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이 바닥을 쳤다지만 초중등 교사에 대한 직업적 선망은 여전합니다. 일반 기업에 비해 상사 눈치 볼 일이 덜하고 방학 기간 동안 긴 휴가를 즐기는 데다 공무원연금의 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지요. 때문에 초중등교사가 되기 위한 교대나 사범대의 입시경쟁률은 매우 센 편인데요. 그 어렵다는 사범대 입학에 성공했지만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위해 새벽 4시 퇴근을 불사한다는 청년 CEO를 만나볼까요?
안정적인 직업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오늘의 주인공은 사회적기업 업드림코리아의 대표 이지웅입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윈드서핑 선수로 운동밖에 몰랐던 이지웅 대표는 교사인 어머니의 권유로 들어간 사범대가 적성에 맞지 않아 뒤늦은 방황을 시작했는데요. 사범대생이라면 1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임용고시 준비를 제쳐두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흥청망청 쓰며 오토바이를 타는 게 낙이었지요.
▷ 체육교육과 전공이라고 들었다. 교사를 꿈꿨나
▶ 사실 대학 입시 당시에는 교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사인 어머니 추천으로 사범대에 입학했다.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교생실습을 하다 보니까 교사는 아이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하는 사명이 필요한 직업인데 그저 직업상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깨달았다. 나 역시 맞지 않는 길인 것 같아 대학에 오면서 교사의 꿈을 버린 셈이다.
▷ 사범대 출신인데 안정적인 교육공무원을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
▶ 대학교 4학년 때 큰 사고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적이 있다. 3개월 정도 병원에 있을 정도로 큰 사고였는데 막상 그렇게 사고를 당하니까 '안정적인 직업'만 쫓아서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준비하느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1년간 30개국 배낭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에펠탑 앞에서 바게트를 먹겠다는 소박한 로망을 위해 떠났는데 인도 등 개발도상국에서 오물을 주워 먹으며 지내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귀국하자마자 여행 에세이 '두렵다 그래도 나는 간다'를 출간해 인세 전부를 캄보디아 집 짓는데 기부했지만 지속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해병대 전역 후 군 시절 모은 월급과 대출, 정부 지원 사업까지 합쳐서 소셜벤처 딜럽을 시작하게 되었다.
▷ 사업 초기에는 월 매출이 200만원이 채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고
▶ 인지도가 낮고 유통망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단가가 높은 의류를 생산하다 보니 무리였다. 2018년 11월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정도였다. 아침에는 우유랑 신문을 같이 돌리거나, 수영강사를 하기도 하고 대리운전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도 정말 많이 하면서 버텼다. 3년 넘게 창업자이면서 알바생으로 살았던 거다. 그래도 즐거운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게 아주 조금씩이나마 성장하는 걸 볼 때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2017년 엑소, 방탄소년단 등 스타들이 착용해 화제가 되었다. 마케팅의 일환으로 협찬한 것인가
▶ 엑소 수호 씨나 방탄소년단도 마케팅이나 협찬으로 진행한 건 전혀 아니었다. 방탄소년단 뷔 님이 착용한 모자는 2015년 처음 출시되어서 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제품이었고, 엑소 수호 씨가 입은 후드도 우연찮게 연기를 하는 친구가 선물로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취약계층과 어린아이들을 돕는다는 그 가치에 그분들이 함께 공감해주신 것 같아 매우 기쁜 마음이다.
▷ 이어서 도전한 사업이 생리대다. 체육교육과 전공에 해병대를 전역한 남성 CEO에게 어울리는 느낌은 아닌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 사실 어린 시절 넉넉하게 자란 건 아니었어요. 편모 가정이어서 어머니는 늘 일을 하셔야 했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보니 그런 아이들이 많더라. 그래서 강의를 갔던 학교의 교장선생님 부탁으로 저와 비슷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경제적으로 뭐가 어렵냐고 물으니 그중 한 친구가 ‘생리대’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가끔은 "해병대 장교로 전역한 남자가 생리대를 만드는 게 이상하지 않냐"라고 하시는데 그걸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사라져야 맞는다고 본다. 저희 어머니도 여성이고, 제 아내가 될 분도 여성이고, 저도 딸을 낳을 수도 있는 거고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하느냐가 중요하다.
▷ 가격이 저렴해서 품질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품질을 유지하면서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 사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데 ‘가격이 저렴한데 어떻게 이렇게 품질이 좋냐’라고 물어보시는데 답은 간단하다. ‘원래 생리대라는 건 엄청 싼 제품이다, 우리가 그동안 비싸게 샀을 뿐’ 그래서 기존보다 조금 더 좋게 만들고 기존에 팔던 금액보다 수익을 낮췄을 뿐이다. 전혀 어려운 구조가 아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비싸기로 유명한 남성 면도기를 기존의 5분의 1 가격도 안되게 파는 ‘달러쉐이브클럽’이나 안경을 싸게 전달하는 ‘와비파커’ 등이 있는데 그 구조랑 똑같다. 제조와 유통의 마진구조를 이해하고, 이미 시장에서 비싸게 가격 책정된 상품을 구조를 바꿔서 마진율을 낮춰서 합리적인 가격에 전달하는 것. 80년대까지만 해도 바나나가 엄청 비싸서 못 먹지 않았나. 지금은 새롭고 합리적인 ‘유통구조’가 생겨서 누구나 바나나를 쉽게 먹듯, 비결이 아니라 단순한 시장경제의 이치 중에 하나이다.
▷ 같은 제품들과 비교해서 가격은 더 낮은데 소비자가 하나를 사면 하나를 기부하는 방식까지 활용한다. 남는 게 있나
▶ 신기하게도 남는 게 있다. 다만 아직은 수익률이 높지 않다. 그만큼 좋게 만들고 마진을 거의 포기하고 저의 수익금을 거의 다 아이들에게 주니까. 다만 제조업의 특성상 발주수량이 많아지면 제조원가가 낮아지게 되고 그럼 수익이 조금 더 생겨서 더 많은 제품군을 만들 수 있다. "저희 산들산들 생리대 정말 잘 만들었으니 작은 회사지만 많이 사랑해서 함께 키워주세요"
▷ 사회적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일반기업에 비해 연봉이 낮은 수준인가
▶ 이것도 사회 편견 중에 하나인데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대부분 ‘착한일 한다’ ‘돈을 못번다’라고 하는데 사실 저희는 사회적기업이라는 건 하나의 타이틀이고, 스타트업이라고 보면 된다. 연봉도 일반 스타트업만큼 되고, 삶도 여유 있고, 생활도 여유 있다. 다만 근무시간이 편해서 10시 30분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니 주 35시간 정도 일하고 더욱 프리하다.
▷ 좋은 일을 하려면 비영리단체를 세우면 되고 돈을 벌려면 일반 기업을 운영하면 되는데, 그 사이에 있는 ‘사회적 기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 좋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다. 물론 좋은 일을 하거나 돈을 버는 일 중 하나만 택했더면 둘 다 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좋은 일은 말 그대로 돈을 좋은 곳에 쓰면 되는 건데, 돈을 버는 건 쓰면 안 되고 모아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상충되는 면이 많아서 어렵다. 즉, 좋은 일로 돈을 쓰면서도 사업을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 사명이나 소명 없이는 못할 일이다. 앞으로도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은 후배 기업들에게 돈을 잘 버는 선배 기업가보다는 둘 다 밸런스를 잘 지키며 성장하는 선배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
▷ 사업 초반에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 사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나
▶ 첫 크라우드 펀딩은 45,000원으로 종료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망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한 이유는 완벽히 저희의 성장 때문이었다. 일단 크라우드 펀딩은 수익률이나 제품을 보는 게 아니라 ‘가치’를 평가받는다는 점에서 꼭 필요했고, 두 번째는 우리 같은 제조업 기업들은 자본금이 있어야 발주를 하는데 크라우드 펀딩은 발주금을 먼저 받고 리워드로 제품을 드릴 수 있으니 그보다 좋은 시스템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펀딩을 가지고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특정 잘못된 메이커 분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고, 대부분은 이 필드에서 엄청 열심히 하시는 분들인 걸 알기에 소비자에게도 창업자에게도 펀딩을 추천한다.
▷ 와디즈 펀딩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펀딩에 도전하는 창업자들을 위해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노하우를 전한다면
▶ ‘진심’이었다. 새벽 2시에도 ‘이런 일이 있다, 속상하다, 함께 해달라.’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 거다. ‘나 이렇게 잘났으니 모르겠다.’ 가 아니라 저도 ‘사실 처음이라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세요, 더 노력할게요, 제가 고칠게 뭐가 있을까요?’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들의 소리를 듣는 게 노하우이다. 그리고 고객의 소리가 리워드로 적용되어 나왔을 때 그 투자자분들은 기억하고, 반응하고, 응원해준다.
▷ 사업이 안정화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크라우드 펀딩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이유가 있나
많은 분들이 펀딩에서 13억~14억 정도 달성했으니 이제 크라우드 펀딩 안 해도 되지 않아? 그냥 팔아서 돈 많이 벌라고 하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첫 번째는 저희 제품의 첫 팬들인 1st Degree*(주석참고)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제 그만큼 도움을 받았으니 이번 ‘유닛백2’ 원가 펀딩처럼 좋은 혜택으로 좋은 리워드를 보답하고 칭찬받는 것이 팀원들에게 큰 자부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도 간간이 좋은 리워드가 있으면 펀딩을 기획한다.
*미국의 한 크라우드펀딩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크라우드 펀딩의 확산 단계를 아래 3단계로 분류한다.
1st Friends, Family & Dedicated Fans
2nd Friends-of-Friends & Acquaintances
3rd Broader Connections & the Crowd
▷ 딜럽의 유닛백은 홈쇼핑에서 완판을 기록하기도 했다. 단순히 기부라는 의미만 좋아서는 아닌듯한데
▶ 리워드 펀딩을 진행하거나 제품을 판매할 때 사회적 가치를 어필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비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좋은 가치가 있어요’라고 하면 ‘착하니까 사줄게’가 되는데, 그것도 물론 감사하지만 그 "착하니까 사줄게"라는 말 안에는 제품력보다 가치 때문에 산다는 의미가 많이 있다. 그래서 저희는 철저하고 지독할 만큼 제품 개발에 집중한다.
▷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비용 등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수익금에 대해 기부와 투자로 배분할 때 우선시하는 것은 어느 쪽인가
▶ 사실 5:5면 가장 좋겠지만 투자가 먼저다. 투자라는 것이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모든 것이 투자인데 그것이 밑바탕으로 깔리지 않으면 수익이 지속하게 나지 않고 결국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투자를 우선시하고 그 투자로 발생한 수익금은 고정적으로 기부가 되는 것이다. 가끔 돈은 한정적이고 투자를 해야 할까 기부를 해야 할까 고민될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땐 회사 돈은 투자하고, 제 월급이랑 이사님 월급은 기부한다. 그럼 간단하다.
▷ 젊은 창업가로서 ‘삶의 방식’이 궁금하다.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편인가?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함께 전해달라
▶ 얼마 전 영화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평생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사실 2015년 3월에 장교로 전역하고 2020년 1월인 지금까지 주말 포함해서 단 하루도 출근을 안 하거나 쉰 적이 없다. 심지어 현재 입주한 건물이 3년 차~7년 차 스타트업들이 모여있는 건물인데 경비 소장님들이 부르는 내 별명이 ‘귀신’이다. 맨날 새벽 4시에 불 다 꺼질 때 혼자 조용히 퇴근한다고. 그래도 행복한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세상에 재능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시간에, 동등한 삶을 선물로 받았다. 남들보다 더 많이 쉬고 내 여유를 찾으면서 남을 뛰어넘고 싶다는 건 복권 안 사놓고 당첨되는 거 기다리는 사람이랑 똑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르고 팀원 중에는 적게 일하고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게 목표인 분들도 있다. 그분들은 워라밸과 라이프스타일 즐기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고, 내 경우는 지금 하는 이 일이 너무 좋아하는 일이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몰입하는 것이다. 서로가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연애나 결혼은 일을 포기하고 선택해야 한다기보다는 일 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더 생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레는 일이다.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함께 하면 일에도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듯하다. 가정이 생기면 아내와, 자녀들과 재밌는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진행해보고 싶은 로망도 있다.
▷ 앞으로의 목표는
▶ 일단은 생리대가 작년 7월에 출시되어 월 매출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으니 더 좋은 제품군으로 확장시켜 더 많은 분들께 정말 흡수력 좋고, 안전하고, 쾌적한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는 게 눈앞에 다가온 목표이다. 더불어 캐나다의 유명 PMS 월경전 증후군을 완화시키는 영양제 회사에서도 제품을 같이 출시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우먼스 헬스케어 제품들도 만들어 보고 싶다.
회사 차원의 최종 목표는 여성 문제, 시니어의 문제, 개발도상국의 교육문제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그 문제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어져서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질 날을 고대하며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