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커서 엄마 아빠들의 대통령이 됩니다.

좋은 리더들은 적절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통솔합니다. 그리고 강압적이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카리스마는 보통 자기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나오게 되지요.

최근 우리나라에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리더들의 활약이 눈에 띕니다. 누가 임명한 것도, 선출한 것도 아닌 데다 특별한 고위 직책을 가진 인사가 아님에도 누구나 인정한다는 '선생님들'.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한민국 4대 선생'을 만나봅시다.


엄빠들의 대통령

오은영 박사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공부를 잘했다. 가정형편도 아주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평탄했다"라며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어린시절을 설명한 오은영 박사는 사실 특별한 계기로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중1 때,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암은 죽는병'으로 인식되던 시기라 아버지는 6살 터울 오빠와 오 박사에게 통장까지 내밀며 "대학 등록금까지는 무리 없을 것"이라며 "아빠 없더라도 어머니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라는 유언까지 남겼지요.

이때 오 박사는 신에게 "아버지 건강만 되찾아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게요. 그래서 힘들고 아프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전해진 것인지 오 박사의 아버지는 위암 초기여서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었고 오 박사는 실제로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후 오 박사는 "몸이 아픈 사람보다는 마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정신과를 선택했고 현재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특히 오 박사는 2005년 방영을 시작해서 10년 동안 이어온 육아교양프로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는데요. 방송 초반만 하더라도 '사랑의매'라는 말이 익숙하던 것과 달리 오 박사가 꾸준히 "아이를 혼내고 때리는 것은 훈육이 아니다"라고 전파한 덕분에 '훈육'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반면 오 박사의 아들은 시간이 지난 후 "엄마, 사실 나는 '우리아이가달라졌어요'를 안 봤어요. 내 옆에 있어야 되는 내 엄마가 왜 저 집에 가있지,하는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말할 정도로 그 시기에 바쁜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 시간을 보냈지요.

또 하나 그 시기에 오 박사에게 찾아온 위기는 건강 문제였습니다. 2008년 오 박사는 담낭과 대장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고 담당의에게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 시한부"라는 말을 듣고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마취 직전까지 오 박사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떠올리며 '좀 더 놀아줄걸'하는 후회를 했지요. 다행히 담낭의 종양은 암이 아니었고 대장암은 초기였던 덕분에 수술 단 4일 만에 진료실에 복귀한 오 박사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어려움을 맞이했습니다.

아픔 몸을 이끌고도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무리해서 복귀한 오 박사는 환자들의 재촉하는 말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된 이래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선생님, 이거 해주세요", "우리 애는 왜 안 낫나요"하는 말을 듣고 '아, 내가 이래서 암에 걸렸나'라는 생각까지 든 것이지요. 그 마음을 무너뜨린 건 병원에 다니던 아이의 엄마가 내민 반찬 통, 깻잎무침부터 장조림까지 6개 통을 가득 채운 밑반찬을 들고 온 보호자는 "원장님, 너무 바빠서 식사를 잘 못 챙기더라고요. 밥 꼭 챙겨드세요"라고 말했고 이에 오 박사는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는 오 박사는 이후에도 밤 10시 넘도록 환자를 보는 열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쇄도하는 무료특강 요청에 응하고 방송을 통해 전국 엄마아빠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한편,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진료실로 돌아가지요.


요식업계 대부

백종원 대표

오은영 박사와 동갑내기이면서 카리스마로는 오 박사 못지않은 또 한 명의 리더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는 백 대표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 친구 형이 하는 중고차 장사를 따라다니며 소위 '삐끼'로 사업의 첫 경험을 했습니다. 자타공인 타고난 사업가 백 대표는 차에 대한 정보를 외워 일을 시작한 지 단 40분 만에 첫차를 팔았고 이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6대의 차를 계약시켰습니다.

이후 충남교육감 출신인 아버지의 반대로 사업가의 꿈을 접고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백 대표는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남다른 사업가 기질을 드러냈습니다. 포장 배달이 갓 생겨난 당시 상황을 이용해서 가게 주변 아파트에 전단지를 직접 돌린 것인데, 200장 전단을 만들어 돌리지 마자 주문은 폭주했습니다. 마침 건강 상 이유로 치킨집 사장님이 가게를 내놓으면서 해당 가게를 인수해 직접 운영한 백 대표는 대학 3학년 때까지 3개 가게를 운영하면서 15억 원의 자산을 형성했지요.

하지만 쉽게 번 돈은 쉽게 잃는 법이었던지 백 대표는 대학시절 사업으로 번 돈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가 잃었고 장사를 못마땅해 하시는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려 군에 입대했습니다. 포병장교로 입대한 백 대표가 간부식당의 취사 담당으로 보직을 변경한 것은 꽤 유명한 일화인데요. 백 대표는 비가 오는 날 배추를 저가에 대량 구매해서 염장해서 식재료비를 아끼는 등의 방법으로 급식의 질을 높였고 스스로도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만 해도 음식장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터라 제대 후 백 대표는 요식업이 아닌 건설자재 무역업을 시작으로 본격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시에 운영 중이던 무역회사 근처에 쌈밥집을 열어 부업으로 운영했는데, IMF로 인해 백 대표가 주력으로 삼던 목조주택 사업은 망했고 이후 백 대표는 쌈밥집을 통해 사업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하루 4시간만 자며 노력한 끝에 쌈밥집을 흑자로 돌린 백 대표는 연이어 내놓은 한신포차가 대박을 치면서 이자를 갚을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백 대표는 자신의 이름 석자가 브랜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사회적 리더가 되었지요.


강형욱 대표

오은영 박사가 전국 엄마아빠들의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 개엄마들의 대통령은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입니다. 66년생인 오 박사와 무려 19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전혀 밀리지 않는 강 대표의 카리스마는 자기분야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으로부터 나오는 듯한데요. 강 대표가 중학교 시절 일찍이 반려견 훈련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강 대표의 아버지는 개농장을 운영했고 당시 일반적인 개농장들과 마찬가지로 개들이 지내는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케이지를 3~4층으로 쌓아두고 배설물이 매일 넘치는 상황에서 강형욱은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매일 했지요. 또 아버지 몰래 개들을 산책시키다가 혼났고, 초등학생 때부터 유기견 보호소에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대해 강 대표는 "우리 아버지는 사실 장삿속도 모르고 너무 바보같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 "강아지를 잘못 입양 보내면 혼자 소주를 연거푸 들이켜던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기억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강 대표는 반려견에 대한 인식과 환경의 변화를 꿈꾸면서 반려견 훈련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실제로 중3 때부터 사설훈련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훈련사 교육을 받기 시작한 강 대표는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반려견 훈련사로 일했습니다. 다만 당시 강 대표가 찾다간 훈련소는 압박 훈련을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강 대표 역시 국내의 시스템을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2007년 국내의 압박 훈련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린 강 대표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500만 원을 들고 노르웨이의 '안네 릴 크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안네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꿈꿔오던 반려견 교육방식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지요. 이후 1년 6개월 동안 긍정훈련법을 배운 강 대표는 국내로 돌아와서 "개를 안 짖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짖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15년부터 출연한 반려견교육프로 '세상에나쁜개는없다'를 통해 반려견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일명 '개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강아지똥을 먹은 적도 있다"라고 고백한 강 대표는 현재 반려견행동교육기관 '보듬컴퍼니'의 대표이자 반려견행동전문가로 활약하면서 우리나라의 반려견 문화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연영과 출신 역사선생님

설민석 대표

좋은 선생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관심이 없던 분야에 흥미가 들 정도로 흡입력 강한 수업을 진행한다면 '매력적인 선생님'이라는 점에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렵게만 느껴져서 가까이할 수 없었던 '역사' 분야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만든 역사선생님 설민석 대표라면 충분히 '좋은 선생님' 아닐까요?

설민석 대표는 4.19 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 하야를 권고한 시민대표 6명 중 한 사람이자 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한 설송웅 전 의원의 아들입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 아버지의 영향 덕분이었을까요? '사극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특별한 꿈을 가진 설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공연을 직접 연출하면서 꿈을 키웠는데요. 당시 전국대회를 휩쓸면서 연출가로서 성공을 확신한 설 대표는 대입에 실패하면서 큰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서빙과 세차장, 막노동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학원을 다닌 설 대표는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고 우연히 본 뮤지컬 '명성황후'를 통해 역사공부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명성황후 뮤지컬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걸 연구하기 위해 시작했다"라며 본격 역사분야에 뛰어든 계기를 설명한 설 대표는 2002년 온라인교육기업 '이투스'에서 역사강의를 하면서 역사강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메가스터디, EBS 등을 통해 인기강사로 등극한 설 대표는 예능프로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쌓게 되었는데요. 연극영화과 출신답게 강의 중간중간 연기까지 선보이며 눈을 뗄 수 없게 이어가는 강의 덕분에 역사에 관심이 없던 대중들까지도 '역사 마니아'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사교육기업 '단꿈교육'의 대표이기도 한 설 대표는 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역사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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