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 '위기는 기회'라지만 실제로 위기의 순간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회사 경영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전무한 신입 CEO에게 100억 원의 빚은 엄청난 절망이겠지요.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서 100억 빚을 떠안았다는 28살 청년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요?
28살 나이에 100억 빚을 떠안았다는 주인공은 바로 길림양행의 대표 윤문현입니다. 중국의 길림성과 유사한 이름 때문에 '중국기업 아니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 길림양행은 사실 1982년 국내 최초로 아몬드를 수입한 '길상사'를 모태로 한 토종 한국 기업입니다. 1988년 해운회사에 다니던 윤태원 회장이 지인소개로 해당 길상사를 인수해서 바꾼 이름이 길림양행이지요.
이전까지 아몬드는 국내 견과류 생산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수입금지 품목이었다가 밤 수출을 위해 쿼터물량으로 소량 들여오게 되면서 이를 길림양행이 맡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 아몬드 공급사인 미국 블루다이아몬드 그로워스의 한국 독점대리인 자격도 누렸고 국내 납품처도 롯데제과 등 대기업이었지만 그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큰돈을 버는 사업은 아니었는데요. 정해진 양의 아몬드를 컨테이너째 들여와 굽거나 그대로 납품처에 보내는 단순한 형태의 사업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수입규제가 풀리면서 견과류 시장의 판도는 바뀌었습니다. 롯데제과, CJ 등 대기업이 직접 나서 아몬드를 수입하고 가공하면서 대기업을 상대로 한 납품은 더 이상 불가능했고, 국내 소비 트렌드 역시 재래시장이 아닌 마트와 편의점으로 옮겨가면서 수입원과 유통만이 다양해져서 작은 아몬드 납품회사 '길림양행'은 설 곳을 잃었습니다. 결국 수입한 원재료를 직접 가공, 납품해서 전체 매출을 높이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
때문에 윤태원 회장은 기존 유통업을 넘어서 제조회사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다만 매출이 급감한 상황에서 제조 설비를 갖추기 위해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는데요. 실제로 공장은 다 짓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음이 남발됐고 회사가 넘어가기 직전까지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윤태원 회장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겨우 28살이 된 윤회장의 아들이 얼떨결에 100억 원의 빚과 함께 사업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병원에는 아버지가 의식 없이 누워계시고 어머니와 누나는 울고 있었지만 윤 대표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당장 재고와 미수채권을 파악하기에 바빴지요. 당시에 대해 윤 대표는 '평생 내가 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라는 심경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20년 가까이 아버지가 힘들게 꾸려온 회사의 부도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회사를 떠안은 것.
작은 회사이다 보니 대표 한 사람의 자리와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운영비가 모자라 화장실에서 온수조차 틀기 어려운 상황에서 윤 대표는 직접 뛰는 수밖에 없었고, 중고차에 회사 스티커를 붙인 채 트렁크에 샘플을 가득 싣고 공격적인 영업에 나섰지요. 하지만 사정해서 겨우 납품을 따낸 업체에서는 제때 돈을 주지 않았고 결국 회사는 부도를 맞았습니다.
이후 대형 유통사가 PB 상품을 개발하면서 단가를 낮추기 위해 중소업체와 손잡으려는 틈을 노려 윤 대표는 또 한 번 시장을 파고들었습니다. 윤 대표는 "공장이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제일 싸게 하겠다"라고 있는 그대로 사정을 전했고 덕분에 공장가동률이 높아지면서 제조 경험까지 쌓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미비한 상황에서 윤 대표는 견과류 가공식품 제조를 목표로 제품개발에 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 견과류 시장에서 가공식품의 비중은 5%에 불과했는데 윤 대표는 미국 등의 사례를 보며 견과류 가공식품 시장의 발전 가능성을 확신했습니다. 때문에 개발 부서가 따로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윤 대표는 직접 개발과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건강 콘셉트를 지키겠다"면서 기름에 튀기는 대신 로스팅 하는 방식을 택했고, "끈적한 물질을 활용해 산패도 막고 다양한 맛을 입혀보자"라는 방향을 세운 뒤에는 매일 밤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라고 했던가요? 굽기강도와 당액농도, 냉각시간 등 조건을 바꿔가며 겉면에 당액을 코팅해도 서로 달라붙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눅눅해지지 않는 레시피를 막 개발한 그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2014년 연말 '허니버터칩' 열풍이 불면서 GS25에서 "허니버터가 인기니 아몬드에 허니버터를 씌워보자"라고 제안해 왔는데, 윤 대표는 단 2주 만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 그렇게 탄생한 허니버터 아몬드는 출시 첫 달 2억 원어치가 팔리더니 두 달 때는 10억 원, 석 달째는 20억 원으로 매출이 급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윤 대표는 해당 제품의 성공에만 머무르지 않고 제품군을 넓혀갔습니다. 제품의 다양화에 집중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는데, 명동과 면세점 등 관광객이 모이는 쪽으로 유통까지 강화하면서 시너지를 얻은 회사는 성장에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해외여행객과 해외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삼은 윤 대표의 계획 역시 적중해서 2015년부터 시작한 수출 규모는 2018년 15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또 독일의 젤리회사 하리보를 롤모델로 삼았다는 윤 대표는 브랜딩을 위해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 출신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MD로 일하던 백순흠 팀장을 스카웃했습니다. 윤 대표의 비전을 전달받은 백 팀장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동선을 고려해 명동 노른자땅에 허니버터아몬드앤프렌즈 HBAF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는데요.
해당 매장에서 윤 대표는 제품을 알리기 위해 한 달 시식비용만 8000만 원 이상을 들이면서 홍보에 열을 올렸고, 시식 경험은 실제 구매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명동의 HBAF는 플래그십스토어임에도 불구하고 월 매출 15억 원의 실적을 내면서 든든한 수익모델이 되었습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해외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명동 매장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대신 윤 대표는 마트에 파고들었습니다. 스타필드와 대형마트 등에 팝업스토어 채널을 확장했는데요. 덕분에 2020년 마트 매출은 오히려 전년 대비 25%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길림양행은 '전지현 아몬드'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달고 승승장구 중입니다. 앞서 제품의 인지도는 높였지만 회사와 브랜드에 대한 홍보가 미비했던 길림양행은 리브랜딩을 결정했습니다. 명동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사용했던 허니버터아몬드앤프렌즈의 약자 HBAF를 재사용하기로 한 것. 여기에 Healthy But Awesome Flavors(건강하지만 놀라운 맛)이라는 새로운 의미도 부여했습니다.
또 안정감 있는 모양과 달리 읽기 힘들다는 단점은 H를 묵음 처리하고 "바프"로 부르는 것으로 보완했는데요. 이를 홍보 포인트로 잡아 모델이 직접 "H는 묵음이야"라는 문구를 언급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게다가 모델로 캐스팅된 배우 전지현이 영화 못지않은 영상미를 완성하면서 광고는 완벽해졌지요.
중국 회사로 오해받던 길림양행은 '전지현 아몬드', '바프'로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 지난 2월 광고 노출 이후 매출이 170% 이상 상승했습니다. 편의점 매출은 3배로 뛰었을 정도.
28살에 얼떨결에 회사를 물려받은 청년 윤문현은 이제 40대의 베테랑 CEO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한 예능에 출연해 치열했던 과거를 회상한 윤 대표는 "시장에서 도태되면 가격 싸움해야 하고 비굴하게 영업해야 하다"라며 "저는 그렇게 했지만 직원들이 그렇지 않은 게 좋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찾아오는 위기마다 새로운 해법을 내놓는 대표가 있는 한 직원들이 비굴해질 일은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