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은 옛말, '긱 이코노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들이 단기적으로 무대에 세우려 섭외한 연주자를 '긱'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긱 이코노미'는 프리랜서를 뜻하는 말에서 최근에는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노동력을 주고받는 기간제 근로를 지칭하는 말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과 IT 플랫폼이 결합하면서 긱 이코노미는 더욱 활성화되고 있는데요. 반려견 견주와 도우미를 연결해 주는 미국 반려견 산책 앱 'Wag'처럼 디지털 장터를 통해 노동력과 재능, 기간제 근로의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실제로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2020년 내놓은 기사를 통해 몇 년 안에 미국에서 전 직업의 43% 이상이 프리랜서나 독립형 경제활동의 형태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긱 이코노미가 급속도로 성장 중인데, 투잡 혹은 N잡에 도전한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할 기반을 마련 중이지요.
월 2천 번다는 N잡러 등판
퇴근 후 투잡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는 직장인의 에피소드들이 이슈를 모으면서 이를 콘텐츠로 삼은 웹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했습니다. 본업 외 월수입을 확대하는 N잡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해서 기획된 카카오TV '빨대퀸'은 '빨대를 꽂을 만한' 각양각색의 꿀잡들을 직접 경험해보고 수입까지 인증한 콘셉트. 해당 프로를 기획한 이건영 PD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서른여섯이 됐는데 친구들이 만나면 주로 '부자되자'라는 얘길 많이 한다"면서 "'돈 벌자'라는 화두를 갖고 프로를 제작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해당 프로의 가장 최근 영상에는 N잡러 '드로우앤드류'가 등장해 월 수익 2천만 원을 직접 공개했습니다. 유튜브애드센스, 인스타광고, 온라인클래스, 코칭, 사내컨설팅, 쿠팡파트너스, 전자책 등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그는 소속된 직장은 없지만 자신의 재능과 노동력을 활용해 매달 10여 곳으로부터 입금을 받고 있습니다.
실제로 '빨대퀸'을 통해 공개한 그의 최근 한 달 수입은 21,860,425원. 이에 대해 드로우앤드류는 "보통 이 정도 나온다"면서 "최고 수익은 3천5백만 원이고, 돈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다 보니 어느 순간 1억이 모이더라"라고 높은 수익을 인증했습니다.
이어 드로우앤드류는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수입을 내는 데에 영어실력을 활용하는 것도 아니며 학벌도 좋은 편이 아니다"면서 자신과 같이 수익을 내는 것은 "누구나 가능할 일"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실제로 한성대학교 미대 출신인 드로우앤드류는 미국에서 UX/UI 디자이너로 일할 당시 취미로 시작한 수채화 캘리그래피를 SNS에 올렸고, 이를 본 지인이 청첩장 디자인을 부탁하면서 취미생활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자신의 재능을 온라인 강의로 만들어 판 것이 잘 되면서 새로운 수익구조도 만들어졌지요.
국내 긱 이코노미 플랫폼의 현재
미국에서 시작한 드로우앤드류의 긱 이코노미는 현재 한국으로 옮겨져 여전히 성황리에 진행 중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긱 이코노미가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기에 드로우앤드류 역시 이러한 디지털 마켓을 활용하고 있는데요. 드로우앤드류는 N잡에 도전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시간 대비 수입이 좋은 편이라며 온라인 플랫폼 '크몽'을 소개했습니다.
다양한 직종의 프리랜서들이 자신의 재능을 파는 사이트인 '크몽'에서 드로우앤드류는 전자책과 코칭 프로그램을 판매 중인데요.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퍼스널브랜딩' 관련 노하우를 기록한 전자책은 단 30페이지로 구성되어 15,000원에 판매 중입니다. 해당 전자책을 집필하기 위해 단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드로우앤드류는 현재까지 1800부를 판매하며 27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또 퍼스널브랜딩에 대해 1대1로 컨설팅해 주는 프로그램의 경우 1시간에 30만~45만 원까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는데요. 드로우앤드류 외에도 크몽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판매 중인 프리랜서들은 '안구건조를 이겨냈던 나만의 노하우(13000원)', '중고차 구매분석 및 동행(55000원)', '사랑꾼 연애 상담소(30000원)' 등 다양한 콘텐츠로 수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대학 중퇴하고 선택한 사업
2016년 이래 해마다 두 배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 중인 '크몽'은 국내 긱 이코노미의 선두 플랫폼입니다. 여전히 플랫폼을 업그레이드하고 프리랜서 전문가들을 홍보하느라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2019년 10월 기준 매출 1천억 원을 넘어서면서 올해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2011년 크몽의 베타사이트를 오픈한 후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프리랜서 마켓으로서의 플랫폼 산업 성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주인공은 박현호 크몽 대표입니다. 경남 산청 출신의 박 대표는 단국대 컴퓨터공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8년 동기들과 재미 삼아 게임 CD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차렸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용산전자상가에서 CD를 사서 우체국 택배로 배송하는 일로 시작한 것이 디지털 기기 쇼핑몰 '라밤바'로 확장되었는데,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사업은 어려워졌습니다. 그 외 PC방 관리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산업자원부가 선정한 e비즈니스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수익을 내는 데는 실패했고 연이어 도전한 창업 역시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서른셋, 지리산 자락 고향으로 돌아갈 무렵 박 대표에게 남은 것은 2억의 빚과 대학 중퇴자라는 낙인뿐이었습니다.
개발자 출신인 박 대표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며 빚을 갚아나갈 수도 있었지만 끝내 창업자로서의 끓는 피를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 탄생한 이스라엘 스타트업 'Fiverr'를 벤치마킹한 사이트를 만들었는데, 맛집 리뷰 사이트로 시작한 해당 사이트는 지역 커뮤니티로 전환했다가 현재의 프리랜서 마켓 '크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재능마켓 → 프리랜서마켓
애초에 비즈니스용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다 보니 실질적인 거래 시스템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크몽'은 수요자들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했습니다. 2012년 초반에는 5000원을 받고 모닝콜을 해주거나 상사 욕 대신 들어주기 같은 '누군가의 사소한 재능을 5000원에 산다'는 재능마켓으로 입소문을 모았는데요. 현재는 전문가와 연결하는 전문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으로 발전해서 디자인, 영상제작, 법률, 회계, 인사 등 각종 사내 업무를 지원하는 전문가와 연결하는 수준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실제로 크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재미를 요소로 한 단순 업무보다는 전문 업무 영역입니다. 마케팅이나 디자인, IT 프로그래밍 등 스몰 비즈니스 운영자라면 누구나 필요한 업무 분야인데요. 자영업자를 비롯해서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전문 영역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점 덕분이지요.
때문에 디자인이나 마케팅 분야 판매자 중에는 억 단위 매출을 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IT 분야는 거래 단가가 크다 보니 매출이 높은 편이기도 한데요.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크몽에서 발생하는 매출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전문가도 있다면서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하고 크몽에서 면접 취업 컨설팅 전문가로 활동하는 사례, 퇴사 후 일하고 싶을 때 일하다가 쉬고 싶을 땐 강원도 훌쩍 떠나 낚시를 즐기는 IT모바일 개발자, 쇼핑몰 매출 상승 컨설팅 전문가로 활동 중인 대학생 등을 소개했습니다.
다만 모든 판매자의 매출 성과가 좋은 것은 아니기에 상위 20% 인기 판매자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보완이 필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크몽 측은 특정 판매자로 쏠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첫 거래가 성사되면 거래액의 10%를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등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벼룩시장에 나온 구인광고는 일을 주겠다는 쪽이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프리랜서 마켓은 일을 하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능력을 광고하는 셈. 퇴사를 결정하고 프리랜서가 되더라도 '일자리를 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랜서 마켓의 역할은 충분해 보이는데요. 플랫폼을 통한 노동거래가 보다 안전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다면 먹고살기 위해 일에 쫓기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