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게재된 임대인의 하소연이 화제입니다. 임대인 A씨가 '세입자의 만행'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 셀프인테리어를 진행한 임차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묻는 내용인데요.
원목가구에 페인트칠한 세입자
게시글에 따르면, 임대인 A씨는 지난해 7월 49평형 아파트를 60대 부부와 전세계약했습니다. 임차인이 이사하기로 한 날 오전 A씨는 가스요금을 정산하고 변기커버도 달아주기 위해 해당 아파트에 방문했는데, 계약 전과 달라진 집안 내부 모습에 놀랐습니다. 이사 며칠 전에 입주청소를 하겠다고해서 비밀번호를 알려줬더니 A씨와 전혀 상의없이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한 것.
앞서 A씨와 계약을 진행한 임차인은 60대 부부이지만 허락없이 셀프 인테리어를 한 것은 해당 아파트에 함께 살기로 한 임차인의 30대 딸 부부입니다. 그들은 총 5개의 방 곳곳에 녹색 유성 페인트로 페인트칠을 했는데, 붙박이장 등 원목 가구와 도배지를 가리지 않고 집안 곳곳에 어두운 녹색 페인트를 칠해뒀습니다.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다보니 페인트칠은 균일하지 않은데다 유리창과 일부 가구 뒷부분까지 페인트가 묻어 마감이 엉망인 상황.
이사 당일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A씨는 계약자인 60대 부부에게 항의하면서 원상복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은 "사포질과 시트지를 붙여서 해결하겠다"라는 말이었지요. 이후 A씨는 1년간 혼자 마음고생을 하다가 최근 자신이 너무 민감한 것인지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보고자 게시글을 올렸다고 전했습니다.
"돈 벌고 싶은 마음 전혀 없다. 집이 원래 모습만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A씨는 "벽지는 교체해도 원목에 페인트칠 한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하소연합니다. 게다가 최근 A씨는 임차인에게 내년 7월 만기인 전세계약기간을 2년 더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듣고 더욱 답답한 심경입니다.
A씨의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대부분 임대인과 상의없이 함부로 인테리어를 진행한 세입자에 대한 비판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전세보증금에서 피해복구 비용을 정산해야한다", "계약갱신청구권 불허 사유가 된다"는 등 법적인 조언도 함께 제시했는데요. 실제로 A씨는 임차인에게 집을 원상복구하는데 드는 비용을 받고 계약연장 또한 거부할 수 있을까요?
원상복구 의무 어디까지?
민법 제 615조와 654조에 따르면 임차인은 주택 임대차가 종료된 때에는 임차주택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해 반환해야 합니다. 다만 원상복구의 범위는 임대차계약당시 상태의 100%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요. '통상적인 사용에 따라 자연적으로 소모되거나 더러워진 부분에 불과한 것은 원상복구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례처럼 고의가 아닌 '통상의 손모'는 복구 의무가 없습니다.
즉, 통상적인 사용에 의한 못자국, 장판이나 마루긁힘, 벽지의 변색 등은 복구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임차인의 고의나 부주의로 인해 집의 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행위를 한 경우, 지난친 벽의 못질 자국, 애완동물 사육 또는 흡연 등으로 인한 도배변색, 이사할 때 부주의로 생긴 긁힌 자국 등은 원상복구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특히 A씨와 계약한 임차인의 경우에는 전세집에 인테리어를 진행한 경우입니다. 인테리어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고장이나 파손으로 인한 수리 또 다른 하나는 미의 충족 목적입니다. 전자와 관련된 비용은 '필요비'이고 후자와 관련된 비용은 '유익비'에 해당되지요.
필요비는 세입자가 입주하기 전에 생긴 파손, 장애로 인해 주거에 심각한 지장을 줄 수 있어 수선할 때 드는 비용을 말합니다. 보일러 수리, 수도관 누수, 계량기 고장, 전기 시설 하자 등이 해당되는데, 기본적으로 집주인은 세입자가 집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수선의무가 있기 때문에 필요비 전액을 부담해야합니다. 다만 세입자의 과실로 인한 파손과 간단한 수선, 소모품 교체 등은 모두 세입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형광등, 샤워기, 세면대, 수도꼭지 교체 등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외 유익비는 집을 개량해서 가치를 증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비용을 말합니다. 발코니 확장, 중문, 이중창 설치 등이 해당될 수 있는데, 이 역시 세입자가 지출했다면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당 시설로 인해 집의 가치가 실제 상승했는지 증명하기 어렵고, 단순히 세입자 본인의 미적 만족이나 편익을 위해서 진행한 인테리어라면 유익비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A씨처럼 세입자 입장에서는 편익을 위해 인테리어를 진행했으나 되려 집의 가치가 훼손된 경우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통상의 손모'가 아닌만큼 인테리어를 진행하기 전 세입자는 반드시 집주인과 상의해야 하는데요. A씨와 계약한 임차인의 경우에는 상의없이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했고 이로인해 원목가구의 훼손이 눈에 띄는만큼 원상복구를 위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법 악용하는 사람이 갑
사실 A씨처럼 특수한 사례 외에도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 원상복구의 범위를 두고 발생하는 분쟁은 비일비재합니다. 민법에 명시된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다보니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인데, '통상적 못자국'은 괜찮지만 '지난친 못질 흔적'은 안된다는 규정 등이 문제가 되지요. 때문에 계약을 진행할 때 미리 계약서상 특약사항으로 '에어컨 설치 구멍'이나 '못질', '커튼설치', '애완동물'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하나 원룸이나 오피스텔 계약 시에 자주 분쟁을 불러오는 것이 바로 청소비용입니다. 사실 특약사항으로 '퇴거 시 청소비용 OO원을 지급하라'라고 걸지 않을 경우 청소비는 세입자가 지불할 의무가 없는데요. 일부 악성 임차인들이 고의나 부주의로 인해 집의 가치를 떨어트릴 정도로 쓰레기집을 만들고 떠나는 경우가 있어서 최근 특약사항으로 자주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법대로 하자'라는 말은 쉽지만 법적 절차를 밟는 동안 들이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분란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 때문에 계약서상 명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의문나는 사항이 있다면 집주인과 미리 상의한 후 진행하고 이와 관련해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저장, 보관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지난달 27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말까지 공단에 접수된 임대차 관련 상담건수는 7만4456건으로 집계되어 월 평균 6768건을 기록했습니다. 법 시행 전 월 평균 4594건과 비교하면 1.5배 가량 늘어난 셈.
새 입대차법을 통해 세입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자했으나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입김이 세진 집주인과 갈등만 늘어난 모양이 되었는데요. 일방적인 갑을 관계가 사라지고 누구나 갑이 될 수 있는 지금, 법의 허점을 노려 이를 먼저 악용하는 사람이 갑이 되는 씁쓸한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