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직업적 안정성과 수익 등 현실적인 면을 간과할 수 없기에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삼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곤 하는데요. 막연한 로망이 아니라 현실적인 수입까지 고려하면서 전공을 포기했다는 똑 소리 나는 대학생이 있습니다.
학과 선배들의 졸업 후 평균 연봉을 계산해서 "음악으로 이만큼만 벌자"라는 디테일한 목표를 가지고 전공을 포기했다는 주인공은 작곡가 겸 제작자인 김도훈입니다.
서울 청담고등학교 재학 시절 록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김도훈은 늘 음악을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한 번도 "음악을 직업으로 삼겠다"라는 꿈을 꾼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중음악을 하기 위해 갈만한 대학조차 마땅히 없었기에 김도훈 역시 음악은 그저 취미활동 정도로 여겼는데요.
홍익대학교 토목공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자연스럽게 민중노래패 '소리얼'에서 활동했고 민중가요를 흡수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 '음악으로 뭔가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었는데, 막연히 톱가수나 연예인이 되겠다는 환상보다는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적인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당시에 대해 김도훈은 "우리 과를 졸업한 선배들의 당시 연봉이 1800만 원이더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이 정도만 벌면 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면서 음악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즈음 '강변가요제'에 참가하면서 본격 음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서강대에 재학 중이던 고교 동창과 함께 2인조 팀 '뭐였으면 좋겠어요'로 출전한 김도훈은 팀에서 작곡과 피아노를 담당하면서 '미세스뮤직'이라는 곡을 만들어 본선 10팀에 들었습니다.
이후 음반 기획사에 직접 데모테이프를 돌리며 스스로를 '곡 쓰는 사람'이라고 알리기 시작한 김도훈은 90년대 신효범, 강수지 등의 음반에 참여했고 1998년 장혜진의 '영원으로'를 통해 첫 타이틀곡을 만들었습니다. SES의 'Just aFeeling'이 히트한 후부터는 휘성의 'With me', 거미의 '친구라도 될걸 그랬어', '기억상실' 등이 연달아 흥행대박이 나면서 그야말로 대세작곡가의 반열에 올랐지요.
김도훈은 발라드, 댄스, 록, R&B 등 장르를 넘나들며 히트곡을 만들어냈습니다. SG워너비의 '죄와벌', 이승기의 '결혼해줄래', 씨야의 '사랑의 인사', 다비치의 '8282', 케이윌의 '눈물이 뚝뚝', 티아라의 'TTL', 아이유의 '마쉬멜로우', 씨엔블루의 '외톨이야', 에일리의 '보여줄게', 소유-정기고의 '썸'은 '김도훈표'라고 명명할 만한 접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새롭고 다양한 분위기입니다.
덕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처음 가입한 뒤 매년 상승한 저작권료는 2010~2012년 정점을 찍었습니다. 20년 넘게 500곡 이상의 곡을 쓰고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비법에 대해 김도훈은 음악을 할수록 테크닉은 늘지만 대중들이 어떤 곡을 좋아하는지 판단력은 점점 흐려지기 때문에 "후배들과 콜라보를 통해 참신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2014년 저작권료 1위를 기록할 수 있도록 한 대박곡 '썸'의 경우 김도훈이 후배들과 함께 팀을 꾸려 함께 만든 공동작곡의 결과물입니다. 썸의 작곡가는 김도훈을 포함해 3명, 작사가는 5명인데, 김도훈은 공식적으로 팀명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능력 있는 후배들과 힘을 꾸려 함께 일하고 있다고.
후배들의 참신한 조언 덕분일까요? 27년 차 김도훈은 최근 내놓는 곡 역시 리스너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마마무의 '음오아예', '데칼코마니', '별이 빛나는 밤', '딩가딩가'와 방탄소년단의 '피땀눈물', 화사의 '멍청이' 등 음원차트를 휩쓸고 있지요. 다만 2000년대에 비해 곡수는 현저히 줄었는데요. 실제로 많은 가수들이 김도훈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서운함을 털어놓았습니다.
한편 곡 안 쓰기로 유명한 김도훈 작곡가가 유일하게 전담마크 중인 가수는 '마마무'입니다. 데뷔곡 '음오아예'부터 화사의 솔로곡 '멍청이'까지 김도훈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는데, 마마무가 김도훈의 첫 제작 그룹이기 때문. 2012년 레인보우브릿지에이전시로 독립한 후 WA엔터테인먼트와 합병하며 RBW의 공동대표가 된 김도훈은 작곡가 출신의 제작자가 되었습니다.
10년 넘게 작곡을 하면서도 입버릇처럼 '난 죽어도 음반 제작은 안 한다'라고 말해오던 김도훈이 마음을 바꾼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는데요.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이 학원과 녹음실, 사무공간이 있으니 "이젠 제작할 때도 된 것 아니냐"라고 권한 것이 불씨를 지핀 것이지요. 얼떨결에 제작에 뛰어든 후 김도훈은 작곡가로서 경험이 많다는 건 착각이었고 신인개발부터 가수 트레이닝, 직원과 자금관리 등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웠습니다.
다만 초보 제작자의 입장임에도 김도훈은 "앞으로 더 이상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느낌의 아이돌은 끝났다"라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곡과 안무를 만들고 무대 구성까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그룹"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특히 화사는 연습생 시절 회사 내에서 "나중에 사고 칠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고 너무 튄다는 이유로 마마무 멤버로 뽑는데 외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김도훈은 "화사 덕분에 마마무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화사를 중심으로 마마무 멤버를 구성했는데요. 데뷔를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어떤 콘셉트로 하게 될지 모르니 우선 머리를 자르지 말고 기르고 있으라"라고 말하자 바로 그 다음날 화사는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와서 "대표님 저 어때요?"라고 엉뚱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고.
김도훈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자신의 매력과 끼를 있는 그대로 발산할 수 있었던 화사는 예능으로 사로잡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자신의 음악세계로 끌어들였습니다. 이후 솔로곡 멍청이, 마리아가 히트하면서 솔로가수로서의 역량까지 마음껏 펼쳤지요.
스타의 반열에 오른 화사에게 김도훈은 "말썽쟁이 혜진이 성공을 축하한다"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김도훈이 대표로 있는 기획사 RBW를 먹여살리는 건 그야말로 마마무, 그중에서도 화사가 대부분의 수익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화사와 함께 가파르게 성장한 RBW는 2019년 기준 영업이익 51억 9300만 원으로 전년대비 386.6%가 상승했고 지난해는 그보다 48.3% 늘어난 76억 2600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덕분에 RBW는 지난해 5월 170억 원 상당의 사옥 건물도 매입했습니다. 해당 건물의 시세는 1년이 지난 지금 210억 이상을 기록 중. 또 올해 4월에는 오마이걸과 B1A4 등이 속한 WM엔터테인먼트의 지분 70%이상을 확보하면서 인수에 성공하면서 사업확장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연봉 1800만 원을 목표로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한 용감한 토목공학과 학생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연매출 372억 원을 벌어들이는 사장님이 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