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마라" 앵커 출신 선입견에 맨얼굴로 방송했다는 기자

명문대 진학에 나란히 성공한 형제자매들을 보면 좋은 유전자를 타고난 것인지, 부모의 교육태도가 좋은 덕분이지 궁금해지는데요. 두 언니들에게 신경을 쏟느라 자신에게는 부모님의 교육열이 비켜갔다고 고백한 막내딸이 있습니다. 엄격한 환경에서 공부한 언니들에 반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막내딸이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 건 '타고난 공부머리' 덕분일까요?

임종령 통역사

세 자매들 가운데 가방끈이 가장 짧다고 고백한 주인공은 기자 출신의 방송인 안현모입니다. 동시통역사, 앵커, 기자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안현모가 언어적으로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은 집안 내력을 보아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데요. 외가의 이모는 빌 게이츠 방한 당시 통역을 담당한 통역사이고 친가 쪽 고모는 걸프전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한 당시 동시통역을 맡은 임종령 통역사입니다. 또 자신을 포함한 친언니까지 통역사로 일한 적이 있어서 집안에 통역사만 4명이나 되는 셈.

게다가 3개 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외할아버지 덕분에 안현모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께 영어뉴스를 배우는 등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에 노출되었습니다. 스스로도 언어 분야에 대한 흥미도가 높아서 4살 무렵에는 'S'가 시옷 발음이 난다는 걸 홀로 깨우칠 정도였는데, "엄마 S에서 뱀처럼 '스으~'하는 소리가 나"라고 말하자 안현모의 어머니는 딸의 남다른 언어능력을 발견하고 영어공부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안현모의 부모님이 지원했다는 영어공부비법은 그저 영어 콘텐츠에 자주 노출시키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외국영화 DVD를 사다 주면 안현모는 자막도 없이 영어로 된 영화를 100번 이상 반복해서 보면서 스스로 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었지요.

반면 안현모의 두 언니는 다소 엄격한 환경에서 공부했는데요. 큰 언니 안인모는 선화예중, 선화예고,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졸업한 후 미국가톨릭대 대학원에서 피아노 퍼포먼스 박사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혹독한 공부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후 이화여대 강사를 거쳐 경희대 예술디자인대학 겸임교수로 일했으며 최근에는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책 집필과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둘째 언니 역시 박사 출신으로 통역사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직업을 전향해 셰프로 일하고 있는데요. 두 언니를 키우는 동안 교육열을 모두 소진하신 탓인지 안현모의 부모님은 늦둥이 막내딸 안현모에게만큼은 "공부하라"라는 잔소리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안현모는 "어머니가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셔서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됐다"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주도학습을 하게 되었다고 전했습니다.

부모님이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서 오히려 공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안현모는 대원외고 재학 시절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인 야간자율학습을 좋아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다만 언어와 인문학 분야를 좋아할 뿐 자신의 적성이나 꿈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안현모는 장래희망란에 늘 '현모양처'라고만 썼고, 서울대 언어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며 미술 학원을 다녔습니다.

대학 졸업 무렵까지도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안현모에게 둘째 언니는 "딱히 진로를 정하지 않았으면 통역대학원을 가는 게 어떻겠냐"라고 제안했는데요. 당시 안현모는 '통역은 꼭 통역사를 평생 업으로 하지 않아도 좋은 스킬이자 기술이니까 공부해보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SBS CNBC 앵커 활동 모습

대학원 졸업 직전 안현모는 당시 막 개국한 SBS CNBC의 앵커 모집 시험을 통해 앵커로 입사했습니다. 처음 안현모가 맡은 일은 야간에 미국 CNBC 방송 화면을 보고 통역해서 방송으로 전달하는 일이었습니다. 통역을 포함해 대본 작성부터 방송 진행까지 모두를 해야 하다 보니 이 시기 안현모는 자연스럽게 통역과 진행 실력이 동시에 늘었는데요. 진행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한국어로 진행되는 방송까지 맡게 되었지요.

SBS 기자 활동 모습

이후 안현모는 활동 영역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에 SBS 보도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앵커로서 퇴사 후 시험을 통해 SBS 기자로 재입사한 것인데요. 일반적인 절차를 통해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에서 예쁘게 꾸미고 방송을 하던 앵커 출신이 기자 일을 한다니 못 버티고 6개월 안에 퇴사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렸습니다.

실제로 안현모가 보도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웃지 말아라"라는 충고. 기사를 통해 한 기업이 망할 수도 있고 한 가정의 가장이 실직을 할 수도 있으니 기사를 전달할 때는 감정을 숨기라는 의미였지요. 다만 앵커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안현모에게만 유독 혹독한 평가가 이어졌고 안현모는 "기사작성할 시간에 거울 본다"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맨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빌보드뮤직어워즈 통역

안현모가 자신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오리혀 퇴사 이후입니다. 2017년부터 프리랜서 진행자이자 통역사로 활동 중인 안현모는 국제회의와 공식행사를 통해 경험을 쌓아왔는데요. 2018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 생중계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수상소감을 끊지 않고 깔끔하게 전달해 시청자는 물론 BTS 팬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외신보도 통역진행

이어 2018년 6월에는 북미 정상회담 상황을 전달하는 방송에 출연해 CNN의 보도를 동시통역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SBS를 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국 선배들이 안현모를 적임자로 여겨 추천했고 감사한 마음을 안고 출연한 안현모는 생중계되는 방송 통역의 부담을 이겨내고 제 역할을 해냈습니다.

영화 어벤져스 출연 배우 내한 당시 통역

스스로를 "통역사로 치면 난 잘하는 통역사가 아니다"라고 밝힌 안현모는 통역사이면서도 기자 출신으로 방송 경험이 많은 덕분에 청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습관이 자신의 경쟁력이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북미 정상회담 생중계 당시에도 이 같은 점이 장점으로 작용해 정확한 통역과 더불어 매끄러운 진행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동시통역사가 되는 길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홈페이지

안현모의 경우에는 다소 특이한 경로를 통해 동시통역사로서 일을 시작했지만 일반적으로 동시통역사가 되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통번역대학원 과정 중 국제회의통역/통번역전공을 선택해서 2년간 교과과정을 수료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인데, 현재 국내에서 통역번역대학원이 개설된 곳은 한국외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중앙대, 서울외대 등입니다.

tvN 문제적남자

특히 대학원 재학 당시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뿐만 아니라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실제 동시통역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차적 통역이 아니라 연사라 말하고 있는 동시에 청중에게 뜻을 전달해야 하는 만큼 언어적인 능력과 더불어 통역을 이어가는 4분이라는 시간 동안 논리적 플로우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중요합니다.

tvN 문제적남자

때문에 통역번역대학원에서는 숫자를 거꾸로 세는 연상법을 통해 멀티태스킹 연습을 하거나 단어를 기호로 적어 빠르게 번역하는 훈련도 한다고 하는데요. 이외에도 0.1초 간격으로 상대방의 말을 똑같이 따라 하는 섀도잉 연습도 동시통역을 위한 기본적인 훈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채널A

통역을 위해 외국어 능력은 당연히 기본이 되는 필수요건입니다. 다만 이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이 바로 모국어 실력. 이는 보다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청중들에게 매끄럽게 통역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인데, 더불어 전문 분야의 통역일 경우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지식과 분석력 또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현직에서 일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동시통역사들의 경우 해외 유학이 필수가 아니며 무엇보다 모국어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훈련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하네요.

에바알머슨 전시회 통역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 실제 동시통역사로 근무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상시적인 동시통역 프리랜서를 두는 경우도 있어 계약직 프리랜서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

한편 완전한 프리랜서와 계약직 프리랜서는 일정 조정이 얼마나 자유로운가의 차이만 있을 뿐 보수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동시통역사의 보수는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직종들의 보수와 비슷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국내 의사, 변호사의 평균 연봉이 대체로 1억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니 동시통역사도 그에 버금가는 높은 연봉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지도 있는 유명 통역사의 경우 연봉이 2억 가까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경력이 적은 경우에는 2,000~3,000만 원 선이기도 해 그 편차가 매우 크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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