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결혼'은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면서 여성들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사회적 커리어를 잠시 내려놓고 자녀와 가정을 위해 주부, 아내, 엄마로서의 삶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요. 결혼을 위해 타국으로 건너와 국적까지 바꾼 결혼이주여성들의 경우는 그야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것인데요.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이후, 한국말을 배우는 것은 물론 국가고시까지 통과했다는 집념의 여성들이 있습니다. 내국인도 쉽지 않은 시험을 통과한 주인공들은 그 비결로 "남편의 헌신적인 도움"을 꼽았습니다.
환경미화원 남편이 공부하라고 지원
간호사 탁현진 씨
2006년 결혼과 동시에 전북 남원으로 이주한 탁현진 씨는 환경미화원인 남편의 적극적인 응원 덕분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앞서 베트남 호치민 근방의 시골 마을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난 현진 씨는 농사를 짓고 동생들을 돌보며 자랐는데요. 어린 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일과 식모살이를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특히 천식으로 고생하는 여동생을 보면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꾸기도 했다는 현진 씨는 베트남에서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고 친척 언니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 역시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만난 현진 씨의 남편은 환경미화원인 유영현 씨입니다. 2006년 5월 결혼하고 여름부터 남편의 고향인 남원에 자리 잡은 현진 씨는 서툰 한국말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원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교육과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남편 영현 씨는 아내에게 "베트남에서 포기했던 공부를 지금이라도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권유했지요.
남편 덕분에 못다 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현진 씨는 2012년 오수 미래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어린 시절 막연히 가지고 있던 간호사의 꿈을 펼치기 위해 전주비전대 간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남편 영현 씨는 새벽에 출근하고 귀가해서 아이들 육아를 도맡으며 아내의 학업을 지원했는데요. 심지어 현진 씨가 1년간 대학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는 영현 씨 혼자 살림과 육아, 환경미화원 일까지 모두 해냈습니다.
다만 모국어가 아닌 한국어에 영어까지 배우며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때문에 현진 씨는 간호사 국가고시에서 5차례나 낙방했습니다. 낯선 의학용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연이은 불합격으로 실망한 현진 씨를 북돋아 다시 도전하게 만든 것도 남편 영현 씨였는데요. 8년 넘게 이어온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 덕분에 현진 씨는 6번 만에 지난해 2월 국가고시 합격증을 거머쥐었습니다.
이후 남원 소재의 한 정신병원에서 6개월의 수련과정을 거친 현진 씨는 올해 3월 남원의료원에 정식 발령을 받고 보건직 8급 간호사로 근무 중입니다. 공부기간이 길었던 만큼 현진 씨의 의료지식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요. 무엇보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만큼 환자들에게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봉사 시작
주무관 이두연 씨
베트남 호치민 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전공한 누엔티빛 타오 씨는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를 다니던 중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했습니다. 앞서 국제결혼은 생각해 본 적도 없던 타오 씨는 남편의 자상하고 따뜻한 배려심만을 믿고 2007년 한국행을 결심했지요. 다행히 한국어를 전공해서 언어 문제로 고생이 없었던 타오 씨는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했고 동네에서 만난 베트남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무료 한국어 과외를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다만 워낙 활동적인 성격인 타오 씨는 대부분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지내는 시골의 분위기가 낯설었는데요. 이런 타오 씨의 성격을 알고 있는 남편이 적극 알아본 덕분에 익산 다문화센터와 경찰청, 전주지방법원, 여성신문 등 공공기관에서의 명예기자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타오 씨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익산시 다문화가정지원센터는 2년 반 동안 그를 통번역사로 채용하기도 했지요.
통번역사 활동을 통해 결혼이주여성들의 힘든 여건을 더욱 체감하게 된 타오 씨는 베트남, 중국 등 5개국에서 온 20명의 결혼이주여성들을 모아 '다문화가정봉사단'을 조직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이주여성들은 더 이상 도움을 받는 주체가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화합하는 공동체로 인식되었는데요.
이미 지역사회에서는 결혼이주여성과 지역주민들 사이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던 타오 씨는 2011년 8월 익산시에 시간제 계약직(9급 상당)으로 임용되면서 전북지역 최초 외국인 출신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결혼이주여성들의 행정서비스 안내와 통번역을 비롯해 다문화 가족 사례관리 등 행정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한국 가이드북까지 출간하면서 열정을 드러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자상한 남편을 만나 사랑을 듬뿍 받고 사는 행운아"라면서도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언어습득, 건강검진 같은 기본적인 적응도 못한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낸 타오 씨는 이후 꾸준히 열혈 공무원으로 활약했습니다. 한국 이름 이두연으로 개명한 그는 현재 익산시청의 여성청소년과에서 외국인 상담 및 서비스연계, 다문화가족지원사업 운영지원, 전북이주여성쉼터 운영지원, 다문화지원계 신원조회업무 등을 담당하는 주무관으로 근무 중입니다.
코로나 감염 경로 밝혔다
경찰관 이보은 씨
지난해 5월 코로나의 새로운 확산 경로로 떠오른 부천 '메리트나이트'를 기억하시나요? 당시 이태원 퀸클럽을 다녀왔던 베트남인 A씨가 코로나 관련 증상으로 선별진료소를 찾아 검사했으나 "이태원 클럽 방문자는 신원을 묻지 않는다"라는 방역당국 지침에 따라 개인정보를 남기지 않아서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양성판정을 받은 A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불법체류자 신분인 A씨가 강제출국을 두려워해서연락을 피했고, 이에 베트남 출신의 귀화 경찰관 이보은 경장이 나서서 베트남어로 직접 연락을 취하며 설득한 끝에 A씨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방역당국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불법체류자 단속을 유예했으나 한국말이 서툰 A씨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두려운 마음에 집 안에 숨어만 지내던 상황이었는데요. 이보은 경장의 설득 덕분에 연락을 취한 A씨는 부천 소재 '메리트나이트'에 다녀온 사실과 함께 직장동료 등 주변 접촉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역학조사에 적극 임했습니다.
9년차 경찰관인 이보은 경장은 친언니의 소개로 만난 남편을 따라 2004년 한국에 자리 잡았습니다. 시댁인 강원도에 쌓인 흰 눈을 보며 베트남 하이퐁 출신의 보은 씨는 '내가 참 먼 나라에 왔구나'라고 실감했는데요. 이후 소통을 위해 언어를 마스터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어 독학을 시작했고 그 열정이 이어져서 2007년부터 검정고시까지 도전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초, 중, 고등학교 전 과정을 통과한 보은 씨는 베트남에서부터 막연히 꿈꾸던 경찰관의 꿈까지 키웠습니다.
이민자 출신으로 경찰관이 된 필리핀 출신 아나벨 경사와 캄보디아 출신 라포마라 경장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접한 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보은 씨는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로 한창 바쁘던 시기에 결혼이민자들을 돕는 bbb코리아 소속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경찰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꿈에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고도 통역을 구하지 못해서 경찰서에서 억울한 상황을 겪는 이민자들을 도우면서 경찰관이 되면 더 큰 도움이 되겠다고 느낀 것인데요.
공부와 봉사를 병행하는 보은 씨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소방관인 남편이었습니다. 밤늦게 전화가 걸려오면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펜과 종이를 가져다주고 보은 씨의 업무를 도울 정도. 덕분에 보은 씨는 2011년 내국인도 어렵다는 경찰관 시험에 응시했다가 최종면접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고도 이듬해 다시 도전해서 외사 특기로 경찰관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3월 광주경찰서로 발령받은 이후 내외국인을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자 활약 중인 보은 씨는 지난해 코로나 상황에서 경기 광주경찰서 소속 경장으로서 역학조사에 큰 역할을 해내는 쾌거를 달성했는데요. 앞으로도 소방관 남편과 경찰관 아내의 멋진 협력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