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와 영국의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11년 장기 후원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대규모 전시 프로젝트인 현대 커미션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현대차가 매년 1명의 작가를 선정해 영국 테이트 모던의 초대형 전시장 터바인 홀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2019년에는 현대 커미션의 작가로 '카라 워커'가 선정되었는데요. 미국의 대표 흑인 여성 작가인 카라 워커를 TIKITAKA와 함께 만나봅시다.
카라 워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화가로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여성 작가로 불리는데요. 워커는 13살 때까지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로 들어가는 관문 도시인 스톡턴에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워커의 아버지는 퍼시픽 대학 미술학과 학과장이자 교수였는데요. 워커는 예술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이후 워커는 아버지가 조지아 주립 대학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면서 애틀랜타로 이주하게 되는데요. 애틀랜타는 1980년대였음에도 흑인차별 정책이 사라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워커는 고등학교 시절 '니거'라고 불렸고 원숭이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는데요. 심지어 당시 워커가 사귀던 백인 남자친구는 백인 극우단체인 KKK에게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겪은 인종 차별적 경험들은 이후 워커의 작품세계를 강하게 지배하게 되지요.
실제로 카라 워커의 작품 키워드는 인종차별, 성차별, 흑인의 정체성 등입니다. 다소 무겁고 풀리지 않는 듯한 주제이지만 카라 워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볍고 친숙하게 풀어내는데요.
카라 워커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은 검은색 종이를 사람 형상으로 오려 벽에 붙이는 '실루엣' 작업입니다. 카라 워커가 사용하는 실루엣 작업은 사실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19세기 백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실루엣 초상화' 기법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백인들이 좋아하던 방식으로 백인 문화를 비판하는 카라 워커의 방식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카라 워커는 인종과 성, 폭력과 욕망, 역사와 허구의 복잡한 연관 관계를 탐구해 작품에 적용해 왔는데요. 그 표현 방법이 때로는 너무나 적나라해서 오히려 흑인 사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12년에는 뉴저지의 뉴어크 공립 도서관에 걸려 있던 카라 워커의 흑연 드로잉이 도서관 직원의 항의로 인해 천으로 가려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당시 그림 속에 노예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 주인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에게 오럴섹스를 행하는 장면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당시 항의를 한 직원은 해당 장면이 '역겹다'라며 항의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사실 노예제도가 있던 사회에서 주인 남자와 하인 여자 사이에 불륜 관계는 비일비재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부르는 '물라토'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인데요. 말하자면 '성 착취'의 문제인 것이지요.
이렇듯 현대 사회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담론들을 한 편의 그림자 연극을 보여주듯 전달하는 카라 워커가 2014년에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작품을 표현했는데요. 뉴욕의 오래된 설탕 공장에 10.5m 크기의 설탕으로 만든 거대한 흑인 여성 조각을 설치한 것입니다.
워커는 이 조각을 만든 이유에 대해 '지금도 제3세계 어린이들이 사탕수수와 카카오 등의 재배에 이용, 착취되고 있는 실정을 폭로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는데요. 흑인 노예들의 지난한 삶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제3세계 노동 착취를 연결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지요.
다만 흑인 여성의 누드로 표현된 이 작품에 대해서 많은 대중들은 섹슈얼한 이미지로 받아들이기도 했는데요. 작품 앞에서 다소 노골적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지요. 하지만 워커는 그러한 대중들의 반응이 놀랍지 않다며 사람들이 관련 논쟁을 통해 본인의 작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게 의도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한편 카라 워커는 영국의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서 개최되는 현대 커미션의 2019년 전시 작가로 선정되었는데요. 카라 워커의 새로운 작품은 2019년 10월 2일부터 2020년 4월 5일까지 약 6개월간 테이트 모던의 중심부에 위치한 터바인 홀에서 전시됩니다.
인종, 문화, 역사의 다양한 문제들 속으로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온 카라 워커가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