대에서라도 꾸준히 도전할 것 같다. 연기자야말로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강렬하게 가져본 장래희망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 드라마'용의 눈물'을 보고 드라마가 끝나면 화장실에서 통곡을 할 정도로 몰입한 경험이 있다. "아바마마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라며 울던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흑역사이지만 당시에는 나름의 열망이 있었다. 그 후 학창시절에는 공부한다고 잊고 지내다가 대학시절 연극동아리에 들면서 실제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연기는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매력적인 일인 것 같다. 현재는 유튜브에 올인하면서 미뤄두고 있지만 곧 크고 작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PD로서 방송을 연출하던 것과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것에 차이가 있나
▶ 유튜브와 방송국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걸 포장하는 법이 정말 다르다. 유튜브에서는 방송국처럼 높은 완성도나 기술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게 크리에이터의 진정성 전달을 방해할 수도 있다. 내 경우에도 처음에는 방송국에서 익힌 영상 콘텐츠의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유튜브에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는 방송국에서 쌓은 기준은 조금씩 덜어내고 진짜 크리에이터로 변신하는 중이다.

▷ 최근 '보이스퀸'에 출연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태진아 심사위원의 러브콜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 퍼포먼스 퀸을 컨셉으로 생각하고 나간 자리인데 리허설 때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보고 좌절했다. 분명히 작가님이 나와 비슷한 컨셉의 참가자도 2~3명 더 있을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한 명도 없었다. 무대 당시에는 '에라 모르겠다. 준비한 것 반이라도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는데 태진아 선생님이 큰 관심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실제로 연락처도 가져가셨는데 좋은 인연이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뒤늦게 자신의 적성과 꿈을 찾아 나섰다. 학창시절 공부했던 경험이나 카이스트를 졸업한 이력이 현재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공부에 집중하기보다 어린 시절부터 일찍 연예계에 진출했으면 좋았을걸하는 후회는 없는지
▶ 우선 '뒤늦다'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나는 이렇게 내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이 과정 자체도 나답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며 보냈던 시간은 단순히 시험 성적만을 위해 달렸던 허무한 시간이 아니라 장시간 무언가에 몰입을 해본 소중한 경험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처럼 당시에 나는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내 안에 있는 재료들을 확인했다. 덕분에 카이스트라는 이정표 역시 어디서나 나를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재료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방송이나 유튜브 활동을 하면 '카이스트'라는 점 덕분에 화제가 되곤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어린 시절에 연예계에 진출했다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전국 공주 왕자 대회'에 나가서 본선에 합격하면서 기회가 있기도 했는데 워낙 높은 드레스 값 때문에 포기했고 결론적으로는 다행인듯하다. 개인적으로 어린 나이에 대중에 노출되어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은 자아 성립 과정을 힘들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전에 학교에서 친구랑 싸워서 크게 혼이 나고도 학원에서 친구들이랑 잘 지내면 평정심을 찾고 제로베이스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유명인이 되면 이미 학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소문이 다 나서 주변의 눈총을 의식하느라 평정심을 찾을 시간을 잃게 된다. 자연스럽게 회복탄력성을 가지기 힘든 것이다. '어려서는 보통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목표는
▶ 우선 지금처럼 유튜브를 통해서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 채널을 운영한지 10개월에 접어드는데 매일 새로운 배움이 있다. 특히 조회 수, 구독자 수는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지만 장기적으로 힘이 나는 건 구독자들과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이다. 그 에너지를 계속 나눠가는 것, 그 자체가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건강한 커뮤니티가 구축되어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일환으로 최근 구독자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면서 무연고 아동들에게 전액 기부하는 자선 이벤트(http://bit.ly/38gSuZS)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인터뷰 중 허서문은 오답노트에 대한 비법을 꼭 실어 달라며 당부했는데요. 10개월 차 유튜버로서 자신에 대한 홍보를 위해 쓸 분량을 덜어내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담겠다는 생각이 허서문의 꿈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시절 수많았던 장래희망과 실제로 퇴사까지 감행한 진로과정에서도 꾸준히 간직해온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라는 꿈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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