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바닥 위에 엄지척 오른손을 올려 수직으로 올려주는 동작은 '존경'을 뜻하는 수어입니다. 최근 우리 국민 중 이 수어 동작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텐데요. 바로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덕분에챌린지'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고생하는 의료진을 응원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캠페인이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또 코로나19 브리핑을 매일같이 보다 보니 브리핑을 전달하는 정부 관계자 옆에 자리한 수어통역사 역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수어와 수어통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문 통역사
수어 통역사는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동시통역사입니다. 수어 통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공인 수화 통역사 자격증'이 필요한데, 만 19세 이상의 내, 외국인은 모두 응시가 가능해 응시요건은 까다롭지 않은 편이지만 합격은 쉽지 않지요.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총 2차 시험으로 진행되는 수화통역사 자격시험은 일반적으로 합격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차 필기에는 한국어의 이해, 장애인복지, 청각장애인의 이해, 수화통역의 기초 등 4개 과목이 있으며 한국어의 이해와 수화통역의 기초는 60점 이상 나머지 과목은 40점 이상을 받아야 과락을 면하고 전체 평균 60점을 넘어야 통과됩니다.
2차 실기 시험은 녹화된 수화를 보고 문장으로 표현하는 필기 통역, 녹화된 수화를 보고 음성으로 표현하는 음성통역, 그리고 녹음된 음성을 듣고 수화로 표현하는 수화통역까지 3가지 분야로 나뉘는데요.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3년 안에 실기시험에 합격하면 최종 합격이 가능합니다.
자격시험 자체가 고난이도이다 보니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통역사로서 취업에 경쟁률은 높지 않은 편입니다. 각 지역의 수어통역센터에서 근무하거나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할 수도 있는데요. 다만 국내 청각장애인이 약 27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모든 생활 반경에 수어통역사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실제로 3차 병원 가운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만 의료수화통역사가 있을 정도로 상황은 열악한 편입니다.
"나라마다 다르다"
일상에서 수어통역사를 자주 접하지 못해서인지 대중들에게 수어는 익숙한 언어가 아닙니다. 손동작으로 하는 수화만을 떠올리는데 반해 수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바로 얼굴 표정과 몸의 방향 같은 비수지기호인데요. 입술이나 눈썹 모양을 어떻게 하고 몸통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돌리느냐 등에 따라 수어 의미가 달라집니다.
때문에 최근 코로나19 브리핑 상황에서도 수어통역사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더불어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고 대부분 검정색이나 무채색 계역의 옷을 입은 것 역시 수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지요.
또 한 가지 수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수어가 전 세계 공통일 것이라는 추측인데요. 수어는 세계마다 다르며 나라별로 각 언어에 기초해 수화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되면서 수어는 국어 중 하나로 인정되기도 했지요.
랩도 되고 춤도 되는
수어통역사
이와 별개로 어느 나라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국제수화도 존재합니다. 사실 수어는 나라별로 다르고, 전문분야인 것도 사실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누구나 활용 가능한 영역이기도 한데요.
최근 한 유튜브 영상 속 수어통역사가 화제가 되면서 수어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생겼습니다. 영상은 다름 아닌 미국의 래퍼 스눕독의 뉴올리언스 공연 현장. 해당 공연에 함께 참여한 홀리매니아티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수어통역사로 빠른 랩 가사를 춤추는 듯 역동적인 동작과 함께 수화로 선보여 화제가 되었지요.
수어로 전달하는 완벽한 래핑과 뛰어난 무대매너는 스눕독을 비롯해 제이지, 에미넴 등 많은 래퍼들의 극찬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 전 세계 네티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홀리 매니아티 못지않은 실력자가 있습니다. 앞서 아산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걸그룹 에이프릴의 노래에 맞춰 통역을 진행한 수어통역사의 모습이 화제가 된 것인데요. 무대 위 에이프릴의 공연에 맞춰 리듬감 있는 손짓으로 수화를 전달하는 수어통역사의 모습은 영상으로 회자되었고 네티즌들 사이에 '흥 많은 수화통역사'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요.
영상에 등장한 통역사는 충남 아산시 통역센터에 근무 중인 임동초 씨입니다. 당시 공연에서 워낙 열정적인 통역과 무대매너를 선보인 덕분에 현장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는데요. 함께 무대에 오른 가수 터보는 "고생한다"라며 어깨를 안마해 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후 해당 영상이 화제가 되자 임동초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인들이 노래를 들을 수는 없지만 같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수어와 수어통역이라는 분야가 '농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대중들에게 보다 익숙하게 다가간다면 코로나19 브리핑을 함께하는 수어통역사들에게 "마스크를 왜 쓰지 않느냐"라는 황당한 항의는 더 이상 없겠지요.