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건희 회장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이것'

지난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달 25일 별세했습니다. 우리나라 재계의 상징이자 '한국 최고 부자'인 이건희 회장의 장례식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회장님 역시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허무하기도 합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이 돈으로 살 수 없었던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자식들의 결혼생활이지요. 정략결혼에 실패한 장남부터 5년간 이혼 분쟁으로 힘들었던 둘째 딸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막내딸까지, 굴곡 많았던 삼성가 자제들의 결혼사는 故 이건희 회장이 눈 감기 전 가장 마음에 쓰인 부분이 아닐까요?


정략결혼 실패

장남 이재용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후계자답게 정략결혼을 택했습니다. 이재용은 지난 1998년 대상그룹 맏딸 임세령과 결혼했는데요.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은 당시 조미료 시장의 대장으로, 앞서 삼성그룹의 식품계열사 미풍을 이겨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이 "한 번이라도 미원을 이겨보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이재용과 임세령의 결혼을 두고 소위 경쟁사 간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이 아니냐는 비유가 나오기도 했지요.

다만 실제 두 사람의 만남은 로맨틱한 러브스토리 없이 양가 어머님의 소개로 만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당시 30살이던 이재용은 하버드 경영학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었고 21살 임세령은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지요. 두 사람은 교제 1년 만에 약혼식을 올리고 뒤이어 5개월 만에 결혼식까지 진행하면서 초고속으로 결혼에 골인했는데요. 임세령이 학업까지 중단하며 이른 나이에 급박하게 결혼한 것을 두고 삼성 측에서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전라도 출신 기업 대상그룹과 혼인을 맺었다는 추측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결혼 이후 연세대를 자퇴한 임세령은 남편을 따라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이건희 전 회장이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을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으며 귀국 후에도 대외활동을 삼가고 남편 내조와 육아에만 전념했습니다. 다만 남편 이재용과의 사이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2008년 봄부터 프랑스에 장기체류하며 별거에 들어간 임세령은 결혼 11년 만인 지난 2009년 2월 이혼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는데요. 당시 구체적인 이혼사유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임세령의 어머니가 한 매체를 통해 "오죽하면 아이 낳고 10년 넘게 살던 주부가 이혼을 결심했겠냐"라며 사위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지요.

더불어 임세령 측이 위자료 10억 원과 5천억 원대의 재산분할을 함께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이혼 사유가 이재용 측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쪽으로 힘이 실렸습니다. 장남의 이혼소송 소식에 충격을 받았던지 이건희 회장은 소송사실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입원했습니다. 그리고 삼성 측에서 속도를 낸 덕분에 소송은 접수된 지 단 일주일 만에 양측이 합의를 이루면서 조용히 막을 내렸는데요.

자녀에 대한 친권은 이재용이 갖되 양육권은 별도 합의하에 번갈아 갖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부부로서 인연은 다했으나 부모로서의 역할은 함께 하고있습니다. 아들의 학예회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서 재회한 모습이 포착되어 눈길을 끌기도 했지요. 한편 임세령은 이혼 후 보다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는데요. 친정인 대상그룹의 상무를 거쳐 현재는 전무의 직책을 맡고 있는 데다 배우 이정재와 2015년부터 공개 연애를 이어오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경호원과 사랑에 빠졌지만
장녀 이부진

이건희 회장 딸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역시 최근 5년 3개월간의 긴 이혼 분쟁 끝에 결혼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부진 사장과 임우재 전 고문은 지난 1999년 8월 재벌가 자녀와 평사원의 만남으로 이슈를 모으며 결혼에 골인했는데요. 당시 삼성 측은 임우재가 삼성물산 전산실에 근무하면서 봉사활동을 하다 이부진과 만났다고 설명했지만 이혼 후 임우재의 인터뷰에 따르면 임우재는 이부진의 경호원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경호원으로 일하다 이부진 사장 경호를 맡게 되었고, 이부진이 몸이 약해 경호원인 임우재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 것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 이건희 회장이 유난히 애틋하게 생각했던 딸 이부진은 정략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을 선택했고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이를 허락한 셈인데요. 임우재 역시 워낙 집안 차이가 크다 보니 결혼은 자신이 없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직접 제안해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결혼 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임우재는 삼성전자 미주본사 전략팀을 거쳐 2005년 삼성전기 상무보로, 2009년에는 전무, 2011년 부사장까지 빠르게 승진했는데요. 이렇듯 삼성가의 일원으로 자리 잡는 듯했으나 2014년 10월 이부진이 돌연 이혼조정과 친권자 지정 신청을 법원에 내면서 파경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 차례 조정이 합의에 이르지 못해 결국 소송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이혼 분쟁은 5년간 이어졌고 그 사이 임우재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생지옥 같았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억울함을 호소했지요.

임우재는 자신의 부모님이 친손자를 만날 수 없었으며 자신도 소송 중에 아들과 제대로 전화통화도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고, 항소를 통해 이부진의 전체 재산이 2조 5천억 원대 규모라고 주장하며 절반가량인 1조 2천억 원대의 재산분할을 요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송 중 장자연 씨 사건을 재조사하는 대검찰청 진상 조사단에서 장 씨 휴대전화의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를 내놓으면서 임우재의 결혼생활에 새로운 의문점이 제기되었는데요.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당 자료에서 지난 2008년 '임우재'라는 이름의 통화내역을 확인했고, 명의자를 조사한 결과 당시 임우재의 부인이었던 이부진 사장 명의였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고 장자연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임우재'라는 인물은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이 맞는 것으로 알려졌지요. 다만 이 같은 통화내역이 35차례나 존재하는데도 당시 경찰과 검찰이 임우재를 단 한차례도 조사하지 않은 배경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임우재 측은 모임을 통해 만나 고 장자연과 본 적은 있지만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혼 분쟁 시작 5년 3개월 만인 2020년 1월 대법원이 이부진 측이 낸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길었던 싸움이 끝났습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이혼하고 재산분할을 위해 임 전 고문에게 141억여 원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는데요. 더불어 자녀의 친권 및 양육권은 1심과 같이 이 사장에게 주되, 임 전 고문의 자녀 면접 교섭 기회를 월 1회에서 2회로 늘렸지요. 1조 원이 넘는 재산 분할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임우재 측은 사실상 패소한 것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2심 결과에 대해 이부진 측은 "예상한 결과"라며 "제일 중요한 이혼 및 친권, 양육에 대한 판결은 1심과 동일하게 나왔다"라고 재판부에 감사를 표한 반면 임우재 측은 판결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남자친구와 결혼 반대 부딪쳐
막내딸 故 이윤형

귀하게 여기던 첫딸 이부진의 연애결혼을 허락했으나 그다지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해서였을까요? 이건희 회장은 막내딸 이윤형의 연애결혼을 극구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삼성가의 막내 이윤형은 어린 시절부터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린 이부진, 이서현 두 언니와 달리 활달한 성격으로 아버지 이건희와 오빠 이재용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막내인데요.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유행하던 시절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뿌니 윤형이네~"라는 제목으로 일상을 공개하는 파격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당시 이윤형은 미니홈피를 통해 "가족들이랑 외식하고 영화보고"라든가 "아빠가 이제 헬멧 안 쓰면 스키 못 탄다고 해서 아기처럼 헬멧 쓰고 타고 있어요"등 소소한 일상을 공개했고, 해당 미니홈피는 이건희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루 방문자 수만 3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요.

이후 이윤형은 2005년 어머니 홍라희 여사가 진행 중이던 리움과 호암미술관 등 삼성 미술관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미술 관련 공부를 하러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뉴욕대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할 것으로 알려졌지요. 하지만 유학을 떠난 이윤형은 같은 해 11월 18일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으로 충격을 주었는데요.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라고 보도했지만 이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6살 꽃다운 나이에 유학을 떠난 재벌가 막내딸의 죽음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고 그중 가장 무게가 실린 것은 결혼을 둘러싼 부모님과의 갈등설이었습니다. 당시 이윤형은 교제 중에 있던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자 괴로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실제로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이윤형이 숨져있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남자친구였다고 보도했고 더 타임스와 가디언 등 영국 주요 신문들은 "사랑을 잃은 그녀가 외로운 자살을 택했다"라고 대서특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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