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하나 두고 10억 차이나는 아파트와 빌라

대구에 사는 A씨는 무려 2년간의 고민 끝에 최근 이사를 완료했습니다. 앞서 A씨는 첫째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자녀교육을 위해 학군이 좋다는 수성구로 이사를 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고민하는 사이에 수성구의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경제력 여력이 안되어 포기한 상황이었습니다.

범4만3(네이버지도)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선 A씨의 첫째 자녀는 공부를 곧잘 하는 것은 물론 부모에게 먼저 "나도 수성구에 있는 학원 다니고 싶어"라고 요구했는데요. 등 떠밀어도 안되는 공부를 스스로 해보겠다고 나서는 아이를 막을 수 없기에 2년 전부터 A씨 부부는 수성구 중에도 최고 학군으로 불리는 범어4동과 만촌3동, 일명 범4만3 지역의 매물을 찾아다녔습니다.

수성구 범어네거리

당장 전학을 가야 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청약 당첨을 기다릴 여유는 없고 이미 지어진 아파트들은 신축, 구축 가릴 것 없이 평당 4~5천만 원. 영혼까지 끌어모을 각오를 하고 수성구 입성을 노렸으나 현실은 생각보다 더 험난했습니다. 그러던 중 80년대 지어진 저층 아파트가 평당 2~3천만 원 선이라는 사실에 눈길을 돌려보았는데요. 해당 아파트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그야말로 핫한 매물이었습니다.

다만 낡은 내부를 둘러보다 보니 '몸테크'라는 말이 온몸으로 다가왔다는 A씨는 결국 어린 두 자녀와 반지하에 가까운 낡은 아파트에 살 자신이 없어서 고민하는 사이에 해당 매물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보여준 다른 매물은 인근에 위치한 빌라였습니다.

해당 빌라는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14~15억상당의 아파트와 붙어있는 2개동 짜리 빌라인데, 입지 면에서는 학군, 학원가, 마트 등 모든 인프라를 아파트와 공유하고 있지만 단지 빌라라는 주택 형태만 다를 뿐이었지요.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해당 빌라의 매매가는 5억 원대였습니다.

재테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결심한 A씨 부부는 학군과 학원가를 모두 도보로 이용할 수 있으면서 대형 평수에서 쾌적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을 고려해서 빌라를 매매했습니다.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빌라이다 보니 리모델링이 필수였지만 리모델링 비용 1억을 합해도 6억 원대인 빌라의 가격은 담벼락 너머 아파트의 같은 평형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리모델링까지 완료하고 나니 A씨 가족은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빌라 매입 소식을 들은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는데요. "왜 아파트가 아닌 빌라를 샀느냐", "빌라는 시간 지나면 똥값 된다"라며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리고 이사한 지 한 달 만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수리 비용으로 290만 원을 청구 받은 A씨 부부는 빌라로 이사 온 것이 잘한 일인지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아파트가 빌라보다 비싼 이유

아파트와 빌라는 분양가부터 다릅니다. 아파트는 건설사의 브랜드 값과 놀이터 등 공용공간의 토지값까지 계산하여 평당 단가를 측정하기 때문에 분양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반해 빌라는 중간 마진 없이 건축주가 직접 건축하므로 분양가가 저렴할 수 있습니다.

공용공간이 넓지 않다는 점만 제외하면 브랜드 값이 빠진다는 면에서 빌라는 아파트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 가능해 보이는데요. 하지만 빌라는 일반적으로 아파트보다 결로, 곰팡이, 누수 등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 되어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2017년 인천의 한 빌라 옥상에 무단투기된 쓰레기

또 세대수가 적은 만큼 관리비에 대한 부담도 큽니다. 경비, 청소, 쓰레기 처리 등에 드는 비용과 엘리베이터 등 공용 시설의 관리 비용을 적은 세대가 나누어 부담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돈이 드는 것.

무엇보다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이 낮습니다. 아파트는 다수 가구가 밀집되어 평형이나 시설이 규격화되어있고 국토 실거래가 조회만 해봐도 시세를 비교하기 용이한데 반해 빌라는 직접 부동산을 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또 대출을 위해서는 감정평가를 해야 하는데 그 금액이 생각보다 적어서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지요.

 

아파트 규제 덕분에 떠오른 빌라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아파트 시장에 집중되면서 빌라 시장에는 때아닌 볕이 들었습니다. 세제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세금 부담은 아파트에 비해 적은 덕분에 투자자들의 눈길이 쏠린 것. 또 아파트값이 최근 몇 년 새 급등하면서 선뜻 매수하기 부담스러웠던 실수요자들도 매매 문턱이 낮은 빌라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습니다.

 

실제로 빌라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9월 무려 12년 만에 최고 거래량을 돌파했습니다. 심지어 2020년 9월 서울 주택 거래는 아파트가 3769건인데 비해 빌라가 4015건으로 246건 더 매매되었습니다.

데일리저널

신축 빌라들의 경우 엘리베이터와 공용시설 등이 아파트 못지않게 설계되어서 젊은 신혼부부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지만 낡은 빌라들의 완판 행진은 어떤 이유일까? 바로 구축 빌라들의 가로주택정비사업을 노린 투자자들의 관심 덕분인데요. 재건축 사업에 비해 절차가 간단한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빌라의 '미니재건축'이 이슈로 떠오른 것입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큰 도로와 인접한 낡은 빌라나 단독주택 일대를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인데 사업 진행속도가 민간 재개발 사업보다 2배 이상 빠르다 보니 부담이 적습니다. 때문에 대형 건설사들도 가로주택정비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브랜드 아파트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구축 빌라의 호재로 여겨졌지요.

 

비싸도 아파트

하지만 "확실하다"라고 소문난 빌라도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정비사업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업 초기 단계에 투자했다가 목돈이 오랜 기간 묶이는 바람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으니 신중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Jtbc 정산회담

또 재개발 투자는 구역 내 빌라나 단독주택을 구입한 뒤 조합원 지위를 획득해서 분담금을 내고 새 아파트를 받는 과정에서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보니 '대지지분'을 확실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빌라가 투자용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 가운데는 세대당 대지지분이 낮다는 점도 있는데요. 대지지분이 큰 빌라인지 먼저 확인하고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빌라 투자가 '고수 중에서도 고수만이 가능한 영역'으로 꼽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그래서인지 최근 빌라 시장의 볕은 다시 사라지고 "비싸도 아파트"를 외치는 분위기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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