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자 김형준과 첫 레이싱 경기에서 1위 한 덕분에 프로레이서 입단까지

조인성, 강동원, 한예슬, 한지혜, 소이현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요즘 모델은 연기자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하는데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170cm 이상 신장의 모델 출신이 여배우로 변신하는 데는 다양한 편견으로 인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0년 슈퍼모델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진출한 이화선은 영화 '색즉시공 2'를 통해 주목받는 모델 출신 배우였는데요. 방송 활동이 뜸하던 중 모터스포츠 경기장에서 레이싱모델이 아닌 카레이서로 당당히 단상에 선 모습으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지요. 연예계 데뷔 20년이 된 이화선의 쉽지만은 않았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전공은 경제학인데 슈퍼모델로 데뷔했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


▶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서 화가가 되고 싶은 막연한 꿈은 있었지만 부모님이 맏딸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이후 대학 진학할 즈음에는 좀 더 현실적인 꿈으로 바뀌었는데 남녀차별이 가장 적은 공무원이 돼야겠다는 마음에 행정고시 재경직에 도전할 목표를 가지고 전공으로 경제학을 지원했다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을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그 당시 남아있던 남아선호사상의 사회분위기 때문에 성차별에 대한 도전의식이 무의식적으로 늘 있었던 거 같다직업에 대한 많은 정보도 없었고그냥 평범한 사회생활을 꿈을 꾸는 학창시절이었다.

▷ 슈퍼모델대회에 출전한 계기는 무엇인가


▶ 행정고시를 목표로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1학년 때부터 행정고시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공부를 했다. 다만 중고등학교까지는 주어진 대로 모범생으로 살아오던 것이 익숙했는데 대학생활을 하면서 잠재된 내 모습을 알게 됐다. 동아리, 동문회, 유니텔, 천리안 등 오프라인부터 PC 통신 모임까지 장을 맡으면서 내 스스로가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을 받게 된 것이다. 명계남 선생님이 원장님으로 계신 연기 아카데미 겸 매니지먼트 회사였는데 무료로 1년간 연기수업을 받아보라는 제안에 마음이 흔들려서 연기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당시 함께 연기를 배우던 언니가 키카 크니까 슈퍼모델에 나가보자고 권유해서 원서를 낸 것이 덜컥 합격되었다.

처음에는 슈퍼모델대회에서 최종후보까지만 오르면 모델등록이 되고 런웨이에 설 수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당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중이라서 돈벌이 개념으로 모델에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대회 출전 전에 3개월 동안 교육을 이수하는 동안 이전까지는 여자로서 핸디캡이었던 큰 키가 장점이 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더불어 무대 위에서 핀조명을 받으며 런웨이를 걷는 순간 희열을 말할 수 없이 커서 "계속 이 조명을 받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모범생 딸의 연예계 진출에 대해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 부모님은 워낙에 어릴 적부터 다양한 경험을 주고자 하셨던 분들이고, 자식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자였기 때문에 반대하지는 않으셨다반대라기보다는 좀 놀라워하셨던 것 같다. 한 번도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본 적  없던 아이가 뜬금없이 모델대회를 나가겠다고 하니 흥미로우셨던 것 같다. 엄마와 함께 동대문 새벽시장을 돌며 생전 처음 신어보는 12센티 힐을 사러 다니고 오디션에 맞는 옷이 뭘까 고민하며 친구처럼 함께한 기억이 참 행복하고 감사하다가족 모두에게 엄청 재밌는 이벤트였다고 기억한다.

▷ 대회 이후 시트콤과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 활동영역을 넓혔다모델 출신 연기자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 SBS가 주최하는 모델대회이다보니 자연스레 수상 후 방송경험이 이어졌고 주로 예능이나 시트콤에 출연했다. 주변에서는 174cm의 내 키가 패션모델로 활동하기는 작고연기자로 활동하기엔 크다고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둘 다 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당시만 해도 아직 가수모델예능인연기자 영역이 분명하던 시절이어서 방송관계자들의 선입견이 있었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전공', '슈퍼모델출신', '예능활동 많이하는 연기자'라는 타이틀은 화제성으로 인해 빨리 많은 기회는 주었지만 배우로서 이미지를 만들기에는 방해가 되었다그래서 한창 물밀 듯이 들어오는 예능방송을 하루아침에 거절하기로 마음먹기도 했다. 실제로 슈퍼모델이라는 소개도 빼달라고 하고 모델 쪽 관련 일들까지도 다 멀리하고 연기자로서 준비만 하기도 했다.

▷ 과거 인터뷰를 통해 모델이 직업적 수명이 짧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모델이라는 직업의 객관적 장단점을 알려달라


▶ 모델의 직업적 수명이 짧은 건 사실이다. 십대나 이십대 초반에 시작해서 길면 삼십대 후반이면 일이 끊겨서 활동을 못하니까. 게다가 멀티테이너 시대가 되면서 패션쇼의 메인마저 연기자나 아이돌 등 유명 스타들이 장악을 하고 패션계의 불황까지 겹쳐서 일거리는 줄어들고 있다. 반면 모델학과들이 많이 생기고 모델센터나 모델라인 양대산맥체제에서 수백 개의 에이전시들이 생기면서 공급은 오히려 늘어났다. 때문에 물가 상승률과 인건비다 다 오르는 데 모델 쪽은 오히려 페이가 줄어드는 형국이다.

대신 모델출신 슈퍼스타들이 계속 나오면서 모델돌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모델이 스타가 되기 위한 발판이 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특히 모델출신 남자연기자들이 대거 스타가 되면서 연기자매니지먼트에서 모델대회들을 다니며 연기자로 가능성 보이는 남자 모델들을 많이 찾았다그래서 요즘은 모델 아카데미나 모델학과에 남자 비율이 여자보다 훨씬 높다. 그리고 최근에는 성별뿐만 아니라 나이에 대한 경계도 허물어졌다시니어모델아카데미 생겼고 60-70대 모델들도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모델이라는 직업 만으로 평생을 지내길 어려울 수 있지만 모델 출신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본다. 공부를 계속해서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연기나 가수로 활동영역을 넓힐 수도 있고에이전트사업을 할 수도 있고뷰티관련 업체에서 컨설팅이나 홍보관련일을 할 수도 있다.

▷ 모델계는 선후배 관계가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현실은 어떤가


▶ 내가 일을 시작했을 때가 판도가 급변하는 시기였다모델라인과 모델센터 출신만 존재하는 것에서 신생회사들이 생기기 시작했을때였다. 어느 출신인지 물을 수 있고 그래서 기수라는 것이 존재할 때는 선후배가 분명했던 게 사실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기수에 따라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야 했다. 쇼장에서 선배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고남녀 모델이 함께 일하는 쇼장에서는 후배들은 남자 모델과 말을 섞는 것도 불가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입 채널이 많아서 누가 선배고 누가 후배인지 분간이 안되는 상황이라 선후배 관계는 사실상 거의 없다.

참고로 SBS 슈퍼모델 수상자 모임 아름회’는 훨씬 이전부터 기수를 허물었던 모임이다아름회 내에서만큼은 나이순으로 존칭을 쓰고후배들을 위하고 존중해주는 분위기였다. 친목모임이자 봉사 단체였기 때문에 쇼장에서의 긴장감보다는 화합을 중요하게 여겼다.

▷ 2004년 알스타즈 레이싱팀에 입단하면서 카레이서로 활동을 시작했다계기가 있었나


▶ 리니지 게임을 좋아해서 친해진 이세창 감독과의 인연으로 용인 스피드웨이 경기를 구경 갔던 게 여기까지 왔다. 2004년 당시 이세창 감독과의 친분으로 우연히 모터스포츠 구경을 갔는데 마침 그해 연말에 이벤트 경기로 남녀 혼성 내구 레이스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참가 제안을 받게 되었다. 추억을 쌓을 겸 태사자 김형준 씨와 한 조가 되어 출전했는데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풀시즌 준비를 했다.


▷ 2009년에는 프로레이서가 되더니 각종 시합에서 상위권 성적을 내기도 했다프로레이서가 되기 위한 절차는 어떻게 되나프로레이서로 입단하면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직업과 병행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 직업인지 궁금하다


 ▶ 내 경우에는 2009년 프로팀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다슈퍼레이스 출전한 첫해 2위를 기록했는데 그 경기 이후 팀 감독님을 통해 제안을 받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프로레이서가 되기 위한 절차는 아마추어경기참여 일정기간필요경력이 있어야 하고, 개인 출전이 안되기에 팀의 소속이 필요하다보통 프로레이서들은 프로팀의 스카우트와 오디션을 통해 자격을 얻는다기본연봉은 일반 회사원들과 비슷한 수준이고, 대신 스포츠 선수니까 포디움에 올라가면 인센티브가 나오는 계약이다시합이 없을 때 보통 각종 자동차 드라이빙 스쿨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며 부수입을 얻거나 자동차 관련 매장을 운영하는 분들도 많다.

▷ 카레이싱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하다실제로 사고를 겪은 경험은 없나


▶ 시합 중 컨택은 셀 수 없이 많고크게는 두 차례 전복사고 경험이 있다해치백 스타일의 시합차를 탔을 때 코너링 중 벌어진 사고였다첫 번째 전복되었을 때는 펜스를 들이받고 뒤집어졌는데 차가 원위치로 돌아와서 쉽게 내릴 수 있었는데 두 번째 전복되었을 때는 차량끼리 코너를 돌아 나오면서 추월 시도를 하다가 휠끼리 물리면서 두 대가 모두 공중제비를 했다. 내 차량은 2바퀴 반을 돌고 뒤집어진 상태로 떨어져 대롱대롱 매달려있었기에 핸들을 붙잡고 벨트를 풀며 조심스럽게 탈출을 했다외부에서 보면 사고가 엄청 위험해 보이는 데 보이는 것만큼 데미지가 있지는 않았다방염 슈트와 목 보호대 한스버킷 시트와 6점식 벨트가 몸을 고정시켜주어서 충격을 완화시켜준다한 며칠 욱신거릴 뿐이다.

경비행기 자격증도 취득한데다 화가로서도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도전을 즐기는 성향인가


 슈퍼레이스 우리나라 유일의 프로경기에서 2위 입상을 했을 때 항공전 페스티벌 조직 위원회에서 연락이 왔다기사 인상 깊게 봤는데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싶다고그런데 보통 흔한 홍보대사처럼 개막식 폐막식 참석과 포토타임이나 팬사인회 같은 행사 말고, 비행을 배워서 개막식 때 축하비행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두렵긴 했지만 살면서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제안을 받아들이고, 6개월 가까이 비행을 배우고 개막식 때 교관님과 함께 동승 비행을 했다그 후 이왕이면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어서 1년간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준비해서 면허 취득에 성공했다.

화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2012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서 마음을 붙잡기 어려울 때 문인화 과정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걸 너무나 좋아했고선생님들도 예고미대 진학을 해보라고 권유하기는 했었는데 도전하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잊고 있던 그림 그리는 몰입의 즐거움이 살아났다. 이후 동양화가이신 랑원 이의재선생님을 비롯해서 홍대 미대교수님이나 갤러리 관장님들께서 작품을 좋게 보시고 전시도 제안해 주셔서 지금까지 매년 작품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 영화 색증시공2’ 통해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연예인으로서의 삶과 카레이서화가 등 비연예인으로서의 삶 중 더 나은 방향을 고르자면


▶ 중심을 잘 지키려고 늘 많이 노력한다지금도 연예인으로의 삶이 본업이고 1순위의 삶이다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매일 혹은 매년 일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들을 활용한 것이 제2, 제3의 직업이 되기도 했다차를 탔던 것도 그림을 그렸던 것도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일이 없는 시간을 보다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촬영장을 나오는 순간 연예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스스로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며 남을 의식을 하니까 너무 제약이 많더라. 노메이크업에 운동복을 입고 대중교통도 타고 다니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녀도 별일 없더라. 앞으로도 본업인 연예인으로의 삶을 살 것이고현장 밖에서는 비연예인 이화선’  삶을 살 것이다둘 중 더 나은 방향 같은 건 없다. 나에게는 둘 다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한 모습이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결혼안하느냐라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는 시기일 듯하다연애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면


 가족이라는 게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니까 결혼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에 대한 책임감무게영향자식까지 있으면 더 배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어렵게 느껴진다.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풀 엄두를 못 내는 상태이다. 연애 역시 결혼을 염두하다보니 쉽지 않다. 새해에는 연애는 연습결혼을 실전이라는 생각으로 연애부터 노력해볼 생각이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찾는 게 쉽지 않더라.


▷ 앞으로의 목표는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최근 수년간 내적으로 방황하는 시간들을 보냈다아프기도 했지만 더 단단해지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연기자로서 활동을 재개하는 데 좀 더 집중하고 또 새로운 도전이 온다면 시도하고 싶다그 새로운 도전에 결혼도 포함돼 있기를 바란다.

모든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을 이어가던 이화선은 "암 투병을 함께 한 가족의 입장에서 현재 투병 중인 환우와 가족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달라"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머뭇거렸습니다. 몇 문장으로 전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이유에서인데요. "잘 표현하지 못하고 어색하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을 보여주세요"라며 가족의 사랑이 굳건하면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전하는 말속에 지난 아픔과 이를 극복해낸 힘이 모두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