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억짜리 가장 비싼 국가 물품 보유한 '이곳'이 공무원들의 기피 부서가 된 이유

국가가 소유한 재산의 가치들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19년 말 기준으로 국유 건물 중 가장 비싼 것은 약 4400억 원 가치를 자랑하는 정부세종청사 1단계입니다. 또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물품 중 가장 비싼 것은 무려 520억 상당의 가치를 자랑하는데요. 국민들의 혈세 520억 원을 들여 국가가 소유 중인 국가보유물품 중 최고가 물품은 바로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5호기입니다.

앞서 기상청의 슈퍼컴퓨터 4호기는 172억 원 상당이었던데 반해 5호기는 그 액수가 2배 이상 뛰어오른 셈. 때문에 기상청에서 내놓는 날씨 예측이 빗나갈 경우 "수백억 짜리 장비를 갖추고도 오보를 내는 거냐"라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슈퍼컴퓨터는 초고속 계산기일 뿐

슈퍼컴퓨터 5호기

슈퍼컴퓨터라는 이름에서 오는 '전지전능한' 느낌과 달리 실제 슈퍼컴퓨터 자체만으로는 날씨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상청의 날씨 예보는 먼저 기상관측소 및 날씨 위성으로부터 대기 상태 관련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들은 슈퍼컴퓨터에 있는 소프트웨어인 '수치예보모델'에 입력합니다. 

앞서 영국형과 일본형 등 해외의 수치예보모델을 사용하던 우리 기상청은 2011년부터 약 9년간의 연구 끝에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했고 지난해 4월부터 적용 중입니다. 현재는 영국에서 제작된 수치예보모델 UM과 한국 기후에 최적화된 자체 수치예보모델인 KIM을 혼용해서 사용 중이지요.

유튜브채널_기상청

이때 수치예보모델에 입력된 수많은 데이터를 계산하는 것이 바로 슈퍼컴퓨터의 일. 이후 슈퍼컴퓨터가 내놓은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해석을 하는 것은 사람인 예보관이 할 일입니다. 즉, 슈퍼컴퓨터는 단지 기상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방정식을 계산하는 '초고속 초대형 계산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워낙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한 계산을 해내야 하므로 슈퍼컴퓨터의 성능 역시 날씨 예측의 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나라에서 보다 고성능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기 위해 수백억의 돈을 들이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나라도 2019년 7월 슈퍼컴퓨터 교체사업을 통해 중국 업체인 레노버를 선정했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산 슈퍼컴퓨터 마루와 구루를 사용 중입니다. 실제로 올해 6월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발표하는 TOP500.org에서 우리나라의 마루와 구루는 각각 23위와 24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9개국만 보유 중이라는
자체 예보모델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성능의 슈퍼컴퓨터를 가지고도 정확한 날씨 예보를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슈퍼컴퓨터는 단순 계산 작업만 수행할 뿐, 그 외 날씨 예보에 관여하는 모든 일은 사람이 합니다. 우선 슈퍼컴퓨터가 계산할 방정식 즉, 수치예보모델을 얼마나 잘 만들어놓았느냐가 관건인데, 이는 기상청 소속 기상연구원들이 할 일.

유튜브채널_기상청

기상청 내에는 직접 예보를 담당하는 본청 외에도 국가기상위성센터와 국립기상과학원, 기상레이더센터, 수치모델링센터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은 기상관측자료를 분석하여 보다 정확하게 예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기상관측 기기의 정밀도 향상을 위한 기상계측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후변화 등 응용기상에 대한 연구도 합니다. 그중 수치모델링센터에서 9년의 연구 끝에 내놓은 것이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KIM인데, 전 세계에서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보유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러시아,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캐나다, 프랑스 등 9개국뿐입니다.

다만 최근 KIM도입 1주년 자체평가 결과, 기존 사용하던 영국형 모델과 비교했을 때 강수 정확도와 태풍 진로 등의 예측이 뒤지는 것으로 밝혀져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매일 시험 치는 심정으로
일한다는 예보관들

마지막으로 날씨예보 정확도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으로 슈퍼컴퓨터가 내놓은 결과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예보관의 역량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무엇보다 기상예보에서 최종 결정을 하는 역할이다 보니 예측이 빗나간 경우 그 책임은 오롯이 예보관의 몫이 될 때가 많습니다.

기상청 예보국 전일봉 예보관(MBC아무튼출근)

실제로 기상청 소속 예보관들 중에는 잦은 항의전화로 인해 정신적 트라우마가 남아서 대인기피증을 앓는 경우도 많습니다. 기상상황이 좋지 않아서 예상 강우량과 풍랑주의보를 발표하면 선주들은 "과하게 예보해서 선원들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라고 항의하고, 선원들은 "너무 약하게 예보한 거 아니냐, 바다에 나갔다가 사고 나면 책임질 거냐"라고 항의하는 식. 게다가 기업이나 공공기관들까지 태풍 등 예보가 예상치보다 밑돌 경우에 "쓸데없는 대비를 하게 만들었다"라고 불평 전화를 걸어온다고.

기상청 예보국 전일봉 예보관(MBC아무튼출근)

이런 상황에서 예보관들은 교대 근무를 이어가면서 24시간 예보국을 지킵니다. 최근 예능 프로 '아무튼출근'에는 5년차 기상청 예보관 전일봉 씨가 출연해서 예보관의 근무 일상을 공개했는데요. 오전부터 오후까지 세 차례에 걸친 회의를 진행하는데다 3시간마다 나오는 일기예보를 위해 기상도를 직접 그리기까지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상청 동네예보 담당자의 야근 근무표(KBS뉴스)

또 특보 상황을 고려해서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예보관들은 조를 나눠서 식사하는데, 보통 식사시간은 20분 내외로 전일봉 예보관 역시 "점심도 전투적으로 먹어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주야근무를 교차해야 하는 예보관들은 야간근무조에 배치되었을 때도 쉴 시간 없이 1시간마다 동네예보를 내놓아야 하고 다음날 아침 내놓을 기상예보를 위해 자료분석과 토의를 이어가야 합니다.

 

밥 못 먹고 일하면서
욕만 먹는다는 공무원

하지만 무엇보다 예보관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입니다. 퇴근 후에도 자신이 예보한 기상상황이 맞는지 틀린 지에 대해 늘 긴장하는 예보관들은 매일을 수능시험 치는 심정으로 버틴다고도 말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최고 성능을 자랑한다는 슈퍼컴퓨터들이 내놓은 각기 다른 기상예측을 바탕으로 국내 지형과 과거 기상 등을 가지고 토의와 토론을 거쳐 힘겹게 날씨예보를 내놓으면 돌아오는 답변은 '오보청', '구라청'이라는 조롱들. 최근에는 미세먼지, 폭염, 이상기후 등의 현상들까지도 기상청에 항의하는 바람에 예보관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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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기상청 안에서도 예보국은 기피부서가 된지 오래입니다. 일요일 및 공휴일 없이 4일 주기로 주간 12시간, 야간 13시간 근무를 번갈아 수행하는 예보관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9to6 공무원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난 셈.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을 뛰어넘어 완벽한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예보관"이라면서 "예측하지 못한 비가 떨어지면 예보관의 눈물로 알아달라"라고 호소하는 전일봉 예보관의 말에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전공자는 아니어도 되지만
관련 자격증 취득은 필수

한편 기상청 예보관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중 기상직 9급이나 기상직 7급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됩니다. 단, 9급은 매년 선발하는 반면 7급은 공고가 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공무원 시험이다 보니 전공에 대한 제한은 없는데요. 관련 학과로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연세대 대기과학과, 공주대 대기과학과,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강릉원주대 대기환경과학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등이 있지만 관련 전공자가 아니어도 기상직 공무원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기상청 입사꿀팁(유튜브채널_기상청)

실제로 '아무튼출근'에 출연한 전일봉 예보관의 경우에도 사범대를 졸업했으나 교육직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과학 관련 직업을 찾던 중 기상청 근무를 꿈꾸게 된 것. 그 외 기상예보기술사, 지질및지반기술사, 기상기사, 기상감정기사, 응용지질기사 등 관련 자격증 소지자의 경우 필기시험에서 가산점이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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