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능프로 '구해줘홈즈'에 독특한 구조의 아파트가 등장했습니다. '신기한 평면도 아파트'로 소개된 해당 매물은 현관 중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기둥이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의아함을 자아냈는데요.
이를 본 출연자들은 "왜 중간에 기둥이 있냐. 가운데 공간이 뭐냐. 기동을 리모델링한 건가"라고 신기해했고 해당 공간에 대해 "아래층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펜트리일 것이다", "방 아닐까"라며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이어 공개된 기동 속 공간의 정체는 바로 화장실. 이에 출연진들은 "집 한가운데 화장실이 있냐"면서 당황했는데요. 이어 "리모델링 전부터 이렇게 돼있었다고 하더라"면서 "독특한 구조이지만 모든 공간에서 화장실을 갈 수 있기 때문에 동선은 좋다"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출연진과 시청자 모두들 혼란에 빠뜨린 해당 매물은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연원마을 삼성쉐르빌입니다. 바로 앞에 구성중, 구성고가 위치해 통학에 용이하며 녹지율이 높아서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단지인데요. 지하철 분당선 구성역도 도보로 12분 정도 소요되며 단지 뒤편으로 한성CC가 자리해 탁 트인 개방감과 쾌적함을 누릴 수 있으며 일부 가구에서 골프장 조망 프리미엄을 갖춘 것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또 해당 아파트는 2001년 12월 입주로 연식이 오래되었음에도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까지 바로 연결되어 내부 인테리어 공사나 리모델링만 하면 실거주에 용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고 13층, 총 316가구 규모로 전용면적 148㎡와 184㎡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그중 방송에 소개된 매물은 184㎡타입이죠.
대형 평형인 해당 타입은 설계 당시 대가족을 겨냥해서 지어졌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24~25평의 소형평수가 인기였고 4인 가족 기준 33~34평보다 큰 평형을 원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요. 때문에 약 65평에 해당하는 해당 타입은 대가족을 겨냥해서 침실을 5개나 배치했습니다.
각 침실마다 가족들이 거주한다고 볼 때 2개 화장실의 위치는 무척 중요합니다. 모든 거주자들이 편리한 동선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죠. 결국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안방과 현관 쪽에 각각 화장실을 배치하게 되면 안방 거주자 외에는 화장실이 너무 멀어지는 거주자도 있기 때문에 파격적으로 화장실을 집 한가운데 배치한 것입니다.
화장실이 가운데 배치되면서 불필요한 공간 낭비 역시 줄일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들어갈 벽면 자리가 비면서 서비스 면적인 베란다를 늘릴 수 있었고 방 크기와 창의 면적 역시 늘릴 수 있었는데요. 다만 화장실에 창문이 없다 보니 환기와 습도 조절이 어려운 점은 큰 단점입니다. 또 물소리가 거실에 들리는 것도 불편함으로 지적되죠.
이에 대해 해당 아파트의 실거주자는 "환풍기 매일 켜놓으면 환기 문제없고 방에서 화장실 소리 듣는 것보다 낫다"면서 화장실 배치에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환기설비의 성능이 개선되면서 '벽에 붙지 않은 화장실 배치'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보다 20여 년이나 앞서 파격적인 화장실 배치를 선보인 건설사는 어디일까?
이름을 보고 삼성물산의 래미안을 떠올렸다면 오산, 연원마을 삼성쉐르빌을 지은 주인공은 삼성그룹의 조선사업을 맡고 있는 삼성중공업입니다. 삼성중공업은 앞서 1999년 쉐르빌이라는 이름을 브랜드를 내걸고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는데요.
99년 5월 분양공고를 낸 목동쉐르빌은 지하 5층, 지상 27층 규모로 평당 850만 원의 분양가가 다소 높다고 평가되었지만 대형 평형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를 내세워 주목받았습니다. 이달 도곡동, 서초동, 장안동 등에 연이어 분양하면서 쉐르빌 브랜드만 1600가구 이상 세워졌죠.
국내에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인기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삼성중공업의 건설사업은 2000년대에 가장 흥행했습니다. 쉐르빌 외에도 타워팰리스 역시 삼성중공업의 작품인데,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리가 삼성그룹이 102층 사옥을 지으려고 매입한 부지라는 사실을 꽤 알려진 사실. 당시 교통혼잡을 이유로 도곡동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사옥 건설이 무산되면서 대신 국내 최초 60층 이상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게 된 것이죠.
쉐르빌, 타워팰리스로 주상복합 시대를 연 삼성중공업의 건설 사업부는 2005년 매출 6500억 원을 달성한 이후 꾸준히 흥행에 성공하면서 2010년 1조 299억, 2011년 1조 736억 원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중공업의 주력사업 분야가 아니다 보니 꾸준히 많은 물량을 건설할 수 없는 대신 '명품', '고급화'를 내세워서 '아무나 갈 수 없는 아파트'의 이미지를 만든 것이 성공에 주요했죠.
당시로서는 드물게 천정형 에어컨과 실크벽지, 친환경 마룻바닥을 시공했으며 주방에 빌트인 드럼세탁기를 설치하고 홈오토시스템으로 자동화시스템까지 갖추었습니다. 또 포곡 쉐르빌은 일반 아파트의 천정고보다 5㎝ 높여서 2.35m, 도림천역 쉐르빌은 2.6m까지 높게 설계해서 쾌적하고 탁 트인 공간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쉐르빌의 고급화 전략은 침체기를 맞이했습니다. 삼성중공업 입장에서는 굳이 어려운 사업을 붙들고 가기보다 본업인 조선업에 집중하기로 했고 사실상 쉐르빌 브랜드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때문에 쉐르빌은 브랜드 연속성을 잃으면서 브랜드 가치 역시 자연스럽게 하락했는데요.
화장실 파격 배치로 화제가 된 아파트가 알고 보니 우리나라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원조격 브랜드였던 사실. 지금은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삼성중공업의 파격적인 도전 덕분에 초고층 주상복합의 시대가 열린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