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외계인, 살인마 끝없는 패러디 : 뭉크의 절규가 현대의 아이콘이 된 이유?

대부분 예술적 걸작들은 아름다움을 담아내기로 유명합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보티넬리의 비너스,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을 떠올리면 이해될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작품의 목록에 눈에 띄는 예외가 하나 있는데요. 이 작품 속 인물은 머리에 털이 없고 얼굴은 창백하며 손으로 얼굴을 짓누르는 듯한 괴로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저 그 괴로움에 압도 당할 듯한 이 작품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이런 예상과는 달리 이 작품은 영화와 TV, 인터넷까지 모든 대중문화에서 패러디되고 복제되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괴로워서 더 아름다운 작품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를 TIKITAKA와 함께 만나봅시다.

 


1. 그림에 대한 영감

뭉크는 1892년 1월 '절규'를 그리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여 글로 남겼습니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 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와 피오로드 강에 걸린 칼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 그림을 그렸고 구름을 실제 피로 그렸다. 색이 비명을 질렀다. 이것이 '절규'가 되었다."

2. 정신적 고통과 예술적 승화

뭉크는 1863년 오데스 브룩의 마을에서 태어나 크리스티아니아(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가정은 억업적이고 종교적이었으며 엄격한 양육 환경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5세때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누나는 그가 13살때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로부터 12년후 그의 아버지 또한 돌아가셨고 또다른 여동생은 조울증으로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정신착란 증세로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환경 탓에 뭉크 자신도 평생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분투하며 살아갔습니다. 뭉크는 극심한 우울증 환자였는데요. 끊임없이 이어진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상실감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의 작품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의 싸움이 항상 내재되어 있었는데요. 뭉크 자신도 자신이 가진 정신적 고통과 자신의 작품의 연관성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는 깊은 불안감으로 고통받아 왔다. 그리고 이 고통을 예술을 통해 표현하려고 노력해 왔다. 아마 이러한 불안과 병이 없었다면 나는 키가 없는 배와 같았을 것이다.' 또한 뭉크는 도시화, 과학의 발전 등 큰 변화의 문턱에 서 있는 세상의 도덕적 딜레마로 인한 긴장감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3. 절규 연작

절규는 총 4점의 연작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화 작품은 뭉크가 1893년 최초로 그린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현재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이 소장중입니다. 1910년에 그린 또다른 유화작품 한 점은 현재 뭉크 박물관에 있으며 이 박물관은 절규의 파스텔 버전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또다른 파스텔 버전의 절규 한 점은 노르웨이의 억만 장자 피터 올슨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뭉크는 1895년 이 작품의 석판화도 제작하였는데요. 2019년 4월 대영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바르트 뭉크 : 사랑과 슬픔'의 주요 전시 작품 중 하나입니다.

4. 패러디

영화 '나홀로집에'에서 주인공 아이가 아빠 흉내를 내느라 면도 후 남성용 스킨을 듬뿍 바른 뒤 피부가 쓰려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절규를 닮아 있는데요. 영화는 코미디 장르이지만 실수로 집에 홀로 남은 아이가 도둑에 맞서는 살벌한 상황을 담은 영화의 줄거리와는 상통하고 있습니다. 즉 부모의 걱정과 불안, 혹은 아이의 공포를 파고든 장면이지요. 또다른 영화 '스크림'에서는 등장하는 살인마가 절규를 닮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요. 영화속 살인마는 칼을 들고 피해자를 쫓을때 침묵하지만 그 가면은 공포의 대상이면서 비명을 지르며 쫓기고 있는 피해자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기도 합니다.

영국 드라마 '닥터 후'

5. 현대인의 절규

뭉크의 절규가 자신의 사적인 비극과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이었다 할지라도 이것이 예술작품이 된 순간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통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뭉크가 겪은 가족사적인 비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나름의 절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뭉크가 작품활동을 하던 당시 과학의 발전과 사회적 변화로 인해 그가 겪은 두려움과 불안감 역시 현대사회가 가진 다양한 문제로 인해 그 속에 살아가며 불안에 떨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뭉크의 절규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안에서 뭉크와 같은 비명을 지르고 있지는 않나요?

 

TIP 전시안내

전시명 : 에드바르트 뭉크 : Love and Angst

일   정 : 2019. 4. 11. - 2019. 7. 21.

장   소 : British Museum,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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