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사랑은 남다른 편.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성인의 1인당 커피소비량은 연간 353잔으로, 세계 평균 132잔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커피소비량을 감당하기 위해 국내에 수입되는 원두는 연간 15만 톤을 넘어섰습니다.
처치 곤란 15만 톤 쓰레기
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수입한 원두는 대부분 다시 버려집니다. 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 때 약 15~16g의 커피 원두가 사용되는데 이중 0.2%만 사용되고 나머지 99.8%는 커피 찌꺼기로 배출되기 때문. 실제로 2019년 기준 국내 커피 찌꺼기 배출 규모는 약 149,038톤이고 이는 생활 폐기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와 함께 매립되거나 소각됩니다.
14만여 톤은 커피 찌꺼기를 버리기 위해 종량제 봉투 값만 단순 계산하더라도 연간 41억 원이 듭니다. 게다가 이를 매립하면 카페인으로 토양이 오염되고 소각하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퇴근길에 얻어온 커피 찌꺼기로
밤샘 연구한 회사원
이렇듯 처치 곤란이 되어버린 커피 찌꺼기로 돈을 벌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커피전문점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커피 찌꺼기를 가져와서 냉장고 속 방향제 정도로만 활용하는 동안 아예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사업 아이템 구상에 나섰다는 주인공은 커피큐브의 임병걸 대표입니다.
임병걸 대표가 처음 커피 찌꺼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2007년, 그는 외국계 기업 '후지제록스'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30살 회사원이었습니다. '커피 찌꺼기를 재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 임 대표는 먼저 커피 찌꺼기 활용법을 소개하는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커피 찌꺼기 재활용법을 연구하기 위해 서울과학기술대학에서 화학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본격 커피 찌꺼기 재활용법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회사가 마치는 대로 집 근처 카페를 돌며 커피 찌꺼기를 얻으러 다녔습니다. 새벽 1~2시까지 동네를 돌며 수거한 커피 찌꺼기를 반지하 방에 가져와서 '딱딱하게 굳히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지요.
쉽게 갈라지고 곰팡이도 피는 커피 찌꺼기를 제대로 굳히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임 대표는 결국 커피 찌꺼기를 말려서 고운 입자를 골라내고 여기에 돌가루를 넣어 강도를 높이고 채소추출물을 첨가해 점성까지 더하는 방식으로 커피 점토를 완성했습니다.
일본에 수출되는 커피 벽돌
커피 점토를 완성한 후에도 임 대표는 수익성을 낼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완성하지 못했기에 창업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강릉커피 축제에서 커피 점토를 무료로 나눠주는 이벤트를 시도했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돈 주고 사고 싶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자 임 대표는 드디어 '시장에서도 통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후 상품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루 2~3시간 쪽잠을 자며 품질 개선 작업에 나선 임 대표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왔을 때야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2013년 회사를 그만둔 임 대표가 자본금 2000만 원을 가지고 집 거실에서 시작한 사업이 지금의 '커피큐브'로 성장했습니다. 사업 초기에 직접 카페에 가서 커피 찌꺼기를 수거하고 이를 활용한 재활용 제품까지 직접 만들던 커피큐브는 이제 '커피 클레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는데요. 식자재 유통 계열사나 카페 등 100여 군데 업체에서 온라인을 통해 커피 찌꺼기 수거를 요청하면 커피큐브가 택배를 통해 생산기지로 보내고 생산기지에서 만들어진 재활용 제품들은 다시 업체로 보내져서 마진을 붙여 팔 수 있는 시스템이지요.
커피 점토로 만들어내는 제품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커피 벽돌입니다. 나무보다는 무겁고 도자기보다는 가볍다는 이 얇은 벽돌은 일반 벽돌과 비슷한 강도인데요. 시공할 때 실리콘으로 벽에 붙이기 때문에 간단히 떼어내 재사용이 가능하고 일반 벽돌과 달리 폐기할 때도 퇴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친환경 벽돌입니다.
또 천연 커피향 덕분에 방향제 역할을 하는 데다 습도조절 기능도 있어서 실내에 사용하는 인테리어 벽돌로 적격인데요. 커피향이 약해졌을 때 물티슈로 닦아주기만 하면 다시 은은한 커피향이 번지지요.
덕분에 커피 벽돌은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생들이 이를 활용해 만든 조형물로 '2016 대학생건축과연합회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환경부 주최 '2018 혁신형 에코디자인 사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2018년부터는 일본의 인테리어 업체 '메트리얼 월드'와 연간 8만 6000장 수출 계약을 맺었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라 돈 버는 일
오랜 연구와 준비 끝에 창업했음에도 임병걸 대표의 사업은 바로 빛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2013년 회사를 설립한 후 8년 동안 법인세를 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입이 없었지요. 하지만 2019년 커피 점토 제작장비인 '커피 트레인'을 내놓은 다음부터 사업은 정상궤도에 올랐습니다. 커피 찌꺼기를 천연재료와 함께 일정 비율로 섞은 후 커피 트레인에 넣기만 하면 커피 점토가 완성되는 것인데요. 덕분에 하루에 제품 수십 개를 만들어내던 업체들이 1000개 가까운 제품을 생산해내면서 완벽한 수익창출 모델이 된 것.
2020년 한 해에만 지난 8년간 난 손해를 모두 메우고도 남을 만큼의 영업이익을 남긴 커피큐브는 직원을 5명으로 늘리면서 본격 사업 확장에 나섰습니다. 일본 외 다른 수출길을 뚫기 위해 해외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는데요.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우리보다 높은 유럽 등지에서 좋은 반응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커피큐브는 #친환경#업사이클#재활용을 콘텐츠로 한 사업인데다 지역자활센터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에서 제품 생산을 맡는 경우도 많아서 "사회적 기업 아니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임병걸 대표는 지난 4월 잡스엔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기업은 신청도 하지 않았다"면서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그 결과를 인정받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좋은 기업, 착한 기업이 되기 이전에 '기업'으로서 '수익창출'은 기본 중의 기본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의 이미지보다는 냉정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먼저 갖추고 싶다는 임 대표의 포부는 좋은 기업으로 나아가는 첫 단추로 적합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