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자의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자신의 약점에만 집중하게 되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만의 강점을 찾아서 재능으로 부각시킨다면 최고의 콤플렉스 극복법이 될 텐데요. 학창 시절 운동신경이 부족했던 탓에 자존심이 상했던 남학생은 "나에게 없는 것을 질투하기 보다 나에게 있는 재능을 키워보자"라는 생각으로 '이것'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못하는 운동을 잘하기 위해 매달리는 대신 자신이 잘하는 '음악'에 집중하는 똑똑한 전략을 쓴 아이는 바로 싱어송라이터 이적입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은 지금도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작사를 빨리하는 편"이라고 말하는 이적은 실제로 10~20분 만에 가사를 끝내고 단번에 쓴 가사가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지요.
이적의 남다른 작문 실력은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지기 이전,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중3 때는 엄마의 생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선물 대신 편지에 난생처음으로 쓴 시가 한국문학계 거장에게 극찬 받는 일도 있었는데, '엄마의 하루'라는 제목의 이 시에서 이적은 집안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어머니의 고단한 하루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엄마의 하루' - 이동준 (본명)
습한 얼굴로
am 6:00 이면
시계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통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놓고
조용히 허무하다.
따르릉 전화 소리에
제2의 아침이 시작되고
줄곧 바삐
책상머리에 앉아
고요의 시간은
읽고 쓰는데
또 읽고 쓰는데 바쳐
오른쪽 눈이 빠져라
세라믹펜이 무거워라
지친 듯 무서운 얼굴이
돌아온 아들의 짜증과 함께
다시 싱크대 앞에 선다.
밥을 짓다
설거지를 하다
방바닥을 닦다
두부 사오라 거절하는
아들의 말에
이게 뭐냐고 무심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주저앉아 흘리는 고통의 눈물에
언 동태가 되고
아들의 찬 손이 녹고
정작 하루가 지나면
정작 당신은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되뇌시며
슬퍼하는
슬며시 실리는
당신의 글을 부끄러워하며
따끈히 끓이는
된장찌개의 맛을 부끄러워하며
오늘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무심한 아들들에게
되뇌이는
'강철 여인'이 아닌
'사랑 여인'에게
다시 하루가 길다.
당시 이적의 어머니는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39살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때문에 남편과 세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자신의 공부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지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본 둘째 아들 이적이 이에 공감하는 시를 쓴 것인데, 이후 이적의 어머니인 박혜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삶의 여성학'에 해당 시를 실었고 이를 읽은 작가 박완서 선생이 "중3 짜리 남학생이 엄마의 삶을 그리도 정확하게 포착했느냐"라며 감탄을 거듭한 것입니다.
시의 구절에서 드러나듯 박혜란 교수는 세 아들을 키우며 늘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되뇌며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결과적으로 '공부하는 엄마'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대해 이적은 "어머니가 공부를 하시니 큰 책상을 사셨다. 아버지는 노래 좋아하시고 술 좋아하시고 잘 안 들어오셨다. 그러니 삼 형제들이 어머니 옆에 있고 싶어 했는데, 어머니가 책을 보시니까 같이 보게 됐다"면서 "어머니는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 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공부 잘하면 뭘 해줄 거냐'라고 물으면 '네가 좋은 거지 내가 좋은 거니? 공부는 너를 위한 거지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박혜란 교수는 막내아들이 대입을 준비하던 고3 시절에 자신의 공부를 위해 중국 유학을 떠나기도 한 간 큰 엄마였습니다. 그럼에도 큰 아들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해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막내는 서울대 졸업 후 MBC 드라마 PD가 되었지요. 삼 형제 중에서는 이적이 가장 '한량'의 끼가 있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자작곡을 써서 수련회 장기자랑 반대표로 연주한 이후 여학생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편지 대신 직접 그린 악보를 선물하는 등 '운동은 못하지만 인기 있는 남학생'이 되는 비법으로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에 빠지기 시작한 고등학생 이적은 가족들에게 "음악 활동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자유방임형이던 어머니조차 "나중에 음악을 해서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냐. 대학은 간 후에 알아서 하라"라고 설득했지요.
부모님의 설득으로 입학한 학교는 놀랍게도 서울대 사회학과입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자 했던 입시생이라기에는 놀라운 성적인데요. 이에 대해 이적은 "(서울대는) 신문에 나는 사람만 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제일 하잘것없이 여기는 두 살 터울 우리 형이 간다는 생각에 공부에 불이 붙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형 못지않은 성적을 받은 이적은 서울대 면접 당시 지원 동기를 묻는 면접관에게 "대학가요제 나가려고 지원했다"라는 답변을 내놓는 플렉스를 선보였지요.
실제로 이적은 서울대 입학 후 가수가 되기 위해 각종 오디션과 가요제에 참가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직접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중에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동생 김진표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해서 1995년 그룹 '패닉'으로 데뷔했습니다. 당시 김진표는 고등학생이었는데, 김진표의 부모님이 "공부 잘하는 형 이적에게 공부 좀 가르쳐주라고 부탁했더니 같이 음악을 하더라"라며 배신감을 느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지요.
김진표의 부모님에게는 안타까운 일일지 모르나 두 사람의 음악은 한국 가요계에서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1집 수록곡 '달팽이'와 '왼손잡이'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시대적 공감을 받았고 2집은 파격적인 콘셉트로 대중적인 주목은 미흡했으나 '한국의 명반 100위'에 들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요.
이후 이적은 김동률과 함께한 '카니발', 유희열과 함께한 '토이' 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협업하면서 성공적은 결과물을 냈는데요. 특히 '거위의 꿈', '비누인형' 등 이적이 직접 쓴 가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좋은 가사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소설집 '지문사냥꾼'을 출간해서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했고, 2017년에는 그림책 '어느날'을 통해 자신의 자녀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을 차근차근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가수로서도 작가로서도 '음유시인'이라는 애칭을 참 잘 어울리는 이적은 아내와의 사랑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대표 축가인 '다행이다'를 만들어 프러포즈에 사용한 것. 이적은 절친한 친구의 처제로 현재의 아내 정옥희 교수를 처음 만난 후, 다음 만남을 이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가수 김현철의 아내 친구들의 모임에서 우연히 정 교수와 재회했습니다.
이날 이적은 '내가 결혼한다면 이 사람과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설 정도로 정 교수에게 반했는데요. 술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후배 한 명도 정 교수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적은 그날 밤 바로 정 교수에게 고백했고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4년여의 열애 동안 권태기도 없이 열애를 이어갔지요.
특히 연애 4년 차에 정 교수가 박사과정 때문에 외국에 가면서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해야 했는데, 몸이 멀어진 후 더욱 애틋해진 두 사람은 유학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유학 도중에 결혼을 했습니다. 이때 이적이 프러포즈를 위해 만든 곡이 바로 '다행이다'. 이적은 멀리 유학 중인 정 교수의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어 노래를 들려줬고 이후 결혼식 당일에도 직접 축가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때문에 이적은 "'다행이다'는 내 음원만 있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다. 이적 버전만 있으면 좋겠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에게 바친 곡이고 내 결혼식에서도 불렀던 노래라서 리메이크를 안 하길 바란다"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적은 아내에 이어 두 딸을 위해서도 특별한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불렀습니다. 어린 시절 응가를 선전포고하는 아이들을 위해 '응가송'을 만들어 불렀고, '졸업송' 역시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자작 동요입니다. 2017년 발표한 곡 '나침반'도 두 딸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지요.
한편 사랑꾼에 딸바보가 된 이적이 다시 한번 패닉 시절의 반항기를 담은 곡을 들고 나온다는 소식에 팬들은 반가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돌팔매'라는 제목의 이 곡은 "누구랑 다른 의견을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그런 친구를 대신해 싸우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하는데요. 15년 만에 김진표와 재회한 곡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려던 한량이 서울대에 입학하고, 반항적인 자작곡으로 사랑받던 가수가 어느새 사랑꾼이 되고, 딸바보의 다정다감한 아빠가 다시 한번 사회풍자적인 곡으로 돌아온 이적의 실제 삶이야말로 그 어떤 작문보다도 흥미롭고 아름다운 이야깃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