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첫 오르가슴 경험을 가사로 써서 대박 났다는 작사가

자신의 첫 오르가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요?
연애와 결혼 그리고 성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자연스러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자들의 '성' 이야기는 조심스럽고 불편한데요. 숨길수록 위험하고 드러낼수록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용기 내기 어려운 이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한 덕분에 흥행까지 성공한 작사가가 있습니다.

과감한 선택과 아름다운 표현력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작사가 김이나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김이나는 어머니가 일을 하시느라 유년기는 대부분 할머니와 보냈고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있는 미국에 가서 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일찍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김이나는 음악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잠시 접어둔 채 졸업 후 곧바로 '사브로즈마운터 코리아'라는 계측기 납품 회사에서 마케팅팀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이후 벨소리, 컬러링 등을 만드는 모바일 콘텐츠 회사인 '내가 네트워크'로 이직하면서 음악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지요. 벨소리를 만들어 SKT 등 통신사에 납품하고 가수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연계하는 등의 일에 뛰어들면서 ' 언젠가는 저 음악산업 안에 직접 들어가겠다'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김이나는 당시 가사 습작을 하거나 작곡과 편곡에 관심을 두고 나름의 음악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작곡가 김형석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가 잠깐 스치듯 마주친 자리에서 "선생님께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며 당돌한 인사를 건넸고 이에 김형석은 "그럼 네가 실력 한번 보여줘 봐"라며 김이나를 자신의 녹음실로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김이나의 피아노 실력을 본 김형석은 "이 수준으로는 프로에 레슨받을 단계가 아니다"라고 평했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김이나는 "선생님 콘서트 갔을 때 찍은 사진이 많은데 제 블로그에 올려뒀으니 와서 구경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녹음실을 나왔습니다.

실제로 김이나의 블로그에 들어가 일기와 습작 등을 살펴본 김형석은 "글을 재미나게 쓰고,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은데 작곡보다 작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신인가수의 곡 작사를 맡겼지요. 이 곡이 바로 작사가 김이나의 데뷔작인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입니다.

다만 작사가라는 직업이 의뢰를 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다른 직장 없이 작사에 '올인하겠다'라는 생각은 쉽지 않았고, 김이나 역시 오랜 시간 직장 생활과 작사 활동을 병행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이어온 직장 생활은 김이나에게 작사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이 되는 한편 음악 동지이자 평생 반려자를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대리의 직급이던 김이나는 본인이 속한 마케팅 팀의 팀장에게 반했습니다. 상사로서 존경심이 들었고 일하는 모습을 보며 섹시하다는 감정이 들었지요. 이에 김이나는 "나 우리 팀장님이랑 6개월 안에 사귈거야"라며 선포하고 다녔는데요. 그 덕분인지 실제로 두 사람은 곧 연인으로 발전했고 2006년 결혼까지 골인했습니다.

결혼 후 작사가로서 김이나의 활동은 훨씬 활발해졌습니다. 여전히 회사를 다니던 중이었지만 각종 드라마의 OST는 물론 브라운아이드걸스와 만나면서 시너지를 내기 시작했지요. 이에 대해 김이나는 "난 안정된 환경에서 창작이 나온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안정을 느꼈다"라며 다작의 비결로 결혼을 꼽기도 했는데요. 덕분에 월급보다 저작권료가 더 많았진 2007년, 김이나는 결혼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전업작사가가 된 이후 김이나의 활약은 열거하기 입이 아플 정도입니다. 브아걸 '아브라카타브라', 아이유 '잔소리', '좋은날', '너랑나', '분홍신', 이선희 '그중에 그대를 만나' 등 수많은 히트곡을 포함해 470여 곡을 작사했고 저작권료는 억 단위로 알려졌지요.

특히 남편 조영철이 회사를 그만두고 음악 PD로 전업하면서 김이나는 작사가로서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요. 김이나는 "내가 작사가로서 앨범 콘셉트 전반에 관여하게 된 것에는 남편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편은 음반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이 자기 역할 이상의 무언가를 하게끔 유도한다"라며 남편의 영향력을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조영철이 프로듀서를 맡고 김이나가 작사를 담당하는 일명 '조영철 사단'은 음악계에서 히트 메이커로 불리는 조합이기도 합니다. 그 대표작으로 가인의 앨범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특히 가인의 두 번째 솔로 앨범 타이틀곡인 '피어나'는 작사가 김이나의 역량이 마음껏 발휘된 작품입니다.

'피어나'는 '여성의 첫 오르가슴'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담아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이나는 자신의 저서 '김이나의 작사법'을 통해 "'피어나'는 어떻게 보면 첫 경험의 이야기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첫 오르가슴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자는 첫 경험에서 대부분 첫 오르가슴을 느끼기 힘들다. 현실은 그냥 아플 뿐"이라면서 "이 곡은 굉장히 노골적인 테마이지만 화자를 '어떻게 해보려는'심리를 자극하기보다는 화자가 스스로 사랑스러워 보여야 하는 이야기였다. 뮤비 속 자위행위 장면으로 말이 많았지만, 나는 그 장면이 자기 몸에 대해 알게 되는, 스스로 깨어나는 순간을 상징하는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피어나'는 일명 '깡고리즘'을 통해 재조명 받으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여성의 욕망을 아름답게 표현한 곡'으로 호평받고 있기도 한데요. 최근 코스모폴리탄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김이나는 "여자는 서툴러야 하고, '이럴 때 너무 좋아'라고 말하면 너무 밝히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보이지 않는 섀도복싱을 마주한다"면서 "오르가슴과 단순한 흥분을 헷갈리거나 모른 채로 있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답답했다"라고 전했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김이나는 많은 여성들에게 '야하고 지적인 언니' 이미지로 사랑받는다는 평가에 대해 자신이 믿을 만한 언니인지 모르겠다면서도 "10~20대 때 너무 불안정한 자아였고, 우여곡절의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견고한 30대를 보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라고 20대 여성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응원을 보냈습니다.

가사나 인터뷰, 혹은 방송을 통해 직접 전하는 김이나의 말이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니겠지요. 다만 불안정한 20대를 먼저 지내본 언니로서 "그때 누군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줬더라면"이라는 진심을 담아 전하는 말이니만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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