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집안 차이나는 결혼은 하면 안 된다'라고 합니다. 양가의 형편 차이 때문에 결혼 후 경제적 문제로 갈등을 겪을 수도 있고, 앞서 살아온 배경이나 환경이 너무 달라서 결혼생활에 중 성격차이로 힘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약 값을 구하지 못해서 일찍 어머니를 여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온 남자와 연 매출 300억 원의 기업을 운영하는 회장님의 딸로 살아온 여자는 5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결혼 5년 차가 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어떨까요?
인슐린 값 없어서 어머니 떠나보낸 아들
정 반대의 환경에서 자라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었다는 주인공은 김태희와 비 부부입니다. 성실하다 못해 '독하다'는 말까지 들으며 자수성가형 연예인 1순위로 꼽히는 비는 초심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돈이 없어서 장례식도 못 치렀고 돈이 없어서 동생 밥도 못 먹여 봤다. 그래서 지금의 고난은 고난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비는 중3 무렵 IMF로 가세가 급격히 기운 데다 어머니가 당뇨 합병증까지 앓으면서 힘든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안양 예고 진학 직후인 1998년 6인조 아이돌 그룹 '팬클럽'의 멤버로 데뷔한 비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사업차 브라질로 떠난 아버지 대신 집안 가장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그룹 '팬클럽'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2000년 자연스럽게 해체했고 비는 가수 활동 대신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어머니 약 값을 벌었습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박진영에게 발탁되면서 JYP 연습생이 되었지만 솔로로 데뷔하기 전, 어머니의 병세를 급격히 악화되었지요.
결국 2000년 12월 비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슐린을 살 돈만 있었어도, 조금 더 빨리 치료를 받았더라면 허망하게 떠나지 않았을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비는 절망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집에 불이 나서 어머니 유품까지 소실되었는데, 불에 타고 남은 가구들을 정리하던 중 비는 어머니가 남긴 통장과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비의 어머니가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남겨질 자식들을 위해 진통제 살 돈을 아껴 고통을 견뎌가며 돈을 모아두신 것.
이에 대해 비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보름 전 온몸이 붓고 상처가 곪고 썩어 아팠을 텐데도 노점상을 하셨다. 주사기 꽂을 곳이 없어 목에 주삿바늘을 8개나 꽂았다. 나의 그 어떤 고통도 그때 어머니가 받았던 고통보다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가난과 고통을 발판으로 독하게 준비한 비는 2002년 솔로 가수로 가요계에 해 데뷔했고,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월드 스타의 대열에 올랐습니다.
연 매출 300억 기업의 회장님 딸
가난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힘겹게 살아온 비와 달리 김태희는 그야말로 금수저 집안의 엄친딸입니다. 김태희의 아버지는 물류업체 한국통운의 김유문 회장인데요. 김유문 회장은 20대 초반 무일푼으로 울산에 정착해 1984년 '한국통운'을 설립했고 현재까지 경영자의 자리에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016년 김유문 회장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면서 알려졌습니다. 공개 당시 김유문 회장이 운영 중인 한국통운의 연 매출이 300억 원 수준이라고 전해져 큰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다만 2019년 기준 한국통운의 연 매출은 156억 원인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한국통운 이외에도 2005년 설립한 코리아 엠티피의 운영 역시 김유문 회장이 맡고 있습니다.
남다른 집안 배경 덕분에 김태희의 학창시절은 유복했습니다. 더불어 김태희는 중학교 3학년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수재였습니다. 게다가 현재의 꽃미모가 이미 중학교 시절 완성되었던 덕분에 김태희가 다니던 학원 자습실은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든 남학생들로 주말까지 꽉 찰 정도였습니다. 미모와 성적, 집안 환경까지 완벽했던 김태희는 늘 주목받고 사랑받는 학창시절을 보냈겠지요.
다만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이전부터 15년 넘게 서울산봉사회 소속으로 결식아동과 홀로 지내는 어르신을 지원하고 기부와 사회 공헌 활동에 주력한 김유문 회장의 가치관과 교육관 덕분에 김태희 역시 봉사와 배려를 익혔습니다.
종교도 막지 못한 사랑
비 역시 김태희의 배려심에 반했다고 고백했는데요. 2011년 한 소셜커머스의 광고모델로 처음 만난 당시를 회상하면서 비는 "둘이 같이 광고를 찍었는데, 당연히 너무 예뻤다"면서 "태도부터가 스태프를 위주로 너무 배려하고 있었다. 도시락도 먼저 갖다주고, 그런 모습이 저에게는 새롭게 다가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는데,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라고 덧붙였지요.
2013년 공개열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약 5년간의 열애 끝에 2017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결혼 당시 비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김태희를 따라 개종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집안 배경과 종교 모두 걸림돌이 되지 못한 셈.
814억 원 부동산 자산가 부부
두 딸의 부모이자 5년 차 부부가 된 두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로서 함께 인생을 설계해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비는 한 예능 프로에 출연해 아내인 김태희가 말이 많다고 지적하느냐라는 질문에 "지적을 많이 한다"면서 "제가 이렇게 말이 많은 줄 몰랐다. 결혼하고부터 소통이라는 걸 좀 더 배운 것 같다"라고 답했습니다.
반면 투자 부분에 있어서는 남편인 비가 김태희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앞서 2006년 단독주택경매를 통해 31억 7천만 원에 낙찰받은 삼성동 주택을 2014년 75억 원에 처분하여 44억 원의 차익을 얻은 비는 2016년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고급 단독주택을 50억 원대에 구입해서 신혼집으로 마련했습니다.
또 2008년 청담동의 두 필지를 약 168억 5천만 원에 매입한 비는 해당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6층 규모의 레인에비뉴를 신축했습니다. 해당 건물은 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2020한국건충문화대상의 민간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비에 비해 부동산 투자와 관심이 없던 김태희는 결혼 전 본인이 거주 중이던 빌라 한 채만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 펜트하우스인 김태희의 빌라는 시세가 약 95억 원. 그리고 비와 교제하면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진 김태희는 2014년 강남구 테헤란로 인근 강남역 3번 출구에서 도보 2~3분 거리에 있는 역세권 건물을 매입했습니다. 지하 3층, 지상 6층, 옥탑 3층 규모인 해당 건물은 2020년 기준 시세 185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의 부동산 사랑을 이어졌습니다. 2018년 8월 각각 한남동에 있는 '한남더힐'을 매입했는데, 김태희는 70평 규모 4층을 42억 3천만 원에 매입했고 비는 다른 동에 있는 8층에 전세권 설정을 했습니다. 해당 빌라에는 양가 부모님이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또 2019년에는 김태희가 미국 어바인에 있는 타운하우스는 약 24억 원에 구입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어바인은 미국 캘리포니아 인근에 있는 신도시로 고급 타운하우스가 몰려 있는 부자동네인데요. 오연수손지창 부부, 신애라차인표 부부가 자녀교육 문제로 이주를 한 지역이기도 해서 김태희 역시 자녀교육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제기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현재 보유한 부동산 자산가치만 모두 합해도 814억 원. 더 이상 과거 집안 형편이나 환경 차이를 거론할 만한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