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추석을 기억하시나요? 추석 당일 오전 5시 42분 조금 일찍 일어나 TV 앞에 모인 가족들은 차례를 지내는 동안에도 소리를 줄인 채 차마 TV를 끄지 못했습니다. 바로 박찬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는데요. 국민의 응원에 힘입은 박찬호는 8이닝 동안 1점만 내주고 공격적인 투구를 선보인 끝에 15승을 달성했습니다.
국내 최초 메이저리거라는 사실 외에도 박찬호는 IMF 시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웅이었습니다. 당시 박찬호 경기 중계는 대낮 방송에도 시청률이 25% 이상 나올 정도.
100억 벌겠다고 떠난 메이저리거 1000억 벌어왔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한 박찬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한화 이글스에 연봉 5천만 원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투수로 성장했습니다. 다만 어머니의 권유로 한양대에 입학했고 이후 1993년 미국 버펄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나가 활약하면서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게 되었지요.
대회 직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LA다저스 등의 오퍼를 받은 박찬호는 1994년 LA다저스와 10만 9천 달러, 한화 1억 3천만 원에 계약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됩니다. 출국 당시 기자들 앞에 선 박찬호는 "미국에 가서 100억을 벌어오겠다"라고 농담 섞인 포부를 전했고 이에 대해 기자들은 '농담이 심하다는 듯' 크게 웃었다고 하는데요.
해당 기자들이 웃음기 뺀 박찬호의 활약을 기사화하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동안 박찬호가 받은 연봉은 1550만 5142달러까지 상승했고, 17년간 메이저리거로 번 돈만 총 8545만 6945달러, 한화로 약 1033억 원 수준입니다.
일본 리그로 옮기면서 선수로서 수익은 30억 원대로 떨어졌으나 국내에서 박찬호는 방송인이자 스포츠 스타로서 또 다른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국민영웅의 칭호를 얻은 만큼 광고 수익도 상당한데, 1998년 삼보컴퓨터 광고의 전속계약금으로 11억 원을 지급받은 박찬호는 최근까지 20편 이상 광고에 출연하면서 최소 100억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143억 투자해서 500억 된 박찬호 빌딩
이러한 수익을 바탕으로 박찬호는 부동산 투자에 도전했습니다. 2003년 신사동 인근 73억 원짜리 빌딩을 매입한 후 2005년 신축공사를 진행했는데, 현 시세가 500억 원 상당이라고 하니 신축공사에 들어간 비용 70억 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성공한 투자가 된 셈.
그 외 2009년 성수동에 위치한 서울숲 힐스테이트 한 호실을 14억 6천만 원에 매입해 현재까지 거주 중인 박찬호는 고향인 대전에도 적지 않은 필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2008년 한국토지공사로부터 평당 450만 원에 분양받은 586평짜리 토지인데요. 현재는 주차장으로 이용 중이지만 신축공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소유한 건물로부터 나오는 월 수익만 10억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 박찬호에게 노후대비는 충분해 보입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연금제도 덕분에 65세 이후부터 받게 될 연금 역시 매년 30만 불, 한화로 약 3억 5천만 원에 달하지요.
세금만 28억 낸다는 장인어른
코리안 특급이라는 명성답게 억 소리 나는 수익을 자랑하는 박찬호의 자산에 대해 '소박한 평가'를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박찬호의 장인 박충서 씨인데요. 재일 동포 부동산 재벌로 알려진 박충서 씨는 일본 중앙토지 주식회사를 운영해서 일본에서 손꼽히는 재력가로 성장한 인물로 일본 부호 순위 30위권에 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1998년 일본 개인 세금 총액 2억 8170만 엔, 한화로 약 28억 원을 납부하면서 일본 전체 국민 중 세금 납부 상위 76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는 도쿄의 중심가에만 오피스빌딩 12개, 임대 아파트 8개를 소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선수 활동으로 번 돈만 1천억을 넘어서는 사위 박찬호를 두고 "사위가 야구만 해서 돈을 많이 벌진 못했어도 사람은 참 좋다"라고 발언한 것 역시 무리는 아닌 상황.
여섯 번째 데이트 장소는 결혼식장
"착하다"라는 이유로 결혼을 최종 승낙 받았지만 만남 초기에 박찬호는 장인은 물론 아내의 마음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은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요. 재일교포로 태어나서 미국의 요리학교 CIA에서 프랑스요리를 전공하면서 5개 국어까지 섭렵한 박리혜와 만난 후 박찬호는 발랄하고 쾌활한 분위기에 반했습니다. 반면 박리혜는 얼굴이 까맣고 덩치가 큰 박찬호를 보고 "곰 같다"라고 느껴 피했다고.
이후 박찬호가 주선자에게 부탁해서 박리혜를 설득하고 친한 지인인 지누션의 션, 홍원기 코치와 유지현 코치 등의 도움까지 받아서 인연을 이어간 끝에 두 사람은 단 다섯 번의 만남에 결혼까지 결심했는데요. 두 사람의 여섯 번째 만남 장소가 결혼식장이었다고 하니 박찬호의 남다른 추진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지요.
프로골퍼로서 제2의 인생 설계
증여받은 자산만 1조 원이라는 아내와 수백억 대 부동산 자산을 가진 박찬호는 현재 LA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세 딸의 교육이 가장 중심인 셈인데, 특히 첫째 딸 애린 양이 골프를 하고 있어서 운동 선배로서 조언과 코치를 아끼지 않는다고.
더불어 방송활동 등을 위해 한국을 오가는 박찬호를 대신해서 아내 박리혜는 세 딸의 주 양육자로서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데 소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박찬호는 "아내가 (딸들에게) 한국무용을 배우게 했더라. 나도 한국 문화를 알려주고 싶다. 아내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도 않았는데 한국을 알려주려고 한다. 그게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부분이다"라고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박찬호는 큰딸 애린 양의 '골프대디'를 넘어서 스스로도 프로골퍼로서 제2의 인생을 설계 중입니다. "인정받던 야구선수의 삶에서 무관심의 대상이 됐다. 화려했던 시간이 있어서 더 그립다"라며 은퇴 후 겪은 우울증 경험을 털어놓은 박찬호. 그에게 'IMF를 거쳐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 대한 고마움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