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탑골공원, 슈가맨3 등을 통해 과거 방송에서 활약하던 스타들이 소환되면서 반가운 근황을 전하고 있는데요. 고등학생 나이에 '서방님'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가수 이소은은 변호사로 변신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고, 원조 꽃미남으로 불리던 태사자 김형준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며 쿠팡맨으로 열일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응원을 받았지요.
"평생 직업은 없다"라는 요즘 연예계 활동을 접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적 사례가 되기도 하는데요.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그룹활동을 하던 가수에서 기상캐스터를 거쳐 인기 진행자가 되기까지 한중MC 임정은의 쉽지 않았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나? 학창시절 공부를 잘한 비법이 있다면
▶ 어렸을 때부터 마이크 잡는 게 좋았다. 초등학교 때 가족과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엄마 아빠가 늘 칭찬해주셨는데 그 무렵부터 무대와 마이크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반면 부모님 두 분 다 바쁘게 일하신데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초등학교 때까지 성적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신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영어회화학원을 보내달라고 하고, TV를 보고 멋있어 보여서 가야금이나 한국무용 등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 학원을 다니기는 했다.
중학교 올라가서 처음 반 등수를 알고 '내가 공부를 꽤 잘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중1 때 반에서 13등 정도 하다가 점점 올라서 고2 때부터는 반에서 1등도 하고 고3 때는 수능 모의고사 전교 2등까지 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수업에 충실한 학생이었다. 수학 단과 학원 잠깐 다닌 것 말고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체육복 바지 입고 교실에 붙어 있었다. 수능 때도 체육복 바지 입고 갈 정도였다.
▷ 전공으로 중국어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 대학교에 인문학부로 입학을 해서 2학년부터 전공을 선택하게 되는데, 언어를 공부하고 싶었다. 영어는 학창시절 공부해봤으니 새로운 언어를 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웠던 경험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선택했다. 당시 인문학부에서 중국어는 인기가 높은 전공이라서 중국어과에 들어가기 위해서 1학년 2학기 때 열심히 공부했다.
▷ 전공과 관련 없는 기상캐스터가 되었다. 계기가 있나
▶ MC, 방송진행자는 어렸을 적 무대를 좋아하던 그때부터 꿈꾸던 직업 중 하나였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부터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다니며 카메라 테스트, 한국어, 논술, 작문, 면접, 상식 등 방송사 시험을 준비했고, 수차례 떨어진 끝에 졸업 9개월 후 기상청 아나운서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상 공부를 하고, 매일 일기예보 방송 대본을 작성해서 진행하고, 전국 기상청 뉴스도 진행했다.
▷ 기상캐스터가 되기 위한 경쟁률이 매우 치열하다고 알고 있는데, 어렵게 합격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이유가 무엇인가
▶ 같이 근무했던 아나운서 동료 가운데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상 업계에서 근무할 정도로 마음만 있다면 오래 근무할 수 있는 분야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진행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너무너무 많았다. 좋아하는 스타를 인터뷰해보고 싶고, 음악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싶고, 전공인 중국어로도 진행해보고 싶은 열정이 컸다. 마침 중국에 파견돼 활동할 중국어 가능 아나운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중국연합TV(CUTV)에 입사해 중국에서 근무를 시작한 것이 새로운 도전이 되었다.
▷ 현재 일하고 있는 한중MC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한다면
▶ 한중MC는 한중 양국이 함께하는 국제행사나 방송프로그램 사회를 보는 직업이다. 중국어MC, 중국어 아나운서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사용해 진행하는 것이다. MC마다 분야가 조금씩 다른데, 내 경우는 주로 한중 양국 정부나 기관, 기업 등이 주최하는 한중 학술포럼이나 기공식, 한류스타 팬미팅, 브랜드 론칭 행사 등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어와 중국어로 진행을 하면서 무대 연설이나 인터뷰 순차통역도 함께 맡는 편이다. 최근에는 영어까지 3개국어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언어는 물론 행사 주제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 통번역 관련 학위를 취득해야만 한중MC가 될 수 있나? 한중MC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달라
▶ 통번역 학위 없이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MC들이 많다. 분야도 다양해서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잘 설정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진행만 잘 한다고, 통역만 잘 한다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진행자로서의 준비와 통역사로서의 준비가 탄탄하게 되어야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기상청 아나운서로 근무하면서도 학부 전공을 살려 중국어 인터뷰나 짧은 진행을 하기도 했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중국어로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보이면 무조건 이력서를 보냈고, 방송활동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서 스스로 홍보하기도 했다. 매일같이 이메일로 자소서를 보내고 100번 넘게 면접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진행 문의가 늘어났고 국제행사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직접 해보니 한국어 방송 진행과는 달리 무대 현장에서 통역도 많이 해야 하고, 정말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다. 방송진행자로 일한 지 6년 정도 지나고 30대의 나이였지만 오랫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고생스럽더라도 보다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통번역대학원 준비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당시 오전 생방송 진행 이후의 시간을 모두 공부에 쏟아 공부한 끝에 감사하게도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 중국어만 잘한다고 가능한 직업은 아닌 듯하다. 한중MC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 한중MC는 생활패턴이 연예인과 비슷한 면이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일정이 많을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고 또 배우들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듯이 나 역시 매번 만나는 국제행사를 잘 해내기 위해 언어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한중 양국이 함께 모이는 의미 있는 자리인 만큼, 자칫 무거울 수 있는 현장 분위기를 따뜻하게 리드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또 매번 완전 새로운 분야를 만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적응력이 강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걸 즐기는 성격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일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매일 출근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일정 관리를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 진행자나 통역사 모두 초기에는 일정이 많이 적을 수 있는데, 그 기간이 견디기 힘들어 다른 분야로 가거나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2018년부터 유튜브 활동을 겸하고 있는데, 스스로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무대라고 생각한다.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 인터넷 강의나 광고 협업 요청 등 새로운 분야의 회사와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 연예인 관련 행사부터 기관이나 지자체 관련 행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행사를 맡아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듯한데
▶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한류스타 관련 행사에는 해당 스타의 노래나 작품 그리고 한중 팬들의 반응을 살펴봐야 하고, 한중 국가기관 행사를 준비할 때는 관련 뉴스나 이전 발표 자료를 많이 찾아 주요 개념들을 이해하고 가야 한다. 더불어 국제회의에서는 중요한 직함과 이름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꼼꼼히 준비하는 편이다. 그래서 한중 국제회의 현장에서 청중이나 담당자분이 나에게 중국어나 한국어 회사명이나 직함을 물어보면 알려드리기도 한다. 준비과정이 고되고 오래 걸리지만, 준비한 만큼 무대에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 중국 관련 정치, 사회적 이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을 듯하다. 안정적으로 일을 이어가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 사드 이슈로 한중 관계가 좋지 않을 때 한류스타 콘서트나 팬미팅 등이 정말 급격히 줄었다. 중국 현지 라이브방송 플랫폼이나 SNS 등도 자주 막혀서 계정을 몇 개 폐쇄하기도 했다. 다만 연예계나 문화관련 행사 외 다른 분야에서는 꾸준히 수요가 있는 편이었다.
더불어 활동 분야를 다각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 역시 한중MC 외에도 유튜버, 라디오DJ, 강사 등 다양한 직업으로 활동 중인데 모두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스스로 정말 좋아해서 오래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게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 통역사 혹은 한중MC로서 직업의 객관적인 장단점을 알려달라
▶ 프리랜서 한중MC나 통역사의 장점은 우선 늘 새로운 현장에 가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분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 성장할 수 있고, 국가 간 큰 포럼에서 진행을 할 때는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사명감, 한국문화의 위대함도 느껴볼 수 있다. 또 매일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자료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반면에 일정이 확 몰리거나 줄거나 하는 편차가 있어서 매일 출근하는 것에 익숙하다면 적응하기 힘을 수도 있다. 또 매번 다른 회사와 일해야 하기 때문에 적응력도 강해야 한다.
▷ 한국, 중국 양국에서 활동 중인데 행사나 방송진행 환경에 나라별 특별한 차이가 있나? 더불어 중국관련 일은 '대륙급 수익'으로 화제가 되곤 하는데, 실제로 수익이 높은 편인지
▶ 중국은 땅이 넓다 보니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고 또 제작사마다 차이가 큰 편이다. 어떤 회사는 행사 당일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대본이 안 나오고 현장에서 불러주는 대로 진행을 한 적도 있는 반면, 어떤 회사는 굉장히 꼼꼼해서 국제행사 한 달 전부터 옷차림과 액세서리, 헤어, 심지어 손톱 스타일링까지 사진을 주고받으며 회의를 하기도 했다.
개인별, 분야별 차이가 크기 때문에 평균을 내기는 어렵지만 살짝 공개하자면, 국제행사 1회당 수입이 대략 10여 년 전 회사 다닐 때 받던 월급을 웃돈다. 여러 회사와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 번 월급을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바쁜 와중에 크리에이터로도 활약 중인데 음악관련 콘텐츠가 인상적이다. 가수출신이라고?
▶ 십대부터 20대 초반까지 가수가 꿈이어서 기획사 오디션도 많이 보고 노래 경연에도 많이 나가고 그랬다. 그러고 보니 10대부터 참 오디션을 많이 보면서 살았던 듯하다. 20대에는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연도 하고, 대학교 휴학까지 하며 앨범도 내고 작곡 공부도 해봤다. 그러면서 느낀 건, 나의 음악적 재능과 끼가 가수로 활동할 만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다음 꿈인 MC를 향해 더 정진할 수 있었다.
▷ 한중MC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할 조언이 있다면
▶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같이 공부도 하고 연습도 하고 대화도 하고, 오디션이나 면접도 많이 보면서 견문을 넓히면 좋겠다. 예상치 못한 일들 때문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면, 일련의 시련들이 더 큰 성장의 발판이 될 거라고 믿는다. 한중MC를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다 보면 나만의 방식, 나만의 길이 보일 거다.
▷ 앞으로의 목표는
▶ 한중MC라는 직업은 이제 나에게 직업 이상의 아주 큰 힘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한중 양국이 함께하는 다양한 자리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싶다. 또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든 유튜브 활동을 통해서도 더욱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다.
인터뷰 중 임정은은 몇 년 전 자신의 전부로 여겼던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면서 최근 몇 년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는데요. 당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한중MC라는 자신의 직업이었다고 합니다. 임정은에게 한중MC는 돈벌이를 위한 직업 개념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된 듯한데요.
앞서 '프리랜서로서 직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일을 좋아하고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안정적인 직업이다"라는 임정은의 답변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임정은의 진정성이 담긴 답변인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