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아요. 판돈 떨어졌다고 가볍게 손 털고 나올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고요. 내 인생, 내 자식의 인생까지 걸려있는 절박한 문제에요"
-드라마 '부부의세계' 1회 김희애 대사 中
결혼이 연애와 다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연애는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진다면 결혼은 두 사람의 인연으로 인해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새로운 가족관계로 묶이게 되지요. 그리고 자녀가 태어난 이후에는 본인들 스스로 부모가 되는 동시에 내 자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 삼촌 등 완전히 새로운 가족관계가 형성됩니다.
이혼 역시 단순히 부부 두 사람이 결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의 인연으로 인해 맺었던 모든 관계가 무너지는 '가족해체'입니다. 어쩌면 부부사이 갈등과는 상관없는 소중한 인연과 이별해야 하는 것 역시 이혼의 큰 아픔 가운데 하나인데요. 이혼한지 10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남아있다는 말 역시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이혼 전 시어머니가 철 따라 해주시던 제철음식이 그립다는 싱글맘 10년 차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박현정입니다. 2011년 이혼한 이후 오랜만에 싱글맘으로서의 일상을 담담하게 고백해 화제가 되고 있지요.
1993년 드라마 '사랑 그리고 이별'을 통해 데뷔한 박현정은 1995년에 KBS 슈퍼탤런트 1기로 선발되면서 본격 연기 활동에 나섰습니다. 당시 박현정은 보이시하면서도 청아한 매력으로 주목받았고 1997~98년 사이에만 10편 이상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입지를 다졌습니다. 하지만 막 신인을 벗어나려던 1998년 24살 나이에 결혼하면서 연기 활동을 쉬어갈 수밖에 없었지요.
떠오르는 신인배우 박현정과 결혼에 골인한 이는 KBS 대학개그제에서 김용만과 콤비로 대상을 수상한 개그맨 양원경입니다. 동기인 김국진, 유재석, 남희석, 박수홍 등과 함께 90년대 주목받는 신인 개그맨 중 하나였지요.
양원경은 2009년에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박현정과 결혼에 골인한 계기를 상세히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양원경은 "어느 날 서세원 선배랑 우연히 셋이 만나게 됐는데, 선배가 정말 괜찮다면서 '곧 뜰 것 같은데 뜨고 나면 너 같은 놈 안 만나줄 거니까 지금 얼른 잡아야 한다'라고 부추기더라"라며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친한 기자한테 무진장 로비를 해서 스캔들 기사를 냈다"라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스캔들이 보도된 이후 박현정은 주연을 맡기로 한 드라마에서 강제 하차했고 여배우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낙담해 고향인 충주로 내려가려고 하던 때에 양원경이 "내가 돈 벌어줄 테니까 같이 살자"라고 한 것이 프러포즈가 되었지요.
다소 과격한 방식이었지만 이후 결혼생활만 순탄했더라도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로 회자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양원경은 결혼 시기 즈음 부적절한 언행과 태도로 인해 방송 출연 정지를 받아 연예계 활동에 어려움이 생겼고 그 대신 시작했던 사업 역시 연이어 실패하면서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게다가 힘든 시기에 곁은 지켜준 아내 박현정에게도 다정한 남편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2009년부터 부부 동반으로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의 성격차이와 갈등은 여실히 드러났는데, 당시 양원경은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임을 강조하면서 전형적인 가부장적 태도로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비판받았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박현정은 "세 달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 돈이 없다길래 없는 줄 믿고 있었는데 나중에 지갑을 보니 현금이 꽉 차 있었고 통장에는 몇 달 전부터 돈이 들어와 있더라"라며 서운한 마음을 털어놨고 이에 양원경은 "남의 지갑을 왜 훔쳐보느냐. 남자의 자존심을 짓밟았다"라며 "내가 번 돈을 왜 아내한테 생활비로 줘야 하느냐"라고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또 주식으로 3천만 원을 날린 후에도 내역을 보자는 아내의 말에 "절대 안 된다"라며 다시 한번 '남자의 자존심'을 들먹여 논란을 일으켰는데요. 박현정은 "남편이 나아게 '너한테 질린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난 네가 불편해'라고 부부 싸움 때 막말을 한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갈등이 심해지자 두 사람은 해당 방송에서 '부부캠프'라는 코너를 통해 부부 사이 갈등을 해결하려는 솔루션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박현정은 부부관계를 먼저 대시했다가 거절당해 비참했던 기분을 고백했고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 이 사람한테 나는 뭔가, 나는 그냥 밥해주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양원경은 사실을 인정하며 "내 말을 안 듣거나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안 해주면 밉다. 부인이지만, 한 번 싫으면 정말 싫은 거다"라고 철없는 답변을 내놓았지요.
이어 양원경은 "나도 답답하고 억울할 때가 있다"라고 항변했고 이에 박현정은 "자기는 항상 억울하고 '자기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네가 바뀌지 않으면 네가 나가라'라고 말한다"라며 다소 격한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13년 동안 부딪히고 살아온 결과 이 사람은 가정을 이뤄서는 안 될 사람이다"라는 말을 덧붙였는데요. 해당 방송의 말미에 양원경은 "아버지의 보수적이고 완고했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았고 두 사람은 화해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이뤄서는 안될 사람이다"라는 박현정의 말이 사실이었던 걸까요? 두 사람은 솔루션을 받은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법원에 협의이혼 서류를 제출했습니다. 당시 양원경은 부부 싸움 중 홧김에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이지 실제가 아니라며 숙려 기간 중 화해를 시도했는데요. 양원경의 생각과 달리 아내 박현정은 그동안 쌓인 상처와 서운한 마음이 너무 커서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결국 두 딸과 함께 싱글맘이 되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부부동반 예능 프로에 출연하던 연예인 부부가 이혼을 했으니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루머와 악플 역시 번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연기 활동을 활발히 하기 어려웠던 박현정은 집 근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지요. 이후 2015년 연극 무대에 복귀하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박현정은 아이들이 아빠를 자주 만난다면서 "애들 아빠잖아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꾸준히 만나고 있어요. 그런 거 보면 참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이혼하고 자기 자식 안 챙기는 아빠도 많은데 그 책임감이 고맙다는 박현정은 전 남편이 건강하고 하는 일도 잘 풀리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그리고 2017년 아침드라마 '꽃피어라달순아'를 통해 본격 TV 드라마로 연기 활동을 재개한 박현정은 이후 각종 드라마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인의 꼬리표를 떼자마자 결혼과 출산으로 못다 한 연기 활동에 드디어 시동을 건 것이지요.
또 최근에는 예능 프로에 출연해 배우 박현정의 개인적 일상을 자연스럽게 공개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된 두 딸의 응원 덕분에 용기를 내서 예능에 등판했다는 박현정은 이혼 이후 겪었던 생활고와 우울증, 공황장애 등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했는데요. 절친인 이태란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시어머니가 철마다 해주시는 음식이 있었다. 나는 그게 그립다. 음식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보고 싶다"라며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이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차마 문상을 못 갔는데 오빠가 도와줘 갈 수 있었다"라며 "그때 시어머니는 날 보고 사과하셨고 많이 우셨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둘째 딸이 직접 출연해 "엄마가 매번 ‘아빠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니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라며 "우리를 신경 쓰느라 하고 싶은 걸 못 했을 텐데, 이젠 즐기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 만이 아는 것이겠지만 두 딸을 데리고 이혼을 결심할 정도로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딸의 아빠로서 전 남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싱글맘의 지혜가 느껴집니다. 결혼과 육아로 미뤄두었던 연기 활동에 박차를 가해 제1의 전성기를 마음껏 누리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