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로 15평 아파트에 네 식구 살면서 초1 때 처음 컴퓨터 생겼어요"

세계보건기구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했습니다. WHO는 게임통제능력 손상,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에도 게임을 하는 증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게임장애라고 정의했는데요. 게임장애가 새로운 항목으로 등재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은 오는 2022년 공식 발효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프로게이머들도 모두 게임중독이라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일까요? 이에 대해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게임중독환자와 프로게이머들이 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뇌파 자체가 다르다고 분석합니다. 프로게이머들은 확률과 전략을 따지며 게임에 임하지만 게임 중독환자들은 사고하지 않고 단순 몰입만 한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분석과 설명에도 불구하고 프로게이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지요.

게임 강국으로 불리며 국제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실력에 비해 게임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편인데요. 영국 가디언지가 메시급이라고 표현하고 미국 ESPN에서 마이클 조던에 비교한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가 정작 모국에서는 '겜돌이'로 비하되는 것이 현실이지요.


놀면서 시작한 컴퓨터 게임
국가대표 되다

해외 언론을 통해 "미국에 조던, 아르헨티나에 메시가 있다면 한국엔 페이커가 있다"는 말을 만든 주인공은 닉네임 페이커로 활동 중인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 이상혁 선수입니다. 국내 e스포츠 프로팀 SKT T1에서 미드라이너(게임 내 포지션)를 맡고 있는 이상혁은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는데요.

국가대표의 자리까지 오른 이상혁 선수도 처음 게임을 접하게 된 건 학창시절 재미로 시작한 놀이였지요. 한부모 가정으로 아버지와 남동생, 할머니와 함께 15평 작은 아파트에 살았던 이상혁은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는데요.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처음 집에 컴퓨터가 생겼고 친구들과 메이플스토리를 시작하면서 게임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이 학년이 바뀌면서 좋아하는 게임도 변화했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스타크래프트를, 중학교 2학년 때 드디어 롤게임으로 불리는 리그오브레전드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재미로 시작했던 롤게임은 고등학생 당시 아마추어 신분으로 월드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자랑했고, 2013년 SKT T1은 '고전파'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던 고등학생 이상혁을 프로게이머로 영입하게 됩니다.

프로게이머 제안을 받았을 당시에 대해 이상혁은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는데요. 세계 랭킹 1위였던 만큼 제안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나 다만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고 연봉 자체도 높지 않았던 만큼 두려운 마음이 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누구나 할 수 없는 경험이라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입단을 결정했는데요. 부모님 역시 "네 인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며 응원해 주었다고 하네요.


중국에서 BTS 못지않다는 페이커

중학교 재학 당시 상위 10%를 유지했고 아마추어로서 롤게임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던 고등학교 당시에도 상위 20~30% 수준을 유지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던 이상혁은 프로게이머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프로게이머들의 연습시간은 하루 12시간 이상으로 학업과 병행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지요.

학업을 포기하며 시작한 프로게이머 생활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입단 직후인 챔피언스 스피링 2013에서 3위로 시작한 이래 같은 해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의 우승을 차지했고 2015, 2016년 연이어 SKT T1 월드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지요. 이로써 이상혁은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을 3회 이상 우승한 유일한 선수이면서 최초로 메이저 국제전 통산 100승을 넘어선 선수가 되었는데요.

압도적인 커리어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e스포츠 팬들 사이 이상혁의 인지도와 인기 역시 높아졌습니다. 특히 게임산업에 크게 투자하며 e 스포츠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에서 페이커 이상혁 선수의 인기는 여느 한류스타 못지않지요.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이상혁 선수가 출전하는 날이면 응원석에는 페이커를 응원하는 문구의 피켓이 가득하고 페이커의 개인 연습 모습을 공개하는 온라인 방송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40만 명 이상 몰리는데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이상혁은 중국에서 과자, 배달업체 등 다양한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지난 2017년에는 베이징에서 개최된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2017 결승전에서 패배하고 준우승에 머문 이상혁이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경기장 내 팬들이 다 함께 '페이커'를 외치며 격려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날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웨이보에는 '페이커의 눈물'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중국 내 이상혁의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 10일 이상혁 23번째 생일에는 중국 팬들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전광판에 생일 축하 광고를 걸어 여전히 핫한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지요.


수백억 연봉 거절한 이유

중국에서 BTS 급 인기라는 이상혁 선수에 대해 중국 진출에 대한 예측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요. 실제로 작년 SKT T1과의 계약 만료 시점에 맞춰 중국 측은 이상혁에게 수백억대 연봉을 제안하며 이적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혁은 SKT T1과 재계약을 결정했는데요. 이에 대해 이상혁은 "이적 제의 당시 한국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성적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으로 가는 건 아쉬울 것 같았다"라며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다. 한국 팬들을 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라고 전했지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현역 기간 중 큰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한 점을 고려할 때 이상혁의 결정은 매우 의미가 큰데요. 이상혁은 평소에도 팬들을 위한 선한 행보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팬들 중 어린 친구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상혁은 "어린 친구들이 날 보고 따라 할 수도 있으니 내가 안 좋은 행실을 하면 그들도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라며 "겸손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친절하게 대한다.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등의 원칙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수백억 대의 연봉은 거절했지만 SKT T1에 소속된 이상혁이 받는 연봉 역시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프로게이머 선배인 홍진호는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이상혁의 연봉이 30억 원대이며 인센티브를 합치면 50억 원 정도 된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대해 SKT는 글로벌 시장에 맞춰 페이커의 연봉을 책정했다며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았으나 다수 언론에 따르면 페이커의 연봉이 야구선수 이대호(25억 원)보다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지요.  

연봉 50억의 이상혁은 지난 6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달 용돈이 20~30만 원이라고 밝혔습니다. 4년 전 15평 아파트를 떠나 48평 아파트로 이사했다며 집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가족들이 불편함 없이 지내는 걸 보면 뿌듯하다는 소감을 전했지요. 이날 인터뷰에서 이상혁은 전성기가 끝났다는 비판에 대해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담담하면서도 당찬 포부를 밝혔는데요. 

한편 이상혁이 이끄는 SKT T1은 최근 롤드컵 2019 4강전에서 유럽의 G2에 패배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작년에 이어 롤드컵 결승에 오른 팀은 유럽팀과 중국팀인데요. 유럽과 중국이 최근 연습실과 경기장 등 프로구단 시설을 단장하고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기도 하면서 적극 투자한 것이 빛을 발한 것이지요. 수백억 대의 연봉을 거절하고 한국 팀과 한국 팬들을 위해 이적을 포기한 이상혁의 노력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한국 e스포츠의 투자가 늘어나고 대중들의 인식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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