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 유진박, 우리나라에서 데뷔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가요프로그램을 다룬 스트리밍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면서 세기말 감성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당시 대중가요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90년대 후반 대한민국 국민을 열광시킨 음악이 있습니다.

90년대를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누구나 한 번쯤 감탄했을만한 연주, 바로 유진박의 전기바이올린 연주이지요. 다만 마이클잭슨의 내한공연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가 매니저 등으로부터 학대와 사기피해를 당해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인데요. 뉴욕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한 비운의 천재 유진박, 우리나라에서 활동하지 않았다면 더 행복했을까요?


줄리어드 바이올린 천재
한국활동을 택하다

뉴욕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사업을 하는 어머니 사이의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난 유진박은 3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았고 8살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입학한 수재입니다. 13살 나이에 뉴욕 링컨센터에 데뷔하는 등 줄리어드 내에서도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바이올린 신동으로 유명했던 유진박은 대학시절 전기바이올린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지요.

전기 바이올린으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유진박은 슈퍼볼 전야 축제 오프닝 공연, 아스팬 재즈앙상블 협연 등을 할 정도로 뉴욕에서 인정받는 연주자로 성장했는데요.  뉴욕타임즈와 뉴욕포스트에 기사가 나면서 우리나라에도 유명세가 알려져 1995년에는 'KBS스페셜-줄리어드'를 통해 한국에 정식 소개되었습니다.

유진박은 1996년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면서 당시 뉴욕 최대 매니지먼트사인 스카시 스켓과의 계약을 거부한 채 한국의 KBS ' 열린음악회' 출연을 계기로 국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유진박의 인기와 화제성은 '신드롬'에 가까웠는데요. 바이올린은 클래식이라는 상식을 깨고 국내 최고로 전기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면서 클래식과 대중음악계 모두에 큰 충격을 선사했지요.

특히 락밴드 공연의 일렉트릭기타의 솔로 연주처럼 즉흥연주에 빠져드는 유진박의 모습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그 자체였는데요. 이후 소니 뮤직과 계약을 맺고 1997년과 1998년 잇달아 내놓은 앨범은 총 100만장 가량 판매되었고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 유진박은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 무대에 함께 오르며 최고의 주가를 달렸는데요. 당시 유진박의 한 달 공연 스케줄은 100여 개 이상, 개런티는 1000만 원 이상으로 연주자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폭행, 감금, 협박
소속사의 악행

다만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며 유진박의 연주는 대중들에게서 멀어졌는데요. 어느새 대중에게서 잊혀진 유진박은 2009년 다소 충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2009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산의 한 막창집에서 연주공연을 하고 있는 유진박의 모습이 공개되었는데요. 사진 속 유진박은 예전의 총기와 열정을 잃은 채 남루한 행색으로 공연 중이었지요.

해당 사진을 두고 유진박의 소속사와 매니저가 착취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었고 놀랍게도 이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소속사는 유진박을 10개월 이상 여관에 가둬둔 채 연주를 할 때만 밖에 나올 수 있도록 감금했고 유흥업소와 소규모 행사에 공연하도록 지시하면서 이를 통해 벌어들인 출연료를 강제로 빼앗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시 소속사 대표가 계약이 끝난 후에도 바이올린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협박을 일삼으며 유진박에게 연주 공연을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유진박은 큰 충격과 공포를 겪게 되었지요. 사실 유진박은 대학시절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고 치료 중에 있었는데요. 한국에서 데뷔할 당시부터 정신적인 불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증상을 악화되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매니저가
앵벌이 시켰다니

사실이 알려진 후 유진박은 데뷔 당시 함께했던 매니저 김 모 씨와 재회했습니다. 2017년에는 KBS '인간극장'에 함께 출연해 매니저 김 씨가 유진박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돌봐주며 떼려야 뗄 수 사이로 그려지기도 했는데요. 당시 김 씨는 유진박과 재회한 경위를 설명하며 "유진박 어머니가 나밖에 없다고 애절하게 얘기하시더라. 뭉클했다. 내가 이 친구의 현란한 바이올린을 들을 수 있고 밥만 먹으면 될 것 같더라"라고 전했습니다.

반면 방송 당시 유진박은 '매니저가 없으면 못 산다'라며 매우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김 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제작진에게 힘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유진박은 "나는 어릴 때부터 왕따였다. 그래서 외롭다. 사장님과 함께 있고 싶은데 사장님은 바쁘다"라고 전하며 "나는 제대로 잘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흔세 살인데 이 나이에도 이렇게 사소한 것에 울고"라며 눈물을 흘렸지요.

다소 불안한 상태이지만 매니저 김 씨의 보호 아래 원하는 연주공연을 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는 줄 알았던 유진박은 지난 6월 더욱 침통한 소식을 전하며 대중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겼습니다. 유진박이 아버지처럼 따르던 매니저 김 씨가 유진박을 상대로 수억을 착취하며 사기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인데요.

매니저 김 씨는 유진박 명의로 사채 2억 원을 몰래 썼고, 출연료 5억 600만 원을 횡령했으며 유진박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을 낮은 가격에 팔아 유용하는 등 7억 원 넘는 손해를 입혔습니다. 이 같은 충격적인 사실은 의외의 경위로 밝혀졌는데요. 당초 MBC는 유진박과 매니저 김 씨의 아름다운 동행을 그린 휴먼다큐를 제작하기 위해 취재에 나섰고 취재도 중 유진박에 대한 충격적인 제보를 받게 된 것이지요. 

제보자는 매니저 김 씨에 대해 "유진박이 만난 역대 매니저 중에 제일 나쁜 놈이다. 다른 놈들은 가둬놓고 때리고 했지만 돈과 재산에는 손을 안 댔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자면 앵벌이를 하고 있다. 앵벌이를 시켜서 그 돈으로 매니저가 도박을 한다"라고 주장했는데요. 다큐 촬영을 위해 유진박의 집을 방문했던 MBC 취재진은 벽에 낙서를 하는 등 불안도가 높아진 유진박의 모습을 보고 제보에 신빙성을 느꼈고 취재 방향을 튼 결과 매니저의 사기행각을 밝혀낸 것이지요.


가족도 매니저도 모두 돈만

가족도 아닌 매니저 김 씨가 유진박의 출연료는 물론 부동산 등 사유재산까지 쉽게 유용할 수 있었던 데는 스스로 재산을 관리한 여력이 부족한 유진박을 도와줄 후견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녀독남 외동인 유진박은 200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2015년 어머니까지 사망하면서 함께할 가족이 없었는데요.

2016년 유진박의 이모가 자신과 유진박의 고모를 유진박의 후견인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지만. 법원은 친인척들 사이 재산을 두고 갈등의 요지가 있는 점을 고려해 후견인 신청은 받아들이되 이모와 고모가 아닌 특정 복지재단을 유진박의 후견인으로 선정했지요. 이에 복지재단을 후견인으로 선정한 법원판결에 불만을 가진 유진박의 이모는 후견인 신청 자체를 취소했고 결국 유진박에게는 후견인이 없어진 셈인데요. 이로 인해 재산관리 능력이 없는 유진박의 상황을 악용한 매니저 김 씨가 어머니가 물려준 부동산까지 공중분해시키는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얄팍한 동정심보다는 응원

MBC 취재를 계기로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는 지난 6월 매니저 김 씨를 사기와 업무상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유진박 역시 매니저에 대한 처벌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후 돌아가신 어머니의 지인과 함께 생활 중인 것으로 알려진 유진박이 최근 반가운 얼굴을 비췄습니다.

바로 마미손의 정규앨범 속 타이틀곡 '별의 노래'에 함께한 것인데요. 유진박의 소식을 궁금해하던 대중들에게 음악으로 돌아온 유진박은 무엇보다 반가운 근황입니다. 유진박은 해당 곡의 연주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해 오랜만에 연주하는 모습을 공개했는데요. 가사 중 '어이 박 형 시원하게 울어줘'라는 대목에서 유진박은 바이올린을 통해 말 그대로 시원하게 울어주었고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드는 곡과 영상을 완성했습니다.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함께 한 마미손은 "나도 한때 유진박을 동정한 것이 사실이지만, 작업을 하며 내가 오만한 생각과 건방진 동정심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라며 "유진박에게 벌어진 일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진박은 미디어에 비친 것과는 다른 고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동안 느낀 내 동정심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알았다."라고 전했는데요. 마미손이 전한 대로 더 이상 유진박이 주변인들의 배신을 고민하는 일 없이 음악에 대한 고민만 안고 살아가는 행복한 음악인으로 지내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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