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계 대부' 백종원이 17억 빚지고 포기했다는 사업의 정체는?

'요식업계의 대부', '성공한 사업가', '요식업계 미다스의 손' 이 모든 수식어는 단 한 사람 바로 백종원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연 매출 1,700억 원, 전국 1,400여개의 점포를 가진 더본코리아의 대표 백종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요식업계 성공의 아이콘입니다.

하지만 한식, 중식, 일식은 물론 카페까지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 중인 백종원도 한때는 사업이 잘 안되는 바람에 17억 빚을 떠안았다는데요. 미다스의 손 백종원을 빚더미에 오르게 한 사업 아이템은 과연 무엇일까요?

타고난 사업가
고등학생 때 중고차 딜러

(왼) 고등학교 시절 (오) 최근

학창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는 백종원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돈 버는데도 관심이 많아 스스로 사업가 기질을 타고났다고 말하는데요.

실제로 백종원은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 친구 형이 하는 중고차 장사를 따라 했다고 합니다. 당시 백종원이 맡은 일은 소위 삐끼라고 불리던 것으로 중고차 딜러 아르바이트였는데요. 고등학생인 백종원은 옆 가게 차를 팔아 수수료라도 받으면 된다는 당찬 의지로 일을 시작했고 차에 대한 정보를 외워 40분 만에 첫차를 팔았다고 합니다.

 

이후 단 며칠 만에 6대를 판 백종원은 '이 일이 천직인가' 싶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요. 곧 백종원의 자신감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두 번째 차를 산 사람이 자신을 속였다며 오자마자 백종원의 따귀를 때린 것인데요.

실제로 백종원이 판 차는 운행 거리를 조작하고 차 사고가 크게 나 용접한 허위 매물이었고 그 사실을 몰랐던 백종원은 속여서 차를 판 사기꾼이 된 것이지요. 해당 사건을 계기로 백종원은 장사에 대한 책임, 제품에 대한 자신감, 신뢰 회복 등을 배웠다고 합니다.

알바하던 치킨집 한 달 만에 인수
대학생 때 번 돈만 15억

이후 백종원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에 서울 압구정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한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요. 포장 배달이 갓 생겨난 당시 상황을 이용해 전단지 홍보를 계획했습니다. 실제로 백종원은 전단지를 직접 손으로 작성해서 아파트에 돌렸고, 200장 전단을 돌리고나자 주문이 폭주했지요.

당시 '치킨 배달에 콜라서비스' 아이디어 낸 백종원

놀라운 사업 수완을 발휘한 백종원은 알바 시작 한달만에 해당 치킨집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에 이르는데요. 이후 대학교 3학년 때까지 3개의 가게를 운영하며 15억 원의 자산을 형성했습니다.

대학생 시절

다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잃는다고 했던가요? 대학시절 처음으로 벌인 사업으로 큰돈을 쥐게 된 백종원은 그 돈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가 잃게 됩니다. 그리고 장사를 못마땅해 하시는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리듯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요. 포병장교로 입대한 후 취사 담당 선임하사와 업무를 바꾼 것은 꽤 유명한 일화이지요.

"장교가 쪽팔리게 무슨 짓이냐"
욕먹어도 재밌었던 요리

포병장교로 입대한 백종원은 간부 식당에서 제공되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자 취사 담당 선임하사와 보직을 바꾸기로 했는데요. 당시 장교가 식당을 담당한다는 것에 대해 선배 장교가 "장교가 쪽팔리게 무슨 짓이냐"라며 욕을 먹기도 했다고 하네요.

게다가 한 번 정해진 보직을 임의로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장군에게까지 불려가는 상황이 발생했는데요. 당시 백종원은 "평시에는 간부도 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음식이 전투력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장군을 설득했고 결국 취사 보직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백종원에게 군 시절은 요리와 장사에 대한 다양한 개념이 잡힌 배움의 시기였는데요. 백종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비가 오면 배춧값이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내리면 트럭을 몰고 시장에 나가서 배추를 싸게 대량으로 사들여 염장을 했다. 덕분에 식재료비를 아끼니까 비싼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다."라며 군대에서 사입의 요령을 깨쳤다고 전했습니다.

 

이외에도 백종원은 간부식당을 배급식이 아닌 뷔페식으로 운영하는 최초의 시도를 했으며 효율적인 메뉴 구성과 식단 편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는데요. 덕분에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장군이 제대를 앞둔 백종원에게 1년만 더 하고 가라며 농담을 할 정도로 인정받았습니다. 

17억 빚더미에 오르게 한
사업 아이템은 바로

제대 후 백종원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습니다. 다만 당시 백종원에게 사업이란 요식업은 아니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음식장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백종원 역시 식당 일은 사업 축에 들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1993년 개업한 쌈밥집(더본코리아의 출발)

때문에 백종원은 건설 분야에서 성공해 어엿한 기업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백종원은 인테리어 물품과 건설자재를 들여오는 건설자재 무역업을 시작으로 건설 분야에 발을 들였습니다. 동시에 운영 중인 회사 옆에 안정적인 수입을 위한 부업 개념으로 쌈밥집을 열기도 했는데요.

다만 백종원에게 주사업은 건설업이었고 백종원은 90년대 당시 건설업계의 호황에 힘입어 사업 규모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실제로 백종원은 1994년 목조주택으로 눈을 돌려 시공회사까지 차렸는데요. 1996년 서른 살이던 백종원은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목조주택 자재 구입은 축적된 노하우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내는 일"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확장해가던 사업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무너졌는데요. 당시 목조주택의 자재는 해외에서 100% 들어오는 사업이었고 외환위기로 인해 미국 등에서 수입하는 목재 자재 가격이 폭등하자 유지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미 집을 지어주기로 한 계약 건들에 대해 자잿값 폭등으로 수지를 맞출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본 손해액만 무려 17억 원. 게다가 평소 아끼던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꿀 때 모멸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는데요. 금전은 물론 자존심의 상처도 심했던 백종원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홍콩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위해 찾은 홍콩에서 백종원은 새로운 희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오른 고층 빌딩에서 수많은 식당들을 보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올라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을 세우게 된 것이지요. 실제로 한국에 돌아온 백종원은 자신의 쌈밥집에서 채권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나한테 남은 건 이 식당 하나인데 나눠 가져도 얼마 안 된다.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 빚을 꼭 갚겠다'라고 전했는데요.

이후 하루 4시간만 자며 노력한 끝에 쌈밥집은 흑자로 돌아섰고 더불어 한신포차가 대박을 내면서 이자를 갚을 능력이 생겼습니다. 특히 한신포차는 백종원 자신을 역경으로 밀어 넣은 IMF 외환위기 상황을 고려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는데요. 외환위기로 가벼워진 서민들의 사정을 생각해 저렴한 가격으로 어필하고 서민적이고 친숙한 분위기를 꾸린 것이 성공에 주효한 것입니다.

현재 백종원은 자신의 이름 석자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고 할 만큼 성공한 기업인이 되었는데요. 청년 시절 꿈꾸던 건설회사 회장님은 아니지만 요식업계 멘토로 일하는 지금 백종원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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