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아이돌 그리다가 웹툰 작가 됐어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나 취미가 직업이 되는 삶을 꿈꾸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특히나 예술 계통 분야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보다는 취업을 통해 회사가 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되는 일이 많지요.

어린시절 만화를 보고 따라 그리기를 즐겼다는 인터뷰의 주인공 역시 '그림 그리기'라는 취미일 뿐 직업이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나섰다가 오히려 자신의 진로에 확신을 가지고 공부하던 과정을 중단했다는 주인공은 현재 원하는 꿈을 이루었을까요?

꿈을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린 주인공은 최근 완결한 웹툰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의 재림 작가입니다. 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이미 사전제작된 드라마까지 있는 상황이라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요. 이런 부담을 극복하고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재림 작가는 놀랍게도 이번 작품이 웹툰 작가로서 데뷔작이라고 하네요.


▷ 자기소개를 해달라

▶ 네이버 수요 웹툰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 작화를 맡은 재림입니다. 얼마 전에 완결이 나서 이제 백수가 되었네요 하하.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어린시절 어떤 아이였나
▶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보거나 그리는 걸 좋아했다. 부모님이 만화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사 오시곤 했는데 꽤 집중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빨간 모자와 늑대>, <백설공주>, <핑구>를 본 세대인데, 화면 속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게 신기했고 예쁘다고 느꼈다. 유치원 때 그림으로 퀴즈를 푸는 ‘피코’라는 게임을 즐겨 하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기억도 있다. 사실 그때부터 무언가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애들끼리 모여서 한 명씩 돌아가며 ‘릴레이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맥락 없고 유치한 얘기들이겠지만 그래도 그땐 나름 진지했다.
학창 시절엔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였고 수학, 영어, 국어보다는 미술 시간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학교 끝나면 티비를 틀고 <디지몬 어드벤처>, <슈가슈가 룬>, <달빛천사> 등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즐거웠다.

어린시절 따라그린 만화 속 캐릭터들

▷ 어릴 때부터 만화가를 꿈꿨나
▶ 만화를 좋아하면서도 '만화가가 돼야겠다.'라는 생각은 안 했다. 어린 마음에 만화가는 절대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소비는 할 수 있어도 내가 스스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리고 실제 직업을 구할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림은 취미일 뿐,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사무직으로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디자인 계통으로 취업을 준비했었다고? 진로의 방향을 바꾼 계기가 있나
▶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 후 디자인 쪽으로 진로를 선택하겠다"라고 마음을 굳히면서 졸업 직후에 연계 과정까지 등록했다. 그런데 막상 더 배워 보니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밌었다. 그리고 앞서 디자인 계통으로 회사에 취업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바라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나는 자유롭게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취업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나만의 길을 걷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거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즐겁게, 열심히 다녔다. 수석 장학금도 받고, 공모전 수상에 자격증도 몇 가지 땄다. 비록 진로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 열심히 했던 게 다 밑거름이 되어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 웹툰작가에 도전하기 위해 학교까지 그만두는 결심을 할 당시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 대학교를 그만두기 전에 교수님과 1:1 상담을 했었는데, 많이 걱정해 주셨다. 아무래도 디자인 계통에 비해 일러스트나 웹툰 쪽은 '모 아니면 도'인 일이라서 험난한 길이 될 거라고 걱정하신 거다. 그럼에도 확신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셨다.
주변 지인들 역시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했고, 부모님도 많이 우려하셨는데, 내가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이 모두 말리기보다는 내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준 덕분에 확신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다.

▷ 웹툰작가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으면서도 반대로 생각하면 따라 할 만한 매뉴얼이나 모범답안이 없어서 더 험난하게 느껴진다웹툰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 맞다. 웹툰 작가가 되기 위한 '정도'가 있는 게 아닌 데다 최근 웹툰 시장이 커지면서 경쟁도 심화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 경우는 처음부터 웹툰 작가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목표였는데, 인맥도 없고 아는 지인도 없어서 고민하다가 자기 PR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면 블로그나 SNS에 올리고, 여기저기에 포트폴리오도 보내면서 꾸준히 나와 내 작품을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웹툰도 일러스트 일을 하다가 제안받게 된 것이다. 사실 웹툰 작가가 되는 데 정해진 길은 없다. 꾸준히 관련 계통 일을 하며 자신을 어필하면 기회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다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있듯이 실력으로 입증하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처럼 많은 작품들이 쏟아지는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것인데, 누가 봐도 이 사람 그림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자신만의 매력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한다. 더불어 트렌드 파악과 대중적인 요소를 갖추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나는안티팬과결혼했다' 작화 작업 과정

▷ 연재 중 일상이 궁금하다
▶ 최대 하루에 15시간 작업한 적도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거의 쉬지 못하고 일했다. 쉬는 것도 대부분 잠을 자면서 체력을 보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의 경우 각색을 맡은 은솔 작가와 협업을 통해 진행했는데, 이틀은 은솔 작가님의 글 콘티를 보고 그림 콘티를 짜고 그 후 2.5일은 선화 작업, 남은 2일은 채색, 보정, 식자 작업을 했다. 쉬지 않고 작업한 적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가족들이 챙겨 주었다. 항상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 웹툰작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황민현의 팬아트로 유명했다팬아트의 매력은 무엇인가
▶ 연재 시작했을 때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놀랐다. '설마 날 알겠어?' 했는데 많이들 알아봐 주셨다. 사실 좀 쑥스러운 마음 때문에 숨기고 연재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환영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작품에 열중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팬아트는 그 사람의 매력을 내 방식대로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캐릭터를 그리는 건 행복한 일임에 분명하다. 또 팬의 입장에서 내 연예인이 '한 번 이런 콘셉트 해줬으면 좋겠다' 하고 내 취향을 담아 그리고 나면 마치 해당 콘셉트를 진행한 것 마냥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무척 부러운 삶이다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때와 직업이 된 이후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 취미로 그림을 그릴 땐 내 마음대로 그려도 상관없지만, 상업적인 그림을 그릴 땐 독자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피드백도 많아지는데,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그림이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환경적으로는 타블렛 장비도 바꾸고, 주변 환경 자체를 좀 더 그림 그리기 편한 방향으로 바꿨다는 점도 변화의 큰 부분이다.

▷ 웹툰작가라는 직업의 객관적 장단점을 말해달라
▶ 장점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아서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인데, 단점 역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매주 마감에 신경 써야 하고, 바쁘면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하루 종일 일하는 직업이라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고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라는 웹툰은 작업 방식이 특별하다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글 콘티 작업을 해주는 은솔 작가의 역할이 생소한데, 어떻게 진행되었나
▶최근 '노블 코믹스'라고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각색까지 그림 작가님이 하는 작품이 아직은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처럼 각색 작가를 따로 두는 작품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이 있긴 하지만, 연재 초기에는 사전 제작된 드라마 대본을 각색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도중에 내부 사정상 드라마 대본이 아닌, 원작 소설 방향으로 변경해야 하는 변수가 생긴 거다. 이미 드라마 대본대로 웹툰 설정을 맞춰서 진행했는데, 원작 소설로 방향을 바꾸면서 엇나가는 것들이 많아 정신적 압박이 컸다. 아무래도 첫 작품인데다가 드라마, 소설, 웹툰을 따로 분리하고 각색하는 게 내 입장에서는 무척 부담이었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은솔 작가님을 만나 각색을 부탁드렸고, 다행히 직장인이신데도 불구하고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셨다. 덕분에 19화부터는 은솔 작가님이 글을 써주셨는데, 드라마보다 오히려 더 재밌게 만들어주셔서 글 콘티를 받을 때마다 감탄했다. 무엇보다 믿을 만한 각색 작가가 생기고 난 후에는 작화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는 계기가 된 셈이다.

▷ 그림체맛집으로 유명하다그림을 잘 그리는 비법과 함께 작가님 그림만의 매력을 어필해달라
▶ 그림체맛집이라는 표현이 너무 재밌다. 그림 칭찬은 들을 때마다 감사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작업 스타일 상  한 컷 한 컷 공들여서 그리는 편인데, 스스로 그림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다시 이 그림을 볼 때 그때도 내 눈에 만족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린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 지나고 보면 '아, 내가 왜 이렇게 그렸었지?'하고 후회가 많다는 게 함정.

나 역시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 그림을 잘 그리는 팁에 확답을 주기는 어렵지만 많이 보고 많이 그리는 게 정답 아닐까? 웹툰 작업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느낀 건 앞서 얼굴 그리기 연습에만 치중해 온 것이 좀 후회되었다. 좀 더 다양한 동작과 풀샷을 많이 그려보는 게 기본기가 다지는 데 도움이 됐겠다 싶은 마음이다. 또 내 나름으로는 웹툰이든 팬아트든 그림 그릴 때마다 그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웃을 때는 해맑은데 웃지 않으면 차가워 보이는 아이, 구릿빛 피부에 볼이 빵빵한 아이처럼 캐릭터의 매력을 구체화시킨다. 그러면 지루하지 않고 보는 재미가 더 생기리라 믿고 정성을 다한다.

 장장 1년 반을 이어온 연재가 끝을 맺었다소감과 함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살짝 알려달라
▶ 연재 초기만 하더라도 내가 이걸 무사히 다 그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완결까지 온 게 신기하다. 연재할 때마다 '내가 네이버에서 연재하다니..' 꿈만 같아서 믿기지 않았는데 완결하고 나서도 믿기지 않는다. 여기까지 무탈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지켜봐 주신 분들 덕분이다. "그냥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웹툰은 여기서 끝내려고 했었는데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다. 매력 있는 캐릭터들로 이야기를 꾸미는 게 재밌고 무엇보다 독자님들의 응원이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래서 재충전을 한 뒤에 차기작을 준비하려고 한다. 이번에도 로맨스를 준비 중이다. 그 이상은 아직 비밀.

 연재가 끝나면 하고 싶었던 계획이 있나
▶ 연재가 끝나면 해외여행을 꼭 가고 싶었는데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그래서 집에서 유튜브 보면서 뒹굴뒹굴하거나 연재하느라 바빠서 만나지 못한 지인분들을 만나고 싶다. 연재하면서 입맛이 많이 떨어졌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식욕을 되살리는 중이다.

 웹툰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웹툰 에이전시를 선택하는데 신중하라는 것이다. 길면 3년 이상, 짧아도 1년은 같이 해야 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잘 살피고 따져본 뒤에 선택했으면 좋겠다. 회사마다 장단점이 있고, 그게 자신의 니즈와 부합하는지 꼭 고려해야 한다. 냉정한 말이지만 좋기만 한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 가지 절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하는 조건은 자신의 작품을 존중해 주고, 가치 있게 봐주는 곳으로 선택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꾸준히 자기 색깔을 연구해서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진 작가가 되길 바란다.

내 경우에 빗대자면, 준비 기간 동안 주변 사람들이 성공할 때마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비교하면서 많이 불안했다. 그럴 때일수록 남들 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졌고, 그랬더니 어떻게든 되더라.

 좋아하는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에서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 청년들이 많다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격려와 조언이 있다면
▶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라고 말은 못 하겠다. 충분한 환경이 갖춰지고 확신이 생기면 그때 도전하는 걸 추천한다. 아니면 좋아하는 일로 조금씩 용돈벌이하다 그쪽으로 넘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차근차근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다. 중요한 시기인 만큼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모두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앞으로의 목표를 알려달라
▶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가 끝났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달릴 예정이다. 이번에 연재를 하면서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는데 점점 성장해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 다양한 장르도 도전해보고 싶고 아직까지는 혼자서 스토리를 짤 실력은 안 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오리지널 웹툰도 만들고 싶다. 팬들과 함께 덕질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게 최종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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