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티스트 프레디 머큐리와 키스 해링의 닮은 점? 늦기 전에 꼭 가봐야 할 키스 해링展

키스 해링은 미국 펜실베니아주 레딩에서 태어나 1990년 죽기 직전까지 작품 활동을 한 팝아트계의 슈퍼스타입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는 작년 11월부터 키스 해링의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아직까지 가지 못한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전시를 보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은 키스 해링에 대한 모든 것을 TIKITAKA가 지금 알려드립니다. 출처-junglekey.fr

 


낙서와 예술의 경계

키스 해링은 1976년 피츠버그 칼리지 그래픽디자인 과정, 1978년 뉴욕 명문 시각예술 학교 등에 입학하여 정식 교육을 받았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대신 지하철, 클럽, 건물 벽 등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요. 공공기물 훼손 죄로 경찰에 잡혀가는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사람들 일상에 예술을 두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금세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림이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주길 원하면서 대중의 근처에 예술이 존재하길 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미술관 벽을 넘어 거리로 나서는데요. 처음에는 단속을 피해 지하철역에 그림을 그리던 것이 이후에는 뉴욕은 물론 베를린,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등에 초대받아 벽화작업을 하게 됩니다.  

출처-Yes24

뉴욕 휴스턴의 벽화(1982)

피사에 있는 벽화(1989)

만화처럼 쉽고 천진난만한 작품

키스 해링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천진난만하고 밝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서 봤던 이미지들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실제로 그는 그림을 만화처럼 빠르게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조각 작품 역시 마치 대형 장난감을 보는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하는데요. 그는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을 추구했기에 무거움보다는 가벼움을 택했고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택했습니다.

(왼)Untitled(1987) (오)Acrobats(1986)

사회 문제

그는 자신 스스로가 성소수자이면서, 성소수자나 반핵, 문맹 퇴치, 인종차별, 에이즈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문제들을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특히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사회문제를 다루면서도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풀어냈는데요. 실제로 키스 해링은 '대중에게도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다. 예술은 만인을 위한 것,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예술을 고집스레 추구하는 건 자기를 과시하는 허튼수작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Ignorance=Fear(1989)

Free South Africa(1985)

최초의 Pop-Shop 오픈

키스 해링은 브랜드와의 협업이 아닌 예술가 본인 스스로 가게를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 시킨 최초의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1986년 뉴욕 맨해튼 소호 거리에 Pop Shop이라는 가게를 열었는데요. 가게는 그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나 핀 버튼, 스티커, 포스터 등을 판매하는 키스 해링의 굿즈 숍입니다. 가게는 상품의 가격도 저렴했고 온종일 힙합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하는데요. 역시 대중과 소통하는 키스 해링 다운 가게 분위기네요. 당시는 키스 해링이 명성을 얻게 되며 그의 그림이 고액에 거래되기 시작한 때인데요. 돈 많은 사람들만 자신의 그림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을 아쉬워한 키스 해링이 팝샵을 통해 대중의 근처에 남아있길 원했던 것입니다. 비평가들은 그가 예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한다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팝 숍의 모든 수익은 아동 자선 단체, 에이즈 관련 단체, 교육기관 등에 기부되었습니다. 팝 숍은 지난 2005년 문을 닫았지만 현재도 온라인 숍(https://pop-shop.com/)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프레디 머큐리와 키스 해링

프레디 머큐리와 키스 해링은 성소수자로서 둘 다 에이즈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1973년 약혼한 메리 오스틴과 공식적인 연인 관계로 지내왔는데요. 실제로는 양성애자임을 밝히며 결혼을 취소하고 헤어져 동성 연인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짐 허튼은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 7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 죽기 하루 전날이 되어서야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키스 해링 또한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프레디 머큐리와는 달리 그는 커밍아웃했고 오히려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키스 해링 또한 1988년 에이즈를 진단받게 되는데요.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기존 작업세계에서 보다 확장된 독자적인 예술관을 펼쳤습니다. 병마와 싸우며 작업한 '종말' 시리즈는 삶에 대한 소중함을 담아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키스 해링은 결국 1890년 31살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Apocalypse(1988)

일본인 사업가의 키스 해링 사랑

카즈오 나카무라는 1987년 12월 뉴욕 출장에서 키스 해링의 작품을 보고 반해 출장 기간 내내 갤러리를 드나들며 신용카드 할부로 작품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그의 키스 해링 사랑은 그가 마흔에 사업에 성공해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수집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소 가볍고 만화처럼 보이는 작품을 수집하는 것에 대해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옳았는데요. 그는 현재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키스 해링의 최대 수집가가 되어 일본 고부자치아에 키스 해링 박물관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지난 2018년 11월 24일부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에서는 전시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키스 해링이 지하철에서 했던 즉흥 드로잉부터 조각 작품은 물론 그가 죽기 한 달 전에 발표한 '블루 프린팅'까지 나카무라의 소장품 177점이 공개된 대규모 전시회입니다. 작품뿐 아니라 키스 해링의 생전 영상과 사진도 전시되어 그가 자신의 예술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시기간 : 2018. 11. 24-2019. 3. 17

전시장소 :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 지하 2층 디자인전시관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8시

관람료 : 성인-13,000원/청소년-11,000원/어린이-9,000원/미취학및65세이상-6,000원

문화가 있는 날 :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50% 할인

할인TIP : 오후6시-8시 티켓 현장 구매시 50% 할인/ 서울시민카드 제시시 20% 할인

어린이도슨트 : 평일 오전 1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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