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CSI가 인기를 끌면서 '과학수사'는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가 화성사건 9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는데, 이 과정에서 DNA 검출을 통한 증거물 확보가 주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상대로 대면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5차, 7차, 9차에 이어 4차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에 대해 알렸고 사실을 듣게 된 이춘재는 과학수사의 압박을 못이기고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
이번에 확보된 이춘재의 DNA는 지난 1986년 12월 발생한 4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려 33년 전 증거품에서 범인의 DNA를 확보한 셈인데요. 다만 DNA를 통한 수사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DNA를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거품이 훼손된 상황일수도 있으며 의심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DNA 검출만으로 그 범위를 좁히기 어렵지요.
특히 고인을 대상으로 신원을 밝혀내는 데 있어서는 DNA 검사와 더불어 가장 주요한 비교대상이 되는 방식이 바로 법치의학입니다. 치아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천차만별인데다 신체 장기 중 가장 견고하고 안정적이어서 죽은 뒤에도 거의 변형이 없기에 치아를 조사해 역추적해보면 '그 사람이 누군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우선 치아만 확인하면 모든 변사체의 연령대는 계산해낼 수 있습니다. 치아의 겉면, 희고 딱딱한 에나멜질의 마모를 추적해서 연령을 밝혀내는 것인데, '교모도'라고 불리는 법치의학계 공식을 활용하면 대략적인 연령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치아의 에나멜질 가장 안쪽에 있는 '치수'라는 조직은 나이가 들면서 너비가 좁아지는 특성이 있어서 이를 통해 연령대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또 치과치료를 비롯한 모든 진료차트는 법적으로 10년 동안 보관해야 하므로 죽은지 10년 내의 사람이라면 진료차트의 기록과 변사체의 방사선 사진을 비교해서 신원확인을 하는 것도 가능한데요. 의심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어렵지 않게 확인이 가능하겠지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규모 재난의 시신 식별을 위해서도, 국민들의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법치의학은 필수적인 학문입니다. 특히 데이터가 많을수록 정확한 분석이 가능한만큼 연구인력이 많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국내 1호 법치의학자가 탄생한 지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법치의학자는 단 7명뿐입니다.
처음 법치의학자가 탄생은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내 1호 법의관인 문국진 고려대 의대 법의학과 명예교수는 당시 딸을 데리러 한강나루터에 나갔던 엄마가 시체로 발견된 일명 '한강나루터 살인사건'을 조사했는데요. 최초 수사에서 경찰은 사체에 난 이빨자국을 보고 인근 공사장 인부 가운데 성도착자 짓이라고 짐작했으나 문 교수는 치흔을 통해 살해자 남편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해당 사건은 과학수사의 쾌거라며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문 교수를 불러 원하는 걸 다 해주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에 대해 문 교수는 "진급을 원하냐, 포상을 원하냐길래 대뜸 법치의학자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내무부장관한테 전화를 돌리더니 바로 법치의학자를 만들라고 하더라. 그 사람이 바로 1호 법치의학자이자 6대 국과수 원장을 한 김종열 원장이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언론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것과 달리 법치의학이라는 직업은 크게 성장하지 못한 편입니다. 법치의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구강내과학교실 수련을 받으면 되는데, 치과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며 병원 운영자가 되는 대신 법치의학자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법치의학자들의 설명은 하나같이 "어렵다"입니다. 200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관으로 입사해서 무려 10년동안 혼자서 국과수 법치의학실을 지킨 이상섭 법치의학실장은 "드라마, 영화에서 포장이 잘 된 모습만 봐서 좋은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상당한 학문적, 정서적 수련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법치의학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기에 이상섭 실장은 2013년 라오항공 여객기 추락사고 때 한국인 세 명을 포함해 44명이 사망한 상황에서 개인식별단장으로 파견되어 이틀만에 세 명을 모두 찾았습니다. 그 외에도 이 실장은 뉴지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등 대규모 재난에 파견되었고 벨기에 루븐가토릭대학에 방문교수로 재직하는 등 국내 법치의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전파했습니다.
9년째 국과서 법치의학실을 혼자 지키던 이상섭 실장은 2015년 과학수사와 더불어 법치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한 인터뷰를 통해 안타까운 심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개원가 사정이 어려워서 그런지 국과수 입사에 대한 문의가 왕왕 들어오는데, 한 명도 예외없이 '자리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라고 말을 시작한 이 실장은 "법치의학이라는 학문을 시작하면 임상으로 복귀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 중차대한 결정을 하면서 왜 자리부터 따지는지 모르겠다. 학문의 본질보다 자리부터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후배들이 많다는 점이 안타깝다"라고 전했지요.
그리고 2016년 국과수의 법치의학실에는 10년 만에 인력이 충원되어 총 3명의 법의관이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국내 법치의학자는 전국에 단 7명 뿐인 상황인데요. 이에 대해 지난해부터 국과수에서 근무 중인 김의주 법의관은 한 예능프로에 출연해서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법치의학자'라는 직업의 의미를 풀어놓았습니다.
촬영 당일에도 4건의 부검을 소화하고 왔다면서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무서운 건 산 사람이 더 무섭다"라고 현명한 답변을 내놓은 김의주 법의관은 치대 재학 중 개원이 아닌 국과수를 선택한 데 대해서도 진정성 있는 답변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치과)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어떻게 살겠다'가 보인다. 페이닥터를 하다가 개원을 하고 평생 손목이 나갈 때까지 진료를 보는 것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평생 만족할까?'란 생각이 계속 들더라"면서 "이 일을 하면 내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동기들의 반응에 대해 "조롱하는 애들도 있었다"면서 "'개구리 소년 찾는 거 하러 간다며'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전했는데요. 그럼에도 "치과의사가 느끼지 못하는 것 뿐만아니라, 전국 7명만 하는 일을 하고 있잖냐. 그거 하나만으로 굉장한 사명감을 느낀다"라고 말해 당당한 소신을 드러냈습니다.
한편 확고한 소신으로 법치의학자의 길에 들어선 김의주 법의관조차도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적극적인 추천을 하지 못했는데요. 그는 "의사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률은 없다"면서도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하고 지원해야 한다"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했습니다. 앞서 수입에 대한 질문에 김의주 법의관이 "동기 중에 제일 못버는 친구도 내 수입의 두 배를 번다. 네 배를 버는 친구도 있다"라고 말한 바 있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바.
지능형 범죄와 대규모 재난에 대비해 반드시 필요한 법치의학. 경제적 보상은 적지만 직업적 사명감과 일에 대한 보람을 통해 의미를 찾으라고만 요구한다면 그 명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