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자들에게 '일과 가정'의 비중은 늘 고민입니다. 일의 성과에 집중하다 보면 가정에 소홀해져서 가족과 소원해지고 그렇다고 가족에게만 매달리기에는 나의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해집니다. 특히 워킹맘에게 일과 가정은 외줄 타기보다 어려운 균형이 필요한데요.
놀랍게도 가정일을 잘할수록 사회적인 업무성과가 함께 높아진다는 워킹맘이 있습니다. 주부 역할을 잘 해내면 방송인으로서의 가치도 동반 상승한다는 주인공은 방송인 최유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과 신문편집부 활동을 경험하면서 막연히 방송 진행자를 꿈꾸던 최유라는 신문방송학과 진학을 지망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고 이듬해 신방과와 커리큘럼이 유사한 동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연기활동에 대한 큰 목표가 없는 상황에서 연극영화과 재학생이 된 최유라는 주로 무대를 만드는 스태프 역할을 자처했는데, 박신양, 유준상, 이성재 등 함께 학교를 다니던 선후배와 동기들 뒤에서 무대를 만들고 단역으로 출연하는 정도였지요.
그러던 중 대학 3학년이던 어느 날 연극무대를 설치하기 위해 못질을 하고 있던 최유라에게 한 교수가 영화 출연제의를 했습니다. "못질만 하던 내가 뭘 하겠냐"라며 거절했지만 교수는 오히려 "만날 수녀역할만 할거냐"라고 버럭 화를 냈고, 영화에 출연하는 동안 학점을 A를 주겠다며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90년 최유라는 영화 '수탉'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고 해당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까지 수상하면서 촉망받는 신인배우의 대열에 올랐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신인상을 수상하고 주목받은 최유라는 대학 재학 중에 뽀미언니 활동까지 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민 프로그램으로 불리던 '뽀뽀뽀'의 진행자 뽀미언니는 연예계에서 스타로 향하는 지름길로 꼽혔는데요. 최유라 역시 해당 프로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고 동시에 처음이자 마지막 연애의 상대까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연극영화과의 특성상 학과 활동 외에 다른 동아리 가입도 어려웠고 재학 중에 방송활동까지 시작하면서 최유라는 흔한 캠퍼스 연애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뽀뽀뽀' 출연 당시 막내 카메라맨이던 지금의 남편 맹기호 씨가 먼저 최유라에게 반했고 혼자 속앓이만 하던 중 최유라가 프로그램을 하차한다는 소식을 듣고 최유라의 차를 들이받아 고의로 접촉사고를 내면서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최유라 역시 함께 일하는 스태프로서 맹기호 씨에 대한 인상이 좋았기에 두 사람은 교통사고라는 특별한 계기를 시작으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대해 최유라는 "사람이 참 단정했다. 막내 카메라 감독이라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늘 빙긋 웃기만 하지 말을 하지 않았다. 눈길이 가는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비밀연애를 시작한 최유라와 맹기호는 방송국 7층 건물을 단둘이 손잡고 걸어 올라갈 정도로 애틋한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한 기자가 심증만으로 최유라의 '열애설' 기사를 터뜨렸고 이에 최유라는 '열애설이 아니라 진짜 열애인데' 억측이 섞인 보도에 분한 마음이 들었지요.
추측성 기사를 쓴 기자를 골탕 먹이고 싶었던 최유라는 아는 기자를 불러 남자친구와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고 "결혼한다고 해주세요"라고 말했고 다음 날 실제로 결혼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결혼 발표를 한 셈. 그리고 최유라는 첫사랑 남편과 1991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결혼 이후 최유라는 본인이 원하던 자리를 찾아 라디오 진행자로 돌아갔습니다. 영화배우로 먼저 데뷔해서 라디오 진행자로 자리를 옮긴 특이한 이력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진행자의 꿈을 찾아 자리를 잡은 셈.
1995년부터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진행을 맡은 최유라는 남자 진행자가 수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프로그램의 메인 진행자로 자리를 지켰고, 나이대를 불문하고 새로운 상대와도 늘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해당 프로를 진행하는 동안 최유라는 두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워킹맘으로 일을 이어갔는데, 특유의 밝은 목소리와 안정적인 진행 실력은 물론 생활 속에서 나오는 경험담과 웃음으로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에 대해 최유라는 "내 꿈은 내 가족과 같이, 내 가족이 바라보는 방향 안에서 찾고 싶은 거고 또 찾아가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가정생활과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연기 활동을 접고 라디오 진행에만 집중했고 스스로를 "방송인인데 가정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주부인데 방송을 잘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주부들의 워너비가 된 최유라는 2000년대 후반 주부를 타깃으로 하는 홈쇼핑 관계자들에게 다수 러브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홈쇼핑을 한 번도 본 적 없던 최유라는 '어떻게 남의 말을 듣고 사느냐'라는 생각에 1년여를 고민했고 "내가 쓰는것, 먹는 것, 우리집에 있는 것부터 하겠다"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호스트가 직접 상품 선정에까지 개입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 후, 최유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홈쇼핑 무대에 섰습니다. 기존에 홈쇼핑을 통해 유통되는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최유라가 직접 써보고 좋다고 판단한 제품을 홈쇼핑 판매로 연결하다 보니 초반 2~3년 동안은 업체 선정에 골머리를 앓았지요.
특히 해외 업체들의 경우에는 홈쇼핑에 대해 저가 물건을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인식해서 판매를 허락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요. 영국 다이슨 본사에 가서 직접 확인하고 공장을 둘러보는 노력까지 다한 끝에 신제품 입점에 성공한 최유라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습니다. 이후 다이슨은 모든 신상품을 백화점과 최유라에게만 주겠다는 방침까지 세웠습니다.
단순한 쇼호스트가 아니라 기획부터 디렉팅까지 모두 참여하는 최유라는 해외의 주방가전 관련 박람회에 참석해서 업체와의 계약까지 직접 성사시킵니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에 최유라는 홈쇼핑 방송 도중 제품의 단점까지 다 말해 제작진들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최유라의 솔직함과 정직함에 더 반했고 "상술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믿음이 간다"라며 최유라를 하나의 브랜드로 받아들였습니다.
반면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는 일을 절대로 안 한다는 최유라는 가족 이야기가 주가 되는 토크형 프로그램에서 말할 만한 에피소드가 없어서 출연을 거절한 바 있는데, 이 때문에 욕을 듣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대해 최유라는 "'아니, 세바퀴를 왜 안 해? 세바퀴 웃기다 이거지'라는 말도 들었다. 혼자 잘난 척한다더라"면서 "진짜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건데"라고 속상한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이어 2017년에는 27년 만에 라디오 진행도 내려놓았습니다. "쉬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라디오를 떠난 최유라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최근 "내가 그만두고 뒤를 이어 내 시간에 DJ 하는 사람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다"면서 "미련이 1도 없었다"라고 전했습니다. 오히려 라디오를 그만둔 이후 라디오를 진행하던 오후 4시에 시장도 나가고 친구도 만나면서 여유 있게 보낸 시간에 만족했지요.
대신 방송이 아닌 쇼호스트로서 활동에 집중한 최유라는 2009년 시작한 홈쇼핑이 10년을 넘기면서 현재까지 매출 1조 5천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유라는 "그렇다고 하더라"라고 인정하면서도 "내 수익은 아니다. 난 그냥 월급 받는다"라고 담담하게 답변했는데요. 홈쇼핑 매출 비결에 대해서는 "홈쇼핑에서 오프닝을 한다. 20분 정도 지나면 오히려 시청자가 상품의 가격과 구성을 물어본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물건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한편 과거 최유라는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부추긴다'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방송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주부로서 완벽하게 살림을 해내는 모습이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 하지만 최근 방송에서 최유라가 회상한 지난 시절은 슈퍼우먼의 이미지와 달라 보입니다. 라디오 30년, 홈쇼핑 11년을 했다는 최유라는 "바깥 일을 다 해놓고 집안일을 해야 한다. 밤 9시쯤 되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그냥 울었다. 너무 슬퍼서가 아니라 힘들어서 울었다"면서 "모든 엄마들이 쉴 수 없다"라고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한 고단함을 털어놓아 공감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