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잔인한 독재자가 되기 전, 청년 시절에 가졌던 꿈이 화가라는 사실 아시나요? 유대인을 학살한 희대의 독재자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인데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의 삐뚤어진 미술 사랑이 현대 미술계에 엄청난 상처를 남기기도 했는데요. 나치가 훔쳐 간 미술품들의 행방을 TIKITAKA와 함께 만나봅시다.
히틀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풍미한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퇴폐적 미술'로 규정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한 고전적 화풍의 그림들만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칭찬했는데요. 1937년에는 뮌헨에서 퇴폐예술 전시회를 열어 자신이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전시를 위해 나치는 독일 전역의 미술관에서 650여 점의 작품을 압수해 전시한 후, 전시가 끝난 뒤에는 소각해버렸지요. 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루어진 압수를 통해 100여 개 이상의 미술관에서 약 1400명의 작가들의 작품 약 2만점이 제거되었는데요. 이를 나치의 예술 파괴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 앙리 마티스의 '그레타 몰의 초상화(1908)'를 소장해온 영국 국립 미술관이 작품 원 소유주의 후손들과 해온 법정 싸움이 미국 대법원의 항소까지 가게 될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았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이자 작품의 소유자였던 그레타 몰의 세 손자들은 미술관이 '그레타 몰의 초상화'를 반환하거나 3천만 달러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는데요. 그들은 이 그림이 1947년 2차 대전 종전 후 격변기 동안 도난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레타 몰의 남편인 오스카는 마티스로부터 이 그림을 샀지만, 전쟁 중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스위스의 한 학생에게 그림을 맡겼고 이 학생이 작품을 가지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이후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1979년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매수했는데요.
그레타 몰의 초상화(1908, 앙리 마티스)
그레타의 손자들은 '1945년 나치 시대가 끝났는데 그로부터 2년 후 외국 세력에 의해 그림을 도난당했으니 주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국립 미술관이 미국에서 상업적인 이익을 얻고 있다며 뉴욕에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뉴욕 법원은 영국 국립 미술관이 그림을 반환하지 않아도 되다고 판결했지요.
영국 국립 미술관
이 사건은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하여 도난당하거나 도용된 예술품을 되찾기 위한 많은 시도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모네, 피카소, 로댕의 작품을 포함해 수많은 그림, 조각품들이 나치에 의해 유대인 수집가들이나 상인들로부터 약탈당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나치에 의해 약탈된 미술품들은 전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원래 소유주들의 상속인들에게 반환되기도 했는데요.
2006년 반환된 '아델르 블로흐 바우어 부인의 초상(1907, 구스타프 클림트)'
지난 2018년 9월 르누아르의 '정원의 두여인(1919)'이 미술품 수집가 알프레드 와인버거의 손녀이자 유일한 생존 혈육인 실비 슐리처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작품은 1941년 프랑스 파리의 은행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중 나치에게 강탈 당한 것인데요. 이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영국 런던, 스위스 취리히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다가 201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습니다. 이를 본 슐리처가 연락을 취해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거쳐 그림을 돌려받게 된 것입니다.
정원의 두 여인(1919, 오귀스트 르누아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마티스의 그림 중 일부도 반환된 예가 있습니다. 2014년 3월 마티스의 '벽난로 앞 푸른 옷의 여인(1937)'은 프랑스 그림 수집상인 폴 로젠버그의 후손에게 반환되었는데요. 유태계 프랑스인 미술상이었던 로젠버그는 이 그림을 비롯해 162점의 그림을 은행 금고에 보관했으나 나치는 프랑스를 점령한 이듬해인 1941년 9월에 금고를 부수고 그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림은 1950년 경 헤니 온스타 아트센터가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었지만 노르웨이 정부의 지지 아래 약 70년 만에 원래 소유주의 후손에게 돌아가게 되었지요.
벽난로 앞 푸른 옷의 여인(1937, 앙리 마티스)
2013년에는 한화로 약 1조 43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약탈 그림이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이 그림들은 나치가 1930~1940년 대에 유대인 미술상에게서 약탈한 그림 1500여 점으로 파블로 피카소, 오귀스트 르누아르,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막스 베크만, 파울 글레 등 유명 현대미술 작가의 그림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변의 두 기수(1901, 막스 리버만)
그림이 발견된 곳은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라는 80세 노인의 집인데요. 2010년 9월 코르넬리우스는 스위스에서 독일로 오는 기차 내에서 세관원에게 무작위 검문을 당했습니다. 당시 그의 가방에는 9000유로(약 1300만원)가 든 봉투가 있었는데 노인이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는데다 출처도 제대로 대지 못하자 세무조사가 착수되었습니다. 2011년 봄 세무서 직원들이 그의 집을 급습해 수색을 벌였는데요. 그의 집은 월세 700유로(약 100만원)를 내는 허름한 아파트였습니다. 하지만 이 허름한 아파트의 작은 방 뒤쪽에는 그림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고 그가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이 그림들을 가끔 내다 팔았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는 평생 직업도 가지지 않고 독일의 지방자치단체에 주민등록도 하지 않은채 그림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며 유령처럼 살아왔던 것인데요.
웅크린 여자(오귀스트 로댕)
그의 아버지인 힐데브란트 구를리트는 미술품 전시 기획자이자 미술품 수집가로 나치의 예술 파괴 운동에 앞장섰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 나치가 1937년 뮌헨에서 퇴폐예술 전시회를 열었을 당시 힐데브란트가 이 전시의 준비 작업에 앞장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나치는 당시 전시된 그림의 소각을 명령했으나 그가 일부를 빼돌린 것이지요.
출처-뉴스칸
뿐만 아니라 힐데브란트는 유대인 미술품 거래상들을 협박하고 회유하며 그림들을 헐값에 사들여 악명을 떨쳤는데요. 미술품을 건네주는 조건으로 유대인 수집상들의 해외 탈출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집이 폭격 맞아 소장 예술품들이 모두 유실됐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는 작품 반환 요구를 피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이후 1956년 교통사고로 그가 숨진 후에는 그림들이 외아들인 코르넬리우스의 수중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2014년 5월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는 뮌헨의 자택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는데요. 그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작품들은 스위스 베른 미술관에 기증되었습니다. 다만 원 소유주를 확인해 후손에게 돌려주기 위한 작업이 과정 중에 있어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아 보입니다.
2017년 11월 스위스 베른 미술관에서 열린 구를리트 콜렉션 전시회(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