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전공에 따라 직업을 갖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학창시절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한 채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다가 뒤늦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했지만 치열한 취업전선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전공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요. 특히 평생직업이 없다는 요즘 전공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투잡러들의 모습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취미를 넘어 업계의 인정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편견과 텃세에 맞서 당당히 국내 최대 아틀리에 입주작가가 되었다는 아티스트가 화제입니다.
불과 3년여 전만 하더라도 미술전공자에게 "그림 왜 그려요? 전공생들이 싫어해요"라며 공개 저격을 당했다는 주인공은 권지안 작가입니다. 대중들에게는 가수 겸 방송인 솔비로 더 유명한 그는 혼성그룹 '타이푼'의 메인보컬로 데뷔한 이후 2008년부터 솔로가수로 활동해 온 베테랑 연예인인데요. 특히 각종 예능프로를 통해 친근하면서도 발랄한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만 친숙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예능 캐릭터로 인해 솔직하고 진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게다가 지난 2010년에는 일명 '솔비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정신적인 충격을 입었습니다. 사실 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솔비가 아닌 솔비를 닮은 인물이었고 돈벌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러한 영상을 제작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2011년 영상 제작자들이 체포되었지만 솔비는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이후였지요.
이로 인해 솔비는 우울증을 겪었고 1년 반가량 치료를 받았습니다. 심리치료를 받으면서도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 정도였는데, 당시 의사는 예능 캐릭터와 달리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집중력이 높은 솔비에게 '미술'을 배워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이에 솔비는 심리적 안정을 찾고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방송에서는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면서 평정심을 찾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솔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라며 그림을 통한 치유의 기쁨을 고백했는데요. "그림은 누군가에게 답을 듣지 않아도 그림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라며 "그림은 나에게 있어서 친구를 만난 느낌"이라고 미술활동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더불어 솔비는 자신이 그림을 통해 치유한 만큼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에도 공감하고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을 기부하고 자선 전시회를 진행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 2014년 대한민국 사회 공헌대상 재능기부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요.
다만 당시만 하더라도 솔비의 미술활동에 대한 시선은 따뜻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예능을 통해 작가로서 활동 중인 근황을 전하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고, 2017년 5월 KBS 뮤직뱅크를 통해 공개한 페인팅 퍼포먼스 '레드' 역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는데요. 이후에도 솔비는 해당 작품의 전시공간에 작업 과정 영상과 솔비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함께 상영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이어나갔습니다.
가수 솔비와 작가 권지안의 셀프콜라보레이션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를 이어온 권지안의 작품은 점차 미술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8월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미술 경매시장인 서울옥션에서 솔비의 작품 '메이즈'가 13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는데요. 해당 작품은 무려 15번의 경합 끝에 애초 추정가 600~1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은 가격에 낙찰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평론가들은 해당 작품에 대해 "솔비는 가수라는 자신의 본래 직업과 삶을 미술과 결합시킨 형태로 작품 활동을 펼친다. 다른 아트테이너와 확실히 차별되는 지점이다. 기존 작가들이 모방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면서 "새로움이라는 작품의 생명력은 작가의 아이덴티티가 열정적으로 드러날 때 집중하게 되는데, 솔비 안에 내재돼있는 강렬한 에너지가 드러날 뿐 아니라 지극히 독립적인 미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무척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실제로 솔비의 '셀프콜라보레이션' 시리즈의 작품들은 최대 2천만 원에 판매되며 미술계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솔비는 작가로서 보다 인정받아 지난 2월에는 국회에서 열린 '위안부의 날' 기념 특별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고, 2019 퍼스트브랜드 대상에서 아트테이너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주최하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 축제 '뉘 블랑쉬 파리 2019'에 유일한 대한민국 작가로 선정되며 퍼포먼스 페인팅을 펼치기도 했지요.
그리고 올해 초 솔비는 국내 최대 아틀리에인 장흥 가나 아틀리에 입주작가로 선정되면서 명실상부 국내 대표적인 미술작가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어 9월 초에는 서울옥션 온라인 경매에 기존 '셀프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새로운 '핑거페인팅' 시리즈의 작품 '팔레트정원'을 내놓았는데, 해당 작품은 총 66회 경합 끝에 920만 원에 낙찰되면서 서울옥션 특별 경매 낙찰가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솔비는 최근 한 예능프로에 출연해 자신의 작품을 산 사람들을 위해 방송에서 웃긴 이미지만 보여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작품을 산 사람은 '작가의 인생'을 산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요.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을 찾아 시작한 미술활동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긍정적 영향력을 주는 일이 된 만큼 그 책임감도 커진 것이겠지요.
한편 지난 8월 솔비의 소속사 대표의 SNS의 글을 통해 기안84로 특정되는 인물을 지목하면서 "2016년 12월 KBS 예능 방송 녹화 중 솔비에게 대놓고 퉁명스럽다 못해 안 좋은 표정으로 '그림 왜 그려요? 전공생들이 싫어해요'라고 말하며 무안줬던 사람이 최근 발표한 웹툰(여성 혐오 비판을 받은 '복학왕')을 보니 그 내용이 정말 역겹고 충격"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