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 엄마따라갔다 시작...27년 지난 현재 모습은?

최근 아역배우로 시작해 성인 연기자로 성공적인 성장을 해낸 스타들이 주목받고 있는습니다. 특히 김유정, 유승호, 여진구 등은 아역시절부터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와 최근에는 주연급 연기자로 성장했지요. 반면 어린 시절 아역 연기자로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들 가운데 아역 이미지를 벗는데 실패하거나 학업 등의 이유로 공백기를 가졌다가 배우로서 복귀가 어려워진 경우도 있는데요.

1998년 MBC드라마 '육남매'에서 셋째 준희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 노형욱 역시 연기활동을 이어오는데 어려움을 겪은 아역출신 연기자 중 하나입니다. 노형욱은 육남매 이후에도 KBS '종이학', '약속' 등에 아역으로 출연했고, 특히 2002년 SBS시트콤 '똑바로살아라'를 통해 능청스러우면서도 현실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는데요. 2002년 영화 '몽정기'까지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오던 중 돌연 방송에서 모습을 감춰 많은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지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드라마 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얼굴의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택배 상차 알바까지 하며 지내야 했던 과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의 꿈을 접지 못한 배우 노형욱의 미래에 대해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 아역배우가 된 계기가 있나
▶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우연히 어머니와 함께 신문에 난 연기학원 광고를 봤는데 어머니가 한번 해보겠냐고 권했고 당시에는 큰 뜻 없이 어머니가 해보자니 학원에 따라가서 등록했다. 그 길로 연기를 하게 되었고 처음엔 보조출연이나 아역모델을 주로 하다가 드라마 육남매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된 셈이다.

▷ 어린 나이에 인기를 얻은 아역배우들의 경우, 친구관계에 어려움을 겪거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 운이 좋게도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교우관계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리고 내 경우는 그렇게 큰 인기를 얻은 편이 아니라서 생활에 불편함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생기기는 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랑 같이 롯데월드를 간 적이 있는데 날 알아본 사람들이 사진을 요청하셔서 찍다 보니 친구들은 계속 나를 기다려야 했고 놀이기구 대기줄이 밀리기도 했다. 그 뒤로는 ‘나는 즐겁고 감사한 일이지만 이게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해서 사람 많은 곳을 잘 안 가게 되었다.

▷ 한창 인기를 얻을 무렵 활동이 뜸해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 당시에는 '앞으로 평생을 연기를 할 건데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교 4년과 군대 2년을 계산하고 '일단 학교를 열심히 다니자. 그리고 군대를 빨리 다녀오자'라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캐스팅 제의를 고사하고 학교생활에 열중했다. 그러다 보니 '노형욱은 일을 안 하는 배우다'라는 인식이 생겨버렸고 자연스럽게 일이 줄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오판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기 위해 공백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 말 그대로 학교생활에 정말 열중했던 것 같다. 조교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 학교생활이 정말 재미있었다. 대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이 주는 분위기와 동기, 선후배들과의 교류가 정말 행복했다. 특히 연극영화과 전공이면서 연기가 아닌 무대연출 등에 집중했는데 무대 위에 서서 주목받는 일 외에 뒤에서 무대를 만들고 도움을 주는 일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팀을 짜서 과제를 해결하거나 함께 연습을 하면서 느끼는 소속감과 성취감도 엄청났다. 덕분에 조교 활동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도 한양대 연극영화과는 마음의 고향처럼 든든한 기분이다.

▷ 군 제대 이후 연기자로 복귀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 군 제대 이후에 지인의 소개로 기획사에 들어가서 복귀를 준비했다. 초반에는 기획사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재기를 위해 도움을 주었는데,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자연스레 나에 대한 관심이 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회사 내에서 방치 아닌 방치가 되었고 나 스스로도 자존감이 떨어지고 삶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능성이 더 높은 연기자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이 마냥 흐르는 중에 회사에서 계약해지를 요구했고 나 역시 동의했다. 소속사가 없어지면서 연기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 공백기 동안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고
▶ 공백기가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중 대본 인쇄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대본을 만들어서 촬영지나 사무실로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운전을 좋아하다 보니 배달 일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연기를 하러 가던 곳에 내 작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대본을 들고 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세트장에서 마주친 어느 배우가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요? 그때 무슨 스태프셨죠?" 하길래 머쓱하게 웃고 있는데 옆에 있던 다른 배우가 "배우에요 배우"라고 알은 채를 해준 적도 있다. 반면 방송국 출입이 까다롭다 보니 다른 배달 직원들은 촬영차량표를 넣고 간다던가 대본 배송왔다고 말해서 어렵게 들어가는데 내 경우는 얼굴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아직 계셔서 쉽게 출입을 할 수 있었던 점은 장점이기도 했다.

연기의 꿈을 계속 이어가다 보니 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서 인쇄소를 그만두고 택배상차 일을 하기도 했다. 워낙 힘든 일이라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명절이나 연말에는 작업량이 정말 엄청났다. 의도하지 않은 반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된 정도인데 몸은 힘들었지만 함께 일했던 분들의 사연을 듣고 느낀 바도 많았다. 작은 기업의 대표님부터 전업주부까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투잡으로 택배상차 일을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싶어서 많이 놀랐다.

▷ 인지도가 꽤 높은 배우가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 나도 신기했다. '다른 배우들은 대체 어떻게 관리를 하길래 다른 일을 하지 않지?'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다들 다른 일에 경제적인 관리를 잘하고 있더라. 반면 나는 경제 개념이 좀 약한 편이라 미래를 계획해서 돈 관리를 할 줄 몰랐다. 그저 매달 먹고 살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언제나 이 정도로 돈이 생길 줄 알았다. 일이 줄어들면서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들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은 많이 교정했고 내가 버는 수입에 맞춰서 살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려고 노력한다.

▷ 불안정한 상황에도 끝까지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 20대에는 좋아하는 게 없었다. 게임이나 술자리를 좋아했지만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로서 열망하는 바가 없었다. 30대가 되고 객관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게 됐다. 나는 카메라 앞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한 관종이다.

예전에는 '연기해야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해온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삶 자체도 막연하게 살고 있었던 거다. ‘오늘 뭐 하지? 시간이 남네...게임이나 할까’ 이런 삶의 연속이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연기나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하면서는 단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드라마 녹화를 하다 보면 대기 시간을 길게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 또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다른 일할 때는 지겹고 힘들던 것들이 연기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할 때는 모든 순간이 축복과도 같이 느껴지더라.

▷ 연기자로서 꿈을 잃지 않고 이어오는데 격려가 된 은인이 있다면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최형인 교수님과 권용 교수님께 가장 감사하다. 최 교수님이 "넌 잘 될 거야", "‘어머니 모시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넌 꼭 복받을 거야"라며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주실 때마다 정말 큰 힘이 된다. 권 교수님께서는 먼저 연락을 주셔서 술 한잔 사줄 테니 나오라고 불러주시곤 한다. 더불어 지인들에게 부탁해 제가 일할 기회도 알아봐 주시기까지 하니 정말 은인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시트콤 '똑바로살아라'를 통해 인생 캐릭터를 잡아주신 김병욱 감독님께도 정말 감사하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실 때마다 불러서 카메오로 출연을 시켜주셨다. 그 덕에 가끔이라도 대중에게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감자별’에서 탈영병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촬영 끝나고 직접 보내주신 응원의 문자메시지가 지금까지도 큰 힘이 되고 있기도 하다.

▷ 최근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전성기와 슬럼프를 모두 겪어본 배우로서 이를 극복하고 자신을 지키는 비결이 있다면
▶ 나도 한동안은 우울감에 빠져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 객관화를 배우게 되었고  4년 동안 노력한 결과 나 자신에 대해 보다 선명하게 파악하게 되어 우울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스로 삶을 돌아보니 목표의 불확실함과 주저앉아 생각하기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을 명사로 배웠더라. 의사, 검사, 판사, 변호사, 가수, 탤런트, 사실 이건 그저 직업일 뿐인데 이 직업을 이루고 나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 줄 모른다. 그러면서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배우이면서도 특별한 꿈이 없었다는 걸 깨달아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1년에 주말드라마 혹은 일일드라마 한편, 미니시리즈 조연 1편’,  ‘연기도 하면서 다른 이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이렇게 장래희망을 바꾸고 나니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어려운 순간이 찾아와도 견딜 수 있다. 하나의 큰 목표를 잡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작은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성취감을 얻어내면서 극복하고 있다.

▷ 옛날 방송보기 열풍이 불면서 '육남매'나  똑바로살아라 역시 재조명 받고 있다. 아역 시절 연기를 보면 기분이 어떤가
▶ 이게 정말 내 모습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싶어서 아쉬운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잘 견뎌냈다는 생각에 수고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 현재 연기학원의 강사로 재직 중이라고 들었다. 직접 연기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 가르친다는 개념보다는 같이 연기하는 동료라는 생각으로 수강생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수강생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나 연기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서 내가 배우는 점도 많다. 다만 나는 현장에서 먼저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조언이나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 전성기와 슬럼프를 모두 겪어본 선배로서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할 조언이 있다면
▶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결과가 안 좋다고 나를 미워하게 되면 타인도 미워하게 되면서 점점 더 작아지게 된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직업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때가 있더라도 스스로를 사랑해줘야 한다. 더불어 목표는 보다 구체적으로 세우는 게 좋다. 똑같이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도 하는 일은 천차만별이다. 스스로  작은 목표를 세워서 성취감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 앞으로의 목표는
▶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배우를 시작한 뒤 좋은지 모르고 막연하게 살아오던 때와 달리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연기를 좋아하다 보니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하게 되었다. 유튜브 활동이나 연기학원 강사 일 역시 연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시작한 일이다. 덕분에 좋은 매니저도 만나게 되었고 소속사 있는 연기자가 된 셈이다. 현재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의 모토가 '아무도 나를 안 찍기에 내가 나를 찍으려고 만든 채널, 기다릴 때 기다려도 놀지 말고 일하면서 기다리자’이다. 앞으로도 보다 적극적으로 일을 일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장기적인 목표는 카메라 앞에서 행보한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드리는 거다. 쉬지 않고 일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드라마와 영화, 예능, 다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를 대비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며 기다릴 것이다.

인터뷰 말미 노형욱은 자신의 인터뷰 내용이 "좀 꼰대 같았다"라며 자책하기도 했는데요.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입문해 무려 20년 넘게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아온 선배로서 후배들이 자신보다 편한 길로 가길 원하는 마음이 단순한 꼰대질은 아니겠지요. 동료의 입장으로 함께 한다는 연기강사 노형욱은 그 마음가짐만으로도 수강생들에게 충분히 훌륭한 선생님인 듯한데요. 연기자로서도 하루빨리 좋은 기회를 만나 특유의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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