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설립된 고추장 업체 '삼원상회'는 2000년 사명을 해찬들로 바꾸고 그로부터 한 달 후 CJ에 흡수합병되었습니다. 1972년 요리연구가 하선정이 특허를 획득한 이후 1979년 젓갈과 액젓, 김치 등을 제조하는 회사로 설립된 하선정종합식품 역시 2006년 CJ에 의해 인수되었지요.
대기업이 뛰어들어 큰 비용을 투자하는 식품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수많은 중소, 중견기업들이 제품 경쟁력을 잃고 조용히 사라지거나 대기업에 흡수합병되기도 하지요. 게다가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에만 집중하다 보면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투자나 기업문화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데요. 대기업 못지않은 연구개발(R&D) 투자로 조금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견기업이 눈길을 끕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던 간장
전쟁통에 사 먹기 시작
매출의 4~5%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는 주인공은 바로 샘표식품입니다. 전통 발효식품 제조를 기반으로 성장한 샘표식품은 6.25 전쟁 통에 장을 담가 먹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간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삼시장유양조장'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장을 직접 담그지 않고 사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요. 전쟁 상황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장류의 제조 판매가 각광받게 되었고 수많은 업체가 장 판매에 나섰습니다.
경쟁업체가 많아진 상황에서 샘표는 제품의 질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시중에 판매 중인 조악한 품질의 제품들과 차별화를 두고 고급간장을 만들어 공급했고 1954년 샘표 상품을 특허출원하면서 본격 사업에 나섰지요. 사업체를 정비한 후 샘표가 처음 한 일은 공장과 연구실 시설을 완비한 것입니다. 국내 사기업으로서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발효 연구실을 만들었고 덕분에 1960년대 식품위생법이 제정되자마자 간장의 성분을 규격화할 수 있었습니다.
1971년 종합식품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샘표장유양조장에서 '샘표식품공업주식회사'로 회사의 형태를 변경한 이후에도 샘표는 제품의 품질을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제조된 불량식품이 넘쳐나던 당시에 샘표는 파격적으로 '공장견학'까지 진행하면서 제조공정에 투명성을 높였고, 덕분에 90년대 들어 간장을 기호와 용도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하는 변화에도 빠르게 발맞출 수 있었지요.
"미쳤냐" 소리 들었다
특히 1997년 취임한 박진선 대표이사는 R&D 중심의 기업이 되고자 하는 창업정신을 확고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박 대표 취임 당시 매출 600억 원 수준의 샘표는 직원 200명 가운데 90%가 생산직이었습니다. 이에 박 대표는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아무거나 만들어 팔면 팔렸지만 이제는 1등만 살아남는다"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때문에 현재는 전체 직원 700여 명 중 생산직은 200명가량, 나머지는 모두 마케팅과 연구원이 차지할 정도로 연구개발에 비중을 높였습니다.
그 결과 2001년 세계 최초로 콩만을 발효해 전통 한식간장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기존 양조간장은 콩과 소맥을 원료로 하는데 반해 한식간장은 콩만을 발효하는 신기술이 적용되었지요. 그리고 2012년에는 요리에센스 '연두'가 나왔습니다. 다시다와 각종 천연조미료가 양분하고 있던 조미료 시장에 순수 발효액이라는 새로운 제품군으로 등장한 연두는 출시 5년 만에 180억 원 매출을 달성했고 2017년 연말부터는 미국 등 해외에 진출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합니다.
또 박 대표는 2013년에는 충북 오송에 연구소 '샘표 우리발효연구중심'을 세웠습니다. 당시 매출 2000억 짜리 간장회사가 300억 원을 들여 연구소를 짓는 일에 모두들 "미쳤다"라고 말렸지만 박 사장은 통합연구소 없이는 발전이 없을 거라고 판단해 밀어붙였고 샘표는 이윤추구를 목표로 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발효과학 연구소'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다만 당장의 이익보다 제대로 된 제품 개발에 중심을 두다 보니 신제품 출시가 더딘 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실적을 내놓으라고 닦달하면 '미투제품'밖에 안 나온다"라며 "'샘표만의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만큼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입사하고 10년 만에 첫 결과물을 내놓는 연구원도 있을 정도다"라고 밝혔습니다.
일용직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
"입사 10년 만에 첫 결과물을 내도 괜찮다"라니, 직원들에게 이만큼 관대한 대표가 또 있을까요?
노사분규가 없기로 유명한 샘표의 기업문화는 이미 창립자 때부터 3대에 거쳐 이어져 온 것입니다. 1950년대 샘표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간장업체들 사이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간장 맛을 보여주기 위해 주부사원을 고용해 집집마다 찾아가는 1대1 마케팅을 펼쳤는데요. 기혼 여성이 직장을 다니는 것이 흔치 않던 시절 파격적인 채용이었고 주부사원들 덕분에 샘표간장은 업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 1970년대 맥주 용기를 재활용해 간장병으로 썼던 시절, 일용직 아주머니들이 맥주병을 세척하던 것이 산업지원금을 받아 유리병 자동 세척기를 들이면서 오랜 시간 함께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모두 잘릴 위기에 처했는데요. 이때 창립자인 故 박규회 회장은 자동 세척기 기계가 들어오기 전 날 일용직 아주머니 모두를 정규직 사원으로 발령냈습니다.
구조조정 0회의 위엄
창업자의 정신은 대를 이어내려가 아들인 박승복 회장은 직원보다 먼저 나서서 노조를 설립하게 했고, 손자인 박진선 대표는 직원 수의 10%를 매년 공채로 신규채용하는 파격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의 경우에도 전체 임직원수를 기준으로 매년 5% 미만의 인원을 공채선발하는 것에 반해 굉장히 높은 비율인데요.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직원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라며 "매출에 비해 직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큰 그림을 그리며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직원들에게 '주 40시간 이상 절대로 일을 시키지 말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박 대표로서는 "근로시간을 줄이려면 일하는 사람을 늘리는 수 밖에 없다"라는 게 이유이기도 하지요.
근로복지가 수준이 높은 만큼 샘표의 공채 경쟁률은 높습니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 지원자들이 거쳐야 할 면접의 수준도 만만치 않지요. 특히 샘표의 젓가락면접과 요리면접은 이미 취준생들 사이 꽤 유명한 방식인데요.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뤄 요리하는 과정을 통해 지원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샘표가 원하는 인재상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덕분에 샘표는 토익점수나 성적, 전공보다 능력을 중심으로 한 채용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샘표의 공채를 통해 선발된 신입사원 중에는 기혼여성도 있고 34살의 신입사원도 있지요. 임신부 역시 면접을 볼 수 있다는 샘표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인원은 잘릴 걱정도 없습니다. 창업 후 단 한 번도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없었기 때문인데요.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구조조정은 기업가의 경영능력 부족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천상 기업인으로 보이는 박진선 대표는 사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후 스탠퍼드대학 전자공학 석사와 오하이오주립대학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공학도 출신입니다. 재미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박사전공을 철학으로 바꾸었다는 그는 미국에서 철학 강의를 하던 중 부친의 권유를 받고 가업을 이어받은 것인데요.
창업자인 할아버지가 "내 가족이 먹을 수 없는 건 만들지 않는다"라고 외치던 경영신조를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는 박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게 우리 회사의 목표는 아니지만 우리가 잘 할 수 일을 찾아 정말 잘하면 이익도 많이 날 것"이라고 외칩니다. 일을 잘하고 회사 구성원들이 행복하다면 자연스럽게 회사도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 박 대표는 직원들이 행복해지려면 회사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에 비해 다소 더디다는 소리를 듣는 샘표는 사실 트렌드를 쫓기보다 자신만의 트렌드를 만들어 모두가 따라오게끔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취임 후 20년 넘게 한식과 전통 장류의 세계화에 매달리고 있다는 박 대표가 해외진출에 공을 들인 만큼 곧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