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시켜서', '주변에서 권유해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공부든, 일이든 결국에는 내 의지대로 해나가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죠. 다만 어린 나이에는 부모가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는데요. 춤을 추겠다는 딸을 말리기 위해 미국 유학을 보낸 부모와 춤을 배우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전교 1등 성적표까지 받아온 딸, 둘 중 최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요?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한 부모는 결국 백기를 들고 1년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3 때 처음으로 댄스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주인공은 댄서 리정입니다.
1998년생인 리정은 2000년대 국내 걸그룹 전성기를 TV로 접한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보아 등의 춤을 따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춤을 좋아하게 되었는데요. 전문적으로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배우지 못했고 대신 방에서 혼자 춤을 따라 하며 놀다가 부모님의 인기척이 들리면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척을 했다고.
딸이 몰래 춤 연습을 하는 걸 모를 리 없던 리정의 부모님은 춤 대신 학업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미국 유학을 보냈습니다. 이에 대해 리정은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저를 유학 보내기 위해서 어떠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전부 엄마의 영향이다"라고 고마움을 전했죠.
덕분에 리정은 초등학교 고학년 나이부터 미국 테네시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만 미국에서도 춤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고 이에 부모님은 리정에게 "전교 1등 하면 한국에 들어오는 여름에 춤을 배우게 해주겠다"라고 약속했는데요. 실제로 리정은 춤을 배우겠다는 의지로 재학 중이던 미국의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고 16살 여름방학 때 한국에서 처음 댄스학원에 등록하고 정식으로 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 리정은 부모님께 "내가 지금 미국에 가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설득했습니다. 결국 딸을 못이긴 아버지는 "1년 안에 성과를 내지 않으면 다시 미국에 보내버린다"라는 엄포와 함께 댄서의 길을 허락했죠.
1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아버지의 조건에 맞추기라도 한 듯 리정은 이듬해인 2014년 10월 국내 힙합댄스 크루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Just Jerk의 오디션에 합격해서 최초 여성 멤버이자 최연소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세계적인 댄스 대회 Body Rock에서 Just Jerk의 멤버로 함께 참가해서 한국 최초 우승을 거머쥐었죠.
정식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Just Jerk의 멤버가 되고 그로부터 2년도 채 되지 않아서 세계적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인데요. 이에 대해 리정은 "대회를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7번 이상 새벽연습을 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잤다. 남자 멤버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근력운동을 많이 했다"면서 "대회를 준비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춤 실력이 많이 늘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이듬해에는 America Got Talant에도 참가해서 심사위원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며 본선까지 진출했는데, 해외 활동이 잦았던 당시 리정은 미국 유학 경험을 살려 통역과 비즈니스 컨택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고 평창동계올림픽의 개막식까지 참여했으니 리정의 부모님은 딸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좀 더 일찍 허락하지 않은 것이 미안해질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2018년 마마무 멤버 휘인의 솔로곡 안무에 참여하면서 아이돌 무대로도 영역을 넓힌 리정은 2019년 Just Jerk를 탈퇴하고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안무가 에이전시 YGX로 옮겼습니다. 이후 트와이스의 'Fancy'를 통해 흥행과 실력을 모두 갖춘 댄서로 거듭났는데요. ITZY, 선미, 전소미, 여자아이들, 송민호, 제니, 청하, iCON, 제시 등 대세 스타가 원하는 대세 안무가가 된 것.
Mnet '스트리트우먼파이터'의 신드롬급 인기로 인해 '스타가 찾는 안무가'가 아닌 대세 스타가 된 리정은 앞서 Just Jerk를 탈퇴할 무렵 진행한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자랑스러워지고 싶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었는데요.
최근 한 예능 프로에 오은영 박사의 절친한 친구로 등장한 리정의 아버지는 스우파 이후 딸의 근황을 묻는 친구에게 "엄마차를 사줬다. 나는 쌩이다"라고 서운한 내색을 하면서도 딸의 춤 실력에 대해 "나를 닮았다"라고 답해 애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절친한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은 딸이 된 리정은 이미 꿈을 이룬 듯하네요.
한편 리정은 스트리트우먼파이터를 통해 유행어가 된 자신의 발언 "근데 본인은 24살에 뭐 하셨어요?"에 대해 "여러분의 스물넷은 다 소중하다"면서 "망언이었다"라고 후회했는데요. 이른 나이에 쟁취한 성공이 아니라도 10~20대에 이미 최선을 다해본 경험과 그 과정에 대해서 만큼은 충분히 자부심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