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등학생 때 만난 하늘이 덕분에 이 직업 가지게 됐어요"

동물병원에 들러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수의사들의 손과 팔에 난 깊은 상처와 흉터들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낯선 환경인 병원에 온 동물들이 주사기를 가지고 오는 수의사를 곱게 볼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하루에도 수십 번 공격 아닌 공격을 해오는 동물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치료행위를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텐데요.

반려 인구 1400만 시대인 요즘 뜨는 직업인 수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성적만 믿고 도전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수의사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함께 성장한 반려견 덕분에 자연스럽게 수의사를 꿈꾸게 되었다는 수의사 이세원을 만나보았습니다.


▷ 수의사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나
▶ 초등학교 때부터 키웠던 말티즈 “하늘이”를 만나면서 수의사로서 꿈을 키웠다. 하늘이와 함께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강아지에 대해서 알게 되고 동물병원도 가보면서 수의사에 대한 동경을 키운 셈이다. 더불어 수의사이신 외삼촌, 외숙모님 덕분에 동물병원도 자주 가보고 수의사에 대해 더 가깝게 알 수 있었던 점도 계기라고 할 수 있다.

▷ 수의사가 되는 과정을 알려달라
▶ 수의사가 되려면 우선 수의대를 가야 한다. 수의대는 전국에 서울대, 건국대, 강원대, 충남대, 충북대, 전남대, 전북대, 경상대, 경북대, 제주대  총 10개가 있는데, 다른 의약계열에 비해 학교수가 많진 않은 편이다. 6년제인 수의대를 무사히 마치면 국가고시를 치르고, 이에 합격하면 수의사 면허가 나와서 비로소 수의사로서 일을 할 수 있다.

▷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대에 진학했다가 실험동물 실습 등 인간 중심적인 학문 방향 때문에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수의사가 되기까지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 본과 1학년 때, 첫 해부 실습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때 충격을 받았다. 동물 사체를 처음 봐서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다만 실습을 통해 나중에 더 많은 동물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해부 실습에 임하면서 적응을 했다. 그리고 수의대에서는 이런 동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수혼제(獸魂祭)라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만큼은 수의대 교수님, 학생들 모두 엄숙하고 경건하게 행사에 임한다.

▷ 수의사 면허 취득 후 가능한 진로에는 어떤 것이 있나
▶ 수의사는 크게 임상 분야, 비임상 분야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임상 분야는 흔히 알고 있는 동물병원 수의사를 포함해서 각종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를 의미하는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소동물(개, 고양이 등) 수의사이고, 그 외 대동물(소, 말, 돼지 등) 수의사, 동물원과 야생동물 수의사 등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대부분 수의사라고 하면 임상 분야를 떠올리곤 하는데 비임상 분야에 종사하는 수의사들도 많이 있다. 비임상 분야로는 국립 수의과학 검역원에서 검역 업무, 시군 구청의 수의직 공무원, 제약회사, 군대에서 수의장교 등 매우 다양하다. 내 경우는 수의대를 들어간 이유가 강아지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임상분야 가운데 소동물 수의사를 택했고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 공부만 잘한다고 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수의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 공부만 잘한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물론 수의사로서 뛰어난 의술이 가장 중요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인 만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재학시절 함께 공부한 수의대 학생들 중에서 강아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성적에 맞춰 입학한 학생들도 일부 있었다. 반면에 미국은 의대와 수의대의 성적이 비슷해서 수의대에 오는 사람들은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들었다. 미국 대학 동물병원에서 익스턴십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로 수의사 및 테크니션 선생님들 모두 환자로 온 동물들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나라도 곧 그리되리라 믿고 있다.

▷ 수의사로서 직업의 장단점을 알려달라
▶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다. 말 못 하는 동물을 치료해서 회복하면 직업적 보람이 굉장히 크다. 하지만 반대로 매일 아픈 동물들을 봐야 하고, 나이가 들어 치료가 어려워지는 경우나 사망하는 경우를 볼 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런 면에서 수의사도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하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동물병원의 진료비가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많다
▶ 동물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람 병원과 비교하면 비싼 게 사실이다. 이는 사람과 달리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문제인데, 모든 의료비가 비보험이기 때문에 동물병원마다 수가도 다르고 비싸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이런 수요를 고려해 메리츠, 삼성화재 등 각종 보험사에서 동물 보험이 나오고 있는 추세이다. 아직까진 적극 권할 만큼 좋은 조건이 아닌 듯하지만 필요하신 분들은 약관을 잘 살펴보시고 가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  최근 강아지 구충제 펜벤다졸이 항암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실제로 암 환자들 사이에 복용을 시도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암 환자들의 구충제 복용에 찬반 입장을 전하자면
▶ 해당 이슈로 펜벤다졸을 구하려는 분들도 많아지고 문의하시는 분들도 많다. 다만 해당 분야 전문가인 수의사로서 내 입장은 반대이다. 아직까지 효능이 입증된 바 없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례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 기술로 좋은 항암제들도 많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한 암 환자에게서 무분별하게 사용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말기 암 환자에서 어떠한 치료도 불가능한 경우엔 펜벤다졸 사용하는 것을 만류할 순 없을 듯하다.

▷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상식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기 검진”을 통해 큰 병을 예방하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도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지 않나. 그에 비해 반려동물에게 1년은 사람의 6-7년과 같기 때문에 꼭 1년에 한 번씩 받더라도 그 사이 다양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노견이 되면 6개월에 1번 정도는 검진을 받아야 한다. 근래 동물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동물 병원과 가깝게 지내시면서 “견생 20세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만큼 병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다.

▷ 실제로 강아지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식구들 소개를 해달라
▶ 어릴 적 키우던 말티즈 ‘하늘이’가 떠나고 새로운 식구인 갈색 푸들 ‘마론’, 검은색 푸들 ‘노아’가 왔다. 둘은 한배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형제처럼 잘 지낸다.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노아는 정말 애교도 많고 질투도 많아서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타입이라면 마론이는 무뚝뚝한 편이다. 고양이 ‘루미’는 대학원 때 데려온 아이인데, 내가 본가로 들어오면서 마론, 노아와 셋이 함께 살게 되었다. 다행히 너무 잘 지내고 있다. 강아지, 고양이는 앙숙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함께 잘 지내거나 서로 독립적으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싸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 수의사이면서 크리에이터인데 유튜브를 하는 것에 대한 동료들 반응은 어떤가
▶ 수의사 유튜버가 매우 적어서 다들 반응이 뜨거웠다. 주변에 소개도 많이 해주고 영상도 많이들 시청해줬다.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가면서는 ‘셀럽’이라고 다들 놀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주변 친구들이 유튜브를 시작하려고 하면 적극 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했을 뿐인데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어서 만족한다.

▷ 유튜브 활동을 통해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아는 것을 나만 알기보다는 함께 나누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좋은 가치라고 생각해왔다. 수의대 재학 중엔 수업 정리본을 만들어서 나눠주기도 했었고, 수의사가 된 이후로는 네이버 지식iN, 블로그 등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라는 효율적인 플랫폼을 만난 것이다.

앞서 말했듯 반려동물 건강을 위해서는 예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방을 위해서는 보호자님들이 더 똑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에 대해서 더 알게 되고 건강하게 기를 수 있으면 좋겠다.

▷ 수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줄 조언이 있다면
▶ 공부 잘해서, 성적 맞춰서 들어오기보다는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 후배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실제로 그런 수의사들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직접 동물을 길러보고 느껴보면 더욱 좋을 듯하다.

▷ 앞으로의 목표는
▶ 외과 수의사로서 더 많은 동물들을 수술해서 치료하고, 유튜버로서 반려동물의 질병 예방을 위해 꾸준히 영상을 만들어 제가 가진 지식을 나눌 생각이다. 똑똑한 보호자가 반려동물을 더 건강하게 기를 수 있다.

인터뷰 말미에 이세원 수의사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보호자들을 향해 꼭 자신이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에 반려동물 관련 정보가 많으니 정확하고 올바른 건강 정보를 미리 알고 아이들의 건강을 챙겨주시라는 부탁을 덧붙였는데요.

수의사로서 이세원은 동물을 치료하는 전문가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반려인으로서 살아온 노하우를 알려주는 반려인 선배의 역할을 자처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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