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드라마는 이제 한류드라마의 대표 장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수많은 논란에도 '막장'이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데는 과도한 설정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도저히 채널을 돌리 수 없게 만드는 막장 대모들의 매력적인 필력이 큰 몫을 했는데요. 리모컨을 든 시청자들 가운데 절반의 마음을 사로잡은 능력 있는 작가들의 비결을 만나볼까요?
남편은 부장검사, 아들은 서울대
김순옥 작가
막장드라마 하면 2009년 방영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방영 당시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귀가시계'로 불린 이 드라마는 남편과 시댁에 버려진 아내가 점을 찍고 나타나 복수한다는 설정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는데요. 해당 드라마를 쓴 김순옥 작가는 그에 앞서 2000년 MBC 드라마 작가 공모에 당선되면서 방송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인 김 작가는 20대 중반에 일찌감치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지내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결혼 전에는 2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결혼 후 여유가 없던 중에 드라마 공모전에 당선되어 단막극 6편을 썼지요. 하지만 당시 작품은 PD들 사이에 필력을 일정 받았을지언정 시청자들의 관심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후에는 검사인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이사를 다니느라 일할 틈을 내지 못했지요.
그러던 중 자녀 교육 문제로 강남에 자리 잡은 후 친구 모임과 학부모 모임, 동네 아줌마 모임 등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다 대중적인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주목받은 작품은 드라마 '그래도좋아'였고 연이은 드라마 '아내의유혹'을 통해 시청률 40%의 대기록을 세웠지요. 당시 김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남편 덕에 자주 이사를 다녀 다양한 이웃을 접할 수 있었고 캐릭터 연구가 절로 됐던 것 같다"면서도 "쑥스러워서 남편과 내 드라마를 같이 안 본다. 다만 드라마에 법률 용어가 들어갈 때는 틀리지 않도록 조언해 준다"라고 말했는데요. 한편 막장드라마 논란으로 인해 "내가 대중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괴로웠다"라고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김 작가는 '메시지가 분명한 드라마', '잠시도 지루하지 않은 드라마'를 목표로 꾸준히 집필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 작가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낸 뒤 글을 썼고 주 5일만 글을 쓰고 남은 시간은 남편과 자녀의 뒷바라지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스스로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워킹맘이기 때문인지 김순옥 작가의 작품은 지친 주부들에게 '세상 시름 다 잊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 김순옥 작가 덕분에 배우 이유리는 악역 최초로 연말 시상식에서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걸그룹 출신의 배우 다솜과 신인배우 이엘리야 역시 연기자로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동시에 드라마 '왔다장보리'가 37%의 시청률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을 때 김 작가의 아들 강성훈 군은 한 경제퀴즈쇼에 출연해 2연승을 차지하기도 해서 놀라움을 안겼는데요. 현재 강성훈 군은 서울대에 진학했다고 전해지며 엄마인 김순옥 작가는 새로운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통해 또 한 번 열풍을 몰아치고 있습니다.
막장 논란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집필 방향을 고수한 김순옥 작가는 앞서 '내딸금사월' 집필 당시 회당 5000만 원의 고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집니다. 51부작을 완성하고 25억 5천만 원을 번 셈. 그로부터 6년이 지난 현재 김순옥 작가의 고료는 회당 8천만 원 수준으로 전해지는데요. 시즌 1,2가 총34회로 완결되었으니 27억 2천만 원, 그리고 오는 4일 방영을 시작하는 펜트하우스 시즌3 역시 12부작을 예고한 상황입니다.
암세포도 생명
임성한 작가
막장계에서도 남다른 수위를 자랑하는 임성한 작가는 김순옥 작가와 달리 어린 시절 문예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충주공업전문대학의 전자계산과를 졸업한 이후 컴퓨터 강사로 생활하다가 TV드라마가 너무 재미없어서 "차라리 내가 드라마를 쓰겠다"라는 마음으로 집필에 도전한 것. 데뷔작은 KBS 단막극이었고 1997년 MBC베스트극장 극본 공모전을 통해 '웬수'라는 작품이 당선되면서 본격 드라마 작가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임작가는 1998년 시청률 57.8%의 역사적인 기록을 남긴 드라마 '보고또보고'를 시작으로 2015년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수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꾸준히 시청률 20% 이상을 유지해 온 아이러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주로 복수극을 다루면서 무속신앙을 자주 등장시키기도 했는데, 출연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각종 논란에도 임 작가의 작품은 늘 성공했고 더불어 무명이나 신인배우들을 보는 눈이 뛰어나서 스타급 배우들을 배출해내기도 했는데요. '인어아가씨'의 장서희는 데뷔 10여 년 만에 첫 주연을 맡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이다해 역시 '왕꽃선녀님'을 통해 주연급 연기자로 거듭났습니다. 또 '하늘이시여'를 통해 주목받은 윤정희와 이태곤, '신기생뎐'의 임수향과 성훈, '오로라 공주'의 전소민까지 모두 임성한 작가 덕분에 새로운 연기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더불어 작품을 하는 동안 임 작가 역시 새로운 인연을 맺고 새 인생을 설계했습니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조연출을 맡은 손문권 PD와 12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부부가 된 것인데요. 2005년 드라마 진행 당시에는 유부남이던 손 PD가 이듬해 이혼했고 이후 자연스럽게 연인이 된 두 사람은 2007년 1월 결혼식을 올리고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아현동마님'과 '신기생뎐'의 대본과 연출을 각각 맡으면서 부부이자 업무 파트너로 동행했지요.
그리고 부부의 새로운 드라마 방영을 앞둔 2012년 2월 손 PD의 사망소식은 큰 충격이었는데요. 앞서 1월 손 PD가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이후에도 임 작가는 남편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고 드라마 제작진들에게도 "남편이 아파서 미뤄야겠다"라고 말한 바 있어 뒤늦게 알려진 사망소식은 각종 루머를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고인이 된 손PD의 부모가 "며느리인 임 작가가 아들의 죽음을 심장마비로 하자고 했다"라는 인터뷰를 했고 "결혼 후 1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서 만나 가족과 식사를 할 뿐" 아들내외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의혹은 커졌습니다.
결국 법적분쟁까지 이어진 임성한 작가와 시댁의 갈등은 손PD 가족 측이 패소하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손 PD가 사망 전 유서를 통해 "끝까지 좋은 남편으로 좋은 동반자로 남아주지 못하고 속만 상하게 해서 미안해. 내가 아끼는 만큼 사랑하는 만큼 잘 해주면서 살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생각보다 내가 너무 부족한 것 같네"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아내의 편에 선 것.
이후 임 작가는 준비하던 MBC일일극을 재정비해서 공개했고, '오로라공주'와 '압구정백야'는 임 작가의 이전 명성만큼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임 작가의 고료는 회당 1800만 원선, 30분 내외의 일일극 분량을 감안하면 무척 높은 금액인데요. 주 5일 방영하기 때문에 매주 9000만 원을 번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150부까지 집필을 마치고 27억 원의 수익을 거두었지요.
고액의 집필료를 받은 만큼의 역할을 못했다는 비판을 들으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찾아온 슬럼프와 앞서 겪은 힘든 개인사 때문이었는지 임 작가는 2015년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암세포도생명 임성한의건강365일'이라는 파격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요.
은퇴를 선언한지 6년 만인 올해 1월 임성한 작가는 복귀했습니다. 일일극에서 강세를 보인 임 작가의 첫 미니시리즈 '결혼작사 이혼작곡'에는 성훈, 이태곤, 이가령 등 임 작가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배우들이 참여해서 캐스팅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는데요. 드라마 방영 초반 끊임없이 등장하는 불륜관계와 갑작스러운 죽음 등의 상황 설정 때문에 "과하다"라는 지적이 있었으나 마지막회 시청률 8% 이상을 기록하면서 임성한의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일본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홍콩, 베트남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일본 넷플릭스 주간 순위 TV부문에서 5위를 차지하며 한류드라마의 대표작 '사랑의불시착'보다 한 칸 높은 순위를 기록했지요. 오는 6월 12일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시즌2의 방영을 앞두고 있는데요. 비슷한 시기에 복귀해서 비교되고 있는 김순옥 작가와의 시청률 대결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시청률 40% 드라마 8개
문영남 작가
일일극 막장의 대모가 임성한이라면 주말극 막장의 대모는 문영남 작가. 서울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문 작가는 1991년 MBC문학상을 수상하고 1995년 자신의 소설 '황가네 식구들'을 각색한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가족드라마의 대표작가가 되었습니다. 97년작 '정때문에'와 99년작 '남의 속도 모르고'까지 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편당 200만 원이 넘는 원고료를 받는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랐지요.
2000년대 대표작 '애정의조건', '장밋빛인생', '소문난 칠공주'까지만해도 '막장'의 타이틀은 멀어 보였는데요. 2007년 '조강지처클럽'을 시작으로 '막장계'로 들어섰다는 평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또 등장인물의 이름을 독특하게 짓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형제의 이름을 혼수와 상태, 진수와 성찬으로 짓거나 배역의 캐릭터를 담아 복수, 원수, 선수, 재수, 진상, 고민중, 오만정 등으로 짓는 등의 방식이지요.
데뷔 초와 달리 갈수록 독한 설정과 과격한 전개가 많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문 작가는 시청률 40% 이상인 작품이 무려 8개입니다. 덕분에 2010년 공개된 문영남 작가의 고료는 회당 5000만 원선, 주말극이 보통 50부작 이상으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문 작가는 작품당 25억 이상을 버는 셈입니다.
현재 방영 중은 드라마 '오케이광자매' 역시 16회 만에 시청률 30%를 넘기면서 승승장구 중입니다. 불륜과 살인사건 등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한 '오케이광자매'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 간의 오해가 풀리면서 관계가 회복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막장과 가족극 사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스타작가 문영남의 저력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