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스키스 프로듀서가 발탁한 힙합가수, 텍사스로 돌아간 근황

인생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더 재밌다지만 큰 기대를 품고 열정을 쏟은 일이 예상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실망감은 '인생의 재미'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 됩니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실패의 쓴맛을 봤다면 타격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19살 나이에 인생역전을 꿈꾸면서 가수로 데뷔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진 래퍼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1999년 젝스키스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이윤상 작곡가가 발탁하고 당대 톱가수 '제이'가 객원보컬로 나서면서 큰 기대를 받았던 3인조 힙합그룹 '아이티'는 1집 앨범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조용히 사라졌는데요. 아이티의 멤버로 19살에 데뷔한 재미교포 2세 김도형 씨 역시 앨범 실패와 함께 다시 미국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 김도형 씨가  한국에서 실패한 후 돌아갈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트럭기사로 일하면서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던 도형 씨의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기 힘들었고 그러는 사이 낯선 미국땅에서 홀로 어린 아들을 키워야 했던 도형 씨의 어머니는 5살짜리 아이를 두고 한국으로 떠나버렸죠. 이로 인해 도형 씨는 10대 시절을 한 흑인 위탁 가정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3인조 힙합그룹 아이티

때문에 도형 씨에게 한국에서의 가수 데뷔 기회는 무척 절박한 꿈이었습니다. 젝스키스의 '로드파이터', 유승준의 '가위' 등 수많은 히트곡을 작곡하고 젝스키스, 유승준, NRG, 구피, 클릭비, 소찬휘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이윤상 작곡가에게 발탁되어 정통힙합그룹 '아이티'의 멤버가 되면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리라 생각했는데요. 당시에 대해 도형 씨는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했을 때 인생이 180도 바뀌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아이티 영원히너와 MV

이후 미국에 돌아온 도형 씨는 좌절감을 보듬어줄 부모도,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구도 없이 홀로 재기해야 했습니다. 이때 도형 씨가 선택한 길은 대형트럭을 운전하는 '트럭커'인데요. 25살 무렵 일찍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기로 한 도형 씨는 "내 가족만큼은 어떻게든 내가 먹여살리겠다"라는 신념으로 무작정 '고소득 직업'이라는 트럭커의 길에 들어선 것. 

이를 위해 우선 도형 씨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트럭킹 학원에 등록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미국에서 트럭커가 되기 위해서는 CDL라이선스가 필요한데, 필기와 실기 시험을 거쳐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미국의 일부 트럭킹 회사의 경우에는 자체 교육과정으로 트럭커를 양성하거나 외부학원에 위탁해서 교육비 일체를 지원하기도 하는데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트럭킹 학원은 교육비 지원이 없기 때문에 사비를 써야 하는 반면 영어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개인 실력에 맞춰서 '쪽집게 강의'를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고.

이에 대해 김도형 씨는 "영어를 좀 못해도 도전할 수 있다. 학원에서 시험에 나오는 예상문제를 다 알려준다"면서 "참 어딜 가든 못하는 게 없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 역시 학원의 도움으로 2주 만에 라이선스 취득에 성공했다고 전했지요. 

CDL자격증의 A등급을 취득한 도형 씨는 맨 처음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한국 이삿짐업체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한국인들의 이삿짐을 나르는 업체였는데, 이곳에서 도형 씨는 이사차량을 운전하면서 이삿짐을 나르는 일까지 병행했습니다. 덕분에 초보 트럭커들이 보통 마일당 17불 정도를 받는 박봉인데 비해 도형 씨는 인건비까지 포함해 보다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었죠. 

또 이사업체에서 일하면서 단순히 멀리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좁은 골목을 운전하거나 좁은 지역에 주차하는 요령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도형 씨는 단 3개월 만에 트럭 운전의 감각을 완벽히 익히고 솔로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개인 차량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트럭킹 회사에서 차량을 빌리고 매달 리스비를 갚은 형태였는데요. 때문에 2~3주간 집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장거리 운전을 소화하면서 차량 리스비를 갚아나갔습니다.

당시에 대해 도형 씨는 "잠을 못 자고 운전하다 보니 손이 떨리고 정말 힘들었다"면서도 "와이프가 첫 아들이 낳은 시기였는데, 혼자서 육아를 하느라 힘들었을거다. '왜 하필 이런 직업을 선택해서 고생을 시키나'라는 생각도 들고 너무 미안했다"라고 가족들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집에 있는 와이프와 아들을 걱정하면서 밤샘 운전을 하던 당시 도형 씨의 나이가 고작 26살 무렵이었다고 하니 가족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후 도형 씨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CJ제일제당에서 5년 정도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고 10여 년 전부터는 오너 오퍼레이터가 되어서 본인 소유 트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매일 집으로 퇴근하는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가족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그러면서 도형 씨는 "날씨가 안 좋거나 운전하기에 위험한 환경에는 쉴 수 있다. 어느 정도 소득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덧붙였는데요.

실제로 미국에서 트럭커들의 연봉은 2015년 기준 평균 7만 3000달러, 한화로 약 8500만 원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코로나 시기에 그만둔 트럭커들의 자리가 다시 채워지지 않아서 트럭커들이 대거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트럭커들의 몸값이 더 올라가고 있기도 합니다. 또 도형 씨는 위험물질 등 단가가 비싼 물류의 배송을 맡을 수 있게끔 다양한 자격요건도 미리 갖춰놓았다고 하는데요. 16년 차 트럭커 도형 씨의 연봉은 최소 억 단위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MBC 아무튼출근, 유튜브채널_텍사스트럭커

한편 20대 중후반 젊은 나이에 일찍이 고된 시간을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의 안정적인 삶을 꾸린 41살 도형 씨에게는 단 한 가지 소망이 남았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 헤어진 어머니와 재회하는 것. 5살 나이에 동네 친구들에게 "너네 엄마 도망갔다며?"라고 놀림당하는 일은 상처였음에도 이제 일흔이 넘었을 어머니를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가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도형 씨가 하루빨리 어머니와 재회해서 어린 시절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길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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