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연애와 다르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감정만으로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에 그 시기가 지난 후에도 결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 결혼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의미가 없는 것일까?
반면 금수저 집안 출신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대부분 정략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해서 결혼하고 싶다'라는 꿈을 꾸었습니다.
정략결혼 한 부모님처럼 살기 싫었다
대구에서 언론사를 경영한 할아버지 덕분에 그야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주인공은 의사이자 사업가인 여에스더 박사입니다. 할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보니 여에스더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고모들까지 모두 정략결혼을 했는데요.
어린 시절 여에스더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부잣집에 시집을 와서 가든파티를 할 때 정원에 파리를 쫓거나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식구들을 위해 밥을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또 5명의 고모들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불행한 헤어짐을 겪는 것까지 보면서 여에스더는 '인형 같은 삶을 산다'라고 느꼈습니다. 때문에 자신은 반드시 원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배우자로 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다만 허약한 체질로 타고난 여에스더는 집안일로 바쁜 친정어머니 대신 유모의 손에 자라면서 몸과 마음에 늘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외모 콤플렉스로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는데, 외교관을 꿈꿨지만 외모로 놀림을 당하면서 '이 얼굴로 국위선양은 못하겠다'라는 판단에 못생겨도 할 수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진로를 변경했습니다.
만난 지 94일 만에 결혼
못생겨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의대에 진학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는 했지만 금수저 집안 딸로 태어나 부잣집에 시집가는 코스를 포기하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기까지 여에스더의 신념은 참으로 확고해 보입니다. 또 어린 시절 꿈꾸던 불타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계획까지 실행에 옮기는데 성공했는데요.
여에스더가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로 응급실에서 일하던 시기에 1년 후배인 홍혜걸은 인턴이었습니다. 여에스더는 홍혜걸을 처음 보자마자 '저렇게 괜찮은 인턴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첫눈에 반했지만 레지던트로 일하느라 워낙 바쁜 시기였고 홍혜걸도 군 복무를 하느라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지지 못했지요.
그로부터 3년 후 홍혜걸이 의학전문기자로 전업하고 한 세미나에 취재기자로 갔을 때 두 사람은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소위 불같은 사랑을 했는데요. 홍혜걸이 미국 출장을 갔을 당시에는 휴대폰도 없고 e-mail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라 호텔에서 매일 팩스를 보낼 정도였다고 하네요.
당시 팩스로 보낸 러브 레터에는 '질투심 많은 악마마저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랑. 선생님께 드리고자 하는 제 사랑도 그러한 것입니다.'라는 다소 저돌적이고 남성적인 멘트도 담겨있었습니다. 그렇게 열흘 가까이 팩스로 편지를 보내는 정성과 열정에 감동받은 여에스더는 한국에 돌아온 홍혜걸이 교제 단 94일 만에 초고속으로 한 프러포즈에 YES로 답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불타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홍혜걸의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의 딸인 여에스더가 며느리로 부담스러워 반대했습니다. "부잣집 사람을 데리고 오면 며느리가 시어머니 무시하고 그럴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는 것.
출산 후 원인 없이 아프더라
다행히 여에스더의 겸손한 태도를 직접 겪으면서 시어머니가 결혼을 허락했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오히려 친정어머니보다도 더 애틋하게 며느리를 챙긴다고 하는데요. 여에스더가 첫아이를 출산할 당시 24시간 동안 진통을 겪는 와중에도 친정어머니는 제왕절개는 안된다고 반대한 반면 시어머니는 "우리 며느리 제왕절개 좀 해주세요"라며 울었다고.
30대 중반에 두 아들을 출산하고 여에스더는 안 그래도 허약했던 몸이 더욱 망가졌습니다. 이후 국내에서 손꼽힌다는 의사가 있는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와 진단을 받았지만 결국 "아무 이상이 없다"라는 말만 듣고 돌아왔는데요. 병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분명 스스로 느끼는 몸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여에스더는 '영양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온갖 검사를 해도 병명이 나오지 않고 결국 "정신과에 가보라"라는 말을 듣는 자신과 같은 환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에스더는 환자이자 의사로서 기능의학을 독학했습니다. 그리고 16년의 공부 끝에 영양과 운동 등으로 조절하는 영양처방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몸 챙기려고 만든 유산균이 500억 매출
예능 프로 '마리텔'을 통해 인지도를 쌓은 후 다수 방송활동으로 유명해진 여에스더는 남편 홍혜걸 박사와 함께 일명 '쇼닥터'로 불리며 비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게 제일 싫다"는 여에스더는 의학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생활에서 직접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알려주는 것이 의미 있다고 자부합니다.
더불어 9년 전부터는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뛰어들어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영양제 등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데요. 유산균 제품을 대표로 한 해당 사업은 시작한 지 7년 만인 2019년 누적 판매액 2000억을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연 매출 500억을 유지하면서 승승장구 중입니다.
이에 대해 여에스더는 "솔직하게 얘기하면 열심히 전문가로서 대장 건강에 관심을 가진 건 맞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운빨이었다"면서 36살에 발견한 대장 용종을 치료하기 위해 책과 논문을 뒤졌는데 마침 전 세계 관심이 프로바이오틱스로 갈 때 만들어서 맞아떨어졌다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순이익의 8~10%인 6억 원 정도를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별거, 해임한 남편
한편 수백억 매출을 자랑하는 아내를 두고 "금이야 옥이야 한다"면서 자랑하던 남편 홍혜걸 박사는 아내의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 여에스더는 남편이 자신이 운영 중인 회사에서 해임된 사실을 전하면서 "회사 내 별명이 '폭탄'이었다"면서 "직원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보직 대기발령했다가 해임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술과 SNS를 좋아하는 홍혜걸이 SNS를 통해 민감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회사에 큰 타격을 준 사례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
결국 회사에서 해임된 홍혜걸은 반려견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여에스더는 "술과 SNS를 너무 좋아하는데 다 끊게 하니 마음이 아프더라. 뭔가를 빼앗았으면 뭔가를 줘야 하는 강아지와 함께 살라고 제주도에 집을 마련해 줬다"라고 말했습니다.
평소에도 원리와 큰 방향을 중요시하는 홍혜걸 박사와 디테일하고 생활 밀접한 내용을 중요시하는 여에스더는 의학적인 견해에서도 자주 다툽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의학박사이자 국내 최초 박사 출신 의학전문기자인 남편의 활동을 지지하는 여에스더는 남편이 운영 중인 유튜브 의학 채널에 출연해서 남다른 내조를 하기도 했습니다.
남편 홍혜걸 역시 결혼생활에 대해 "26년째 쥐여살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집사람이 예쁘고 귀엽다"라고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는데요. 의학적 견해에서 논쟁이 있어도, 사업적으로 갈등을 겪어도 두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큰 고리는 불타는 연애를 할 때의 애틋했던 감정에 대한 기억 덕분이 아닐까요?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을지언정 추억에는 유효기간이 없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